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당신에게, 책


10월의 가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랗게, 또는 빨갛게 무르익는 푸릇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몽글한 생각들이 피어나기 때문일까요. 짧디 짧은 이 계절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자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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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계절책장에서는 세 명의 에디터들이 지인에게 마음을 담아 책을 추천하는 편지를 써보았어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오래 전이라서 조금 어색하기도 했는데요. 편지라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특별한 선물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상대방을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해서 고르는 그 시간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가장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편지를 쓰셨는지 기억 나시나요? 


Editor. 보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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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 있는 민경아.


요즘 마음이 많이 무겁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는 누구나 불안해지는 것 같아. 어쩌면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우리를 더 조급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어.


그럴 때 나는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떠올려보곤 해. 이 소설이 내게 와닿았던 이유는, 어떤 선택을 하든 삶은 결국 나다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내가 믿고자 하는 방향으로 걸어간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옳은 선택’을 위해 애쓰기보다 너를 믿고 ‘너다운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네가 걸어가는 길 위에는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멋진 너만의 미래가 피어날 거라고 믿어.

이 책이 네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그들은 그 순간을 한번 더 경험한다. 그리고 놀란다.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둘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처음 서로를 마주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번째 삶이 시작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p.23


Editor. 햄사리





『밝은 밤』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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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통 잠을 깊이 자지 못한다는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잠이 안 오면 책이라도 좀 읽어봐”라고 말해놓고 책 추천은 잊어버린 것이 생각나서 책장을 살펴봤어. 혼자 여행을 가면 뭐 하냐고 엄마가 종종 묻곤 했잖아. 나는 보통 바깥 풍경을 보면서 책을 읽어. 지금 엄마한테 추천하고 싶은 책인 최은영 장편소설 『밝은 밤』도 혼자 평창 여행을 갔던 날 읽은 거야.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랑 할머니 생각을 참 많이 했어.


재작년 마산 여행, 기억나? 기차 환승 때문에 잠시 대구역에 내린 적이 있잖아. 나는 대구역엔 처음 가본 거였고 당연히 엄마도 대구에 추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근데 엄마가 역 안을 천천히 보다가 부산에서 회사 다닐 때 친한 언니랑 대구에 놀러 왔을 때 생각이 난다고 했잖아. 들떠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엄마의 추억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앞으로도 내가 모르는 엄마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보지 못하지만 내가 너무 좋아했던 할머니 이야기도 말이야. 그리고 엄마가 매일 밤, 잘 잤으면 좋겠어.

 

삼천아, 새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야. 개성도 그렇니. 너랑 같이 꽃을 뽑아다가 꿀을 먹던 게 생각나. 그걸 따다가 전을 부쳐 먹던 것두, 같이 쑥을 캐다가 떡을 만들어 먹던 것도. 인제 나는 꽃을 봐도 풀을 봐도 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어. 별을 봐도 달을 봐도 그걸 올려다보던 삼천이 네 얼굴만 떠올라. 새비야, 참 희한하지 않아? 밤하늘을 보면서 그리 말하던 네가 떠올라. 이것도 희한하구 저것도 희한한 우리 삼천이가 생각나누나.

『밝은 밤』, p.120~121


Editor. 다소루





『궤도』 서맨사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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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언니에게.


‘왜 생각은 끝이 없을까?’

문득 우리가 얼마 전에 같이 여행을 가서 나눴던 말들이 생각났어. 늦은 밤, 숙소 주변을 열 바퀴 넘게 돌면서 나눴던 인생, 진로, 관계, 사랑에 대한 것들 말이야. 고민을 나눈다고 해결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언니랑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은 아마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약해지고 싶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말이야, 연년생인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언니의 고민이 내 고민 같고, 내 고민이 언니의 고민 같아서 다음 날이 되어도 우리가 나눈 고민이 쉽게 지워지지가 않더라고.

가끔 유영하는 구름과 날아가는 새, 흩날리는 잎사귀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가진 고민과 무수히 많은 선택이 조금은 멀고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어. 요즘 명상하듯 읽는 책의 한 구절을 언니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어. 우리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가끔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지우고, 저 행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 지구가 하찮고 작은 행성임을 깨닫고 우주 속 지구의 자리를 비로소 이해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멀리 지구와 떨어져야 한다.

_『궤도』, p. 50-51


Editor. 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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