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카더가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카더정원’에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영상 중 프로 뮤지션들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밴드부를 찾아가는 콘텐츠를 참 좋아해요. 영상은 밴드부 학생들이 먼저 연주를 선보인 뒤 프로 뮤지션들에게 멘토링을 받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아이들이 들려주는 연주는 서툰 구석이 있지만 대단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열정이 너무나 순수해서 보는 내내 미소 짓게 돼요. 이 콘텐츠의 백미는 바로 프로 뮤지션들이 따스한 시선으로 건네는 진심어린 조언, 그리고 어른 대 아이가 아닌 동등한 뮤지션으로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계절공방> 에디터들은 대부분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고, 이젠 학교를 둘러싼 것들과도 한참이나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때를 추억하곤 합니다. 그 시절의 나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시선으로 말이죠. 에디터들끼리도 서로의 학창 시절을 모르기에 이번 글은 서로가 즐겁게 읽어보지 않을까 싶네요. 쑥스럽지만 여러분께도 살짝 공개할게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는

가끔은 출판사에 다니는 제가 신기하게 느껴져요. 물론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모여 지금으로 이어졌는지 곱씹게 될 때가 있어요. 오늘은 그중 가장 애틋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짧은 글에도 웃고 울던 때가 있었어요. 바로 여고 시절인데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었어요. 선생님의 둘째 딸이 저희와 동갑이었으니 말 그대로 아빠와 딸‘들’의 만남이었죠. 선생님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꼭 교탁 옆 책상에 앉아 자리를 지키셨지요. 선생님이 졸면 우리도 같이 졸던 시절, 그런 헌신적인 담임선생님을 둔 덕분에 저와 친구들은 너무나도 끈끈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해줍니다. (지금 돌아보면 믿기지 않을 만큼 건전한) ‘EBS 문화사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에요. 1950년대 명동을 드나들었던 문화예술인의 삶을 그린 <명동백작>과 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이후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을 이야기를 담은 <지금도 마로니에에는>을 함께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특히 <지금도 마로니에는>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소설가 김지하, 김승옥, 전혜린 등이었는데 늘 교과서에서만 보던 인물들을 드라마에서 만나니 무척 신선했지요. 소설가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라는 점도 참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독재정권하에서 나름의 모습으로 투쟁하는 모습에,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지만 서로를 보듬는 깊은 우정에 감동을 받았어요. 드라마 속 1960년대 서울 풍경은 너무나도 춥고 쓸쓸했지만 그럼에도 어떤 낭만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본 덕분에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남긴 문학작품들을 너무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요. 드라마 속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학로’와 ‘학림다방’도 방문했습니다. 그야말로 문학 소녀들의 덕질이었달까요. 이때의 기억은 정말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시간이 흘러 문학 출판사에 입사 지원을 했을 때는 물론 요즘까지도 종종 그때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문학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저를 이곳으로 이끈 게 아닐까 하고요.
<계절공방> 덕분에 처음으로 그 시절을 글 위에 옮겨보게 되었어요. ‘학창시절이라니 이제 정말 기억 안 나요’라고 얘기해왔지만 마음 깊은 곳엔 어떤 흔적들이 아주 선명히 남아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며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이 레터가 공방원분들게 닿을 즈음엔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려고 합니다. “얘들아 그때 기억하지?” 하고요.
by. 지지
키보드 덮개 속, 나만의 여름방학

