역순으로 책 만들기 ― 편집자
2026년 7월 8일

오늘은 데이터 마감일. 초판 한정 양장본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마케팅팀에 제안했던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양장본은 무선본보다 제작 기간이 배 가까이 걸린다고. 일정에 맞추려면 데이터를 서둘러 넘겨야 한다는 걸 모르느냐고. 어떻게든 되겠지, 가 삶의 모토인 터라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낙관했고 그 낙관의 대가로 이곳저곳에 사정하고서야(제작부에는 “혹시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되나요”, 표지 디자이너에게는 “혼자 감리를 다녀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아직 본문 마감을 못해서…”) 겨우 마감을 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확인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쓴다. 마지막에 살피며 체크한 내용은 대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읽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사소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깔끔하게 마감하려는 애초의 계획은 번번이 어긋나지만(물론 마감이 늦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마지막 과정이 이 일을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만든다고도 느낀다.
2026년 6월 17일
순조롭게 표지가 결정되고 이제 남은 일은 널찍한 표지 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그 공간은 이미지와 텍스트로 온전해진다. 이미지는 디자이너의 공간, 텍스트는 편집자의 공간이다. 이번 책의 표지 디자이너는 책등을 빨간색으로 작업한 대지 파일을 건네주었다. 이번 책이 편혜영 작가의 기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온도라고 여겼기에 빨간색이 서스펜스나 핏빛 느낌을 부각시키지 않을까 우려되어 다른 색도 가능할지 물었다. 디자이너는 기존 빨간색에서 조금 힘을 뺀 코럴색 버전의 책등을 작업해 보여주었다. 두 책등을 나란히 놓고 들여다보자 역시 예쁜 건 빨간색 책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가 그렇게 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중요한 이론을 또 까먹은 셈이었다. 머쓱하지만… 원래 버전이 더 좋다고 말했다.
내가 대지 공간을 꾸리며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이번 책이 지금까지 나온 작가의 책 중에 가장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편혜영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문구를 띠지에 담았고, 출간된 버전을 보면 알겠지만 이 문구는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문장으로 바꾸게 되었다… 아쉬움에 이번 책을 준비하며 간직한 첫 마음을 여기에 적어둔다.
2026년 6월 4일
표지 시안이 나왔다. 내부 컨펌을 거쳐 총 두 개의 시안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단편 「우리가 가는 곳」 속 장면을, 또다른 시안은 「아파트먼트」 속 장면을 구현한 것이었다. 보통 편집자가 작가에게 표지 시안을 전할 때 내부에서 반응이 좋은 시안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작가가 어떤 선입견 없이 고를 수 있도록 여타의 코멘트 없이 건네기도 한다. 나도 그때그때 다른데, 이번에는 은근하게 내 의견을 담아(다른 시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메일을 보냈다.
해외로 출장을 간 작가에게서 시차를 건너 답장이 도착했다. 드물게 작가와 디자이너, 편집자 모두 같은 시안을 골랐다.
2026년 5월 28일

본문이 한차례 정리되면 마케팅팀, 브랜딩팀 등 유관 부서에 PDF 파일을 보낸다. 준비중인 책의 좋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리는 짤막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나 나름대로 사심을 담아 업무용이자 홍보용인 메일을 보냈다…
2026년 5월 11일

소설집 제목이 결정되었다. 후보는 ‘새들의 사회성’과 ‘아파트먼트’ 이렇게 총 두 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어느 제목이 더 좋은지 일종의 사내 투표를 진행했을 때, 세련되면서 어떤 공간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불러일으키는 ‘아파트먼트’ 쪽이 작가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 내심 ‘새들의 사회성’을 제목으로 하고 싶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지상정으로 고민에 빠진다.
책 만들기의 어려운 점이자 신비로운 점은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어느 쪽으로든 활짝 열려 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과연 어떤 제목을 고를까 기다리던 찰나, ‘새들의 사회성’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택하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기보다는 우리가 선택한 길, 새롭게 가보려는 길을 최선의 길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2026년 2월 28일
2월의 마지막날, 소설집 원고가 입고되었다. 작가는 날이 따뜻해서 바깥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왔다는 인사와 함께 8편의 단편을 보내주었다. 이미 정리해놓았지만 봄이 될 무렵에야 원고를 보낸다는 말에서 작가의 성실함과 신중함이 전해져온다. 긴장되면서 떨리는 순간이다. 이제 심호흡 한번 하고 파일을 열어보자.
+
덧붙임
2022년 3월 21일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계약을 제안하는 메일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말을 이래저래 매만지다가 일곱번째 소설집을 함께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열어보는 일은 계약 제안 메일을 보내는 일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조심스레 메일을 클릭하자 제안에 응하겠다는 작가의 문장이 적혀 있다. 먼 곳에서 날아온 화답에 마음이 부푼다. 얼른 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물론 늦어져도 괜찮다. 편혜영 소설가는 내게 한국소설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알려준 작가니까.

지금의 표지가 나오기까지― 디자이너

편혜영 선생님은 제게 한국문학 그 자체 같은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님의 표지를 맡게 되다니 새삼 ‘내가 진짜 문학동네에서 일하고 있구나’ 실감할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인 만큼 전작 표지의 결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위기여야 잘 붙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럼에도 개성 있는 이 책만의 특별함을 담고픈 욕심도 컸습니다. 그 두 방향 사이에서 고민하며 시안을 만들었습니다.
그 두 방향은 MBTI에 비하자면 T 시안과 F 시안이었다고나 할까요. F 시안은 뿌연 안개꽃밭 위에 명조체로 제목을 올려 서정성을 강조한, 조금은 익숙한 국내문학 표지 스타일의 시안이었고, T 시안은 (지금 보고 계신 것처럼!) 한낮에 트럭에 집을 싣고 가는 풍경에 얇은 고딕체로 제목을 적은 다소 차가운 인상의 디자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문체에는 T 시안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F 시안이 좋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고, 결국 두 시안을 모두 작가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작가님께서 최종 T 시안을 고르셔서 지금의 책이 나왔지요.
표지에 있는 트럭은 첫번째 단편 「우리가 가는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농막을 운반하는 트럭으로 그려지지만 표백된 듯 새하얀 집으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증발’을 꾀하는 이들의 알쏭달쏭한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한편 뒷배경의 산능선과 풍경은 표제작 「새들의 사회성」에 등장하는 파주의 국도변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첫 단편의 오브제와 표제작의 배경을 한 화면에 겹쳐, 여러 편의 이야기가 표지 안에서 만나도록 구성했습니다. 표지의 풍경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공간이 되도록요.
흥미롭게도(?) 제가 이 책을 맡은 뒤 책 제목이 '새들의 사회성'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평소 탐조가 취미인 제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새네요!” 하고 반색했더니, 편집자님께서는 그렇다고 표지에 새를 쓸 건 아니라며 저를 진정시키셨습니다. (웃음) 역시 새는 마치 새가 날아가는 듯한 제목 글자의 배치로 뉘앙스만 남겼습니다.
소설에는 바로 그 파주 국도변의 논 위를 브이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철새가 언급됩니다. 묘사로 보아 기러기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공격받지 않으려 몰려다니는 연약한 존재로 그려지지만, 제게는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사천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이동 시기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지요.
편혜영 선생님의 글에는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언젠가 들른 파주에서 무리 지어 나는 기러기를 보셨던 걸까 상상하며,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평범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힘을 표지에도 조금이나마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독자분들도 책을 덮은 뒤 표지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소설 속에 스며 있는 낯설고 선명한 감각을 함께 떠올려주시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

역순으로 책 만들기 ― 편집자
2026년 7월 8일
오늘은 데이터 마감일. 초판 한정 양장본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마케팅팀에 제안했던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양장본은 무선본보다 제작 기간이 배 가까이 걸린다고. 일정에 맞추려면 데이터를 서둘러 넘겨야 한다는 걸 모르느냐고. 어떻게든 되겠지, 가 삶의 모토인 터라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낙관했고 그 낙관의 대가로 이곳저곳에 사정하고서야(제작부에는 “혹시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되나요”, 표지 디자이너에게는 “혼자 감리를 다녀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아직 본문 마감을 못해서…”) 겨우 마감을 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확인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쓴다. 마지막에 살피며 체크한 내용은 대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읽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사소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깔끔하게 마감하려는 애초의 계획은 번번이 어긋나지만(물론 마감이 늦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마지막 과정이 이 일을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만든다고도 느낀다.
2026년 6월 17일
순조롭게 표지가 결정되고 이제 남은 일은 널찍한 표지 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그 공간은 이미지와 텍스트로 온전해진다. 이미지는 디자이너의 공간, 텍스트는 편집자의 공간이다. 이번 책의 표지 디자이너는 책등을 빨간색으로 작업한 대지 파일을 건네주었다. 이번 책이 편혜영 작가의 기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온도라고 여겼기에 빨간색이 서스펜스나 핏빛 느낌을 부각시키지 않을까 우려되어 다른 색도 가능할지 물었다. 디자이너는 기존 빨간색에서 조금 힘을 뺀 코럴색 버전의 책등을 작업해 보여주었다. 두 책등을 나란히 놓고 들여다보자 역시 예쁜 건 빨간색 책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가 그렇게 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중요한 이론을 또 까먹은 셈이었다. 머쓱하지만… 원래 버전이 더 좋다고 말했다.
내가 대지 공간을 꾸리며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이번 책이 지금까지 나온 작가의 책 중에 가장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고심 끝에 “편혜영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문구를 띠지에 담았고, 출간된 버전을 보면 알겠지만 이 문구는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문장으로 바꾸게 되었다… 아쉬움에 이번 책을 준비하며 간직한 첫 마음을 여기에 적어둔다.
2026년 6월 4일
표지 시안이 나왔다. 내부 컨펌을 거쳐 총 두 개의 시안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단편 「우리가 가는 곳」 속 장면을, 또다른 시안은 「아파트먼트」 속 장면을 구현한 것이었다. 보통 편집자가 작가에게 표지 시안을 전할 때 내부에서 반응이 좋은 시안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작가가 어떤 선입견 없이 고를 수 있도록 여타의 코멘트 없이 건네기도 한다. 나도 그때그때 다른데, 이번에는 은근하게 내 의견을 담아(다른 시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메일을 보냈다.
해외로 출장을 간 작가에게서 시차를 건너 답장이 도착했다. 드물게 작가와 디자이너, 편집자 모두 같은 시안을 골랐다.
2026년 5월 28일
본문이 한차례 정리되면 마케팅팀, 브랜딩팀 등 유관 부서에 PDF 파일을 보낸다. 준비중인 책의 좋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리는 짤막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나 나름대로 사심을 담아 업무용이자 홍보용인 메일을 보냈다…
2026년 5월 11일
소설집 제목이 결정되었다. 후보는 ‘새들의 사회성’과 ‘아파트먼트’ 이렇게 총 두 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어느 제목이 더 좋은지 일종의 사내 투표를 진행했을 때, 세련되면서 어떤 공간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불러일으키는 ‘아파트먼트’ 쪽이 작가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 내심 ‘새들의 사회성’을 제목으로 하고 싶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지상정으로 고민에 빠진다.
책 만들기의 어려운 점이자 신비로운 점은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이 어느 쪽으로든 활짝 열려 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과연 어떤 제목을 고를까 기다리던 찰나, ‘새들의 사회성’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택하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기보다는 우리가 선택한 길, 새롭게 가보려는 길을 최선의 길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2026년 2월 28일
2월의 마지막날, 소설집 원고가 입고되었다. 작가는 날이 따뜻해서 바깥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왔다는 인사와 함께 8편의 단편을 보내주었다. 이미 정리해놓았지만 봄이 될 무렵에야 원고를 보낸다는 말에서 작가의 성실함과 신중함이 전해져온다. 긴장되면서 떨리는 순간이다. 이제 심호흡 한번 하고 파일을 열어보자.
+
덧붙임
2022년 3월 21일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계약을 제안하는 메일을 보내는 일은 언제나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말을 이래저래 매만지다가 일곱번째 소설집을 함께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열어보는 일은 계약 제안 메일을 보내는 일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조심스레 메일을 클릭하자 제안에 응하겠다는 작가의 문장이 적혀 있다. 먼 곳에서 날아온 화답에 마음이 부푼다. 얼른 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물론 늦어져도 괜찮다. 편혜영 소설가는 내게 한국소설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알려준 작가니까.
지금의 표지가 나오기까지― 디자이너
편혜영 선생님은 제게 한국문학 그 자체 같은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님의 표지를 맡게 되다니 새삼 ‘내가 진짜 문학동네에서 일하고 있구나’ 실감할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인 만큼 전작 표지의 결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분위기여야 잘 붙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럼에도 개성 있는 이 책만의 특별함을 담고픈 욕심도 컸습니다. 그 두 방향 사이에서 고민하며 시안을 만들었습니다.
그 두 방향은 MBTI에 비하자면 T 시안과 F 시안이었다고나 할까요. F 시안은 뿌연 안개꽃밭 위에 명조체로 제목을 올려 서정성을 강조한, 조금은 익숙한 국내문학 표지 스타일의 시안이었고, T 시안은 (지금 보고 계신 것처럼!) 한낮에 트럭에 집을 싣고 가는 풍경에 얇은 고딕체로 제목을 적은 다소 차가운 인상의 디자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문체에는 T 시안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F 시안이 좋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고, 결국 두 시안을 모두 작가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작가님께서 최종 T 시안을 고르셔서 지금의 책이 나왔지요.
표지에 있는 트럭은 첫번째 단편 「우리가 가는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농막을 운반하는 트럭으로 그려지지만 표백된 듯 새하얀 집으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증발’을 꾀하는 이들의 알쏭달쏭한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한편 뒷배경의 산능선과 풍경은 표제작 「새들의 사회성」에 등장하는 파주의 국도변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첫 단편의 오브제와 표제작의 배경을 한 화면에 겹쳐, 여러 편의 이야기가 표지 안에서 만나도록 구성했습니다. 표지의 풍경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공간이 되도록요.
흥미롭게도(?) 제가 이 책을 맡은 뒤 책 제목이 '새들의 사회성'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평소 탐조가 취미인 제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새네요!” 하고 반색했더니, 편집자님께서는 그렇다고 표지에 새를 쓸 건 아니라며 저를 진정시키셨습니다. (웃음) 역시 새는 마치 새가 날아가는 듯한 제목 글자의 배치로 뉘앙스만 남겼습니다.
소설에는 바로 그 파주 국도변의 논 위를 브이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철새가 언급됩니다. 묘사로 보아 기러기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공격받지 않으려 몰려다니는 연약한 존재로 그려지지만, 제게는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사천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동물입니다. 이동 시기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지요.
편혜영 선생님의 글에는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언젠가 들른 파주에서 무리 지어 나는 기러기를 보셨던 걸까 상상하며,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평범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힘을 표지에도 조금이나마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독자분들도 책을 덮은 뒤 표지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소설 속에 스며 있는 낯설고 선명한 감각을 함께 떠올려주시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