무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충학습으로 시간표가 빼곡히 차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하루는 동아리 친구들과 보충학습을 빼 먹기로 작당 모의를 마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 곳이 떠올랐어요. 시청각실 무대 뒤편에 붙어 있는 밴드부 연습실이었죠. 음악 선생님과 우리만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들킬 리 없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비해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일탈 자체가 목적이라 교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그렇게 몰래 연습실에 모여 무엇을 했느냐면… 키보드 덮개 아래에 들어가 단잠을 잤어요. 끝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이토록 기억에 남는 건지.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저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의 비현실적인 감각, 잠시 모든 현실에서 발을 떼고 어딘가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이에요. 키보드 덮개의 거친 감촉, 연습실 바닥에서 올려다본 천장의 생경한 무늬, 친구가 빈 건반을 딸깍이는 소리, 바깥에서 들려온 마이크 테스트 소리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차츰 현실로 돌아오며 왠지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아, 이 순간이 나의 여름이구나, 매일 국영수 수업을 반복하는 지루한 나의 학창시절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챘던 것도 같아요.
이렇게 쓰고 보니 늘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다가 간만에 마음 놓고 단잠을 잔 것 자체가 행복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학창 시절의 일탈이 흔히 그렇듯 일상과 규칙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억이니까요.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것은, 밴드부 연습실의 키보드 덮개가 제 인생 최고의 침낭이었고, 그 아래에서 단잠을 자던 순간이 제 학창시절 최고의 여름방학이었다는 사실이에요.
by. 송쏘
영동대교에서 아침을
여러분의 등굣길은 어떠셨나요? 저는 중고등학교 모두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버스 안에서는 그냥 속절없이 잠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끔은 일어나지 못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평소처럼 버스에 타자마자 의자 두 개에 누워 그대로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니까 생전 처음 보는 한강 위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0시가 가까웠고요.
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라디오를 들으며 즐겁게 운전중이던 기사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여기가 어디예요...?"
기사님은 흐억!? 하는 소리를 내시고는 제가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돌아보셨습니다. 기사님의 두 눈동자는 니가 왜 여기서 나와? 하고 묻고 있었죠. 저와 기사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습니다. 빗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공허하게 버스 안을 맴돌았고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착잡한 얼굴의 기사님이었습니다.
"여기는 영동대교인데, 아저씨가 10시 반까지는 학교로 태워다줄게."
저는 훌쩍이며 “네...” 하고는 방금까지 누워 자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앉았습니다. 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어, 담임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왜 학교에 안 오냐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장을 했습니다.
─나 자다가 못 내렸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자다가 못 내렸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결론적으로 저는 영동대교에서 학교까지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지각 사유에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의 웃음보가 터진 덕분인지 혼은 나지 않았습니다. 좀 머쓱할 뿐이었죠.
이후 제가 다니던 중학교의 모든 셔틀버스에 도착지를 알리는 마이크가 설치되었는데요. 여전히 제 쓸모를 다하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지곤 합니다.
by. 일립
도서부원의 작고 귀여운 일상


여러분은 중학교 시절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도서부였습니다. (어쩌면 이때부터였을까요. 제가 출판사에서 일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
한번은 도서관에서 ’밤새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하루종일 도서관에 파묻혀 책을 읽고,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죠. 중학생에게 학교에서 컵라면을 먹는다는 건 당시 최고의 일탈이었어요. 텅 빈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맛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부 친구들과 함께 파주출판단지 견학을 다녀온 날도 잊을 수 없어요. 파주출판단지의 랜드마크인 복합문화공간 ‘지혜의숲’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며 압도되었는데, 제가 매일 그 앞을 지나가는 출판계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계간 소식지를 만들었는데요. 포토샵 같은 툴이 아니라 워드 프로그램으로 텍스트 상자와 도형을 하나하나 정렬해가며 수작업과 다름없이 편집을 했어요. 최근에 친구가 방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며 그때 만든 소식지를 찍어 보내주었는데요. 출판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지금의 예고편 같아서 왠지 뭉클해졌어요.
작년에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 다시 찾은 학교에서 당시 도서부 지도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께 인사드릴 수 있어 행복했어요. 저는 이렇게나 훌쩍 커버렸는데 여전히 그 시절과 다름없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보니 제 추억 속의 시간만큼은 멈춰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대출 정지 해제’ 이벤트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다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도서부에서 보낸 시간들이 저를 지금 이곳으로 이끌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by. 디또
뮤지션 카더가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카더정원’에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영상 중 프로 뮤지션들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밴드부를 찾아가는 콘텐츠를 참 좋아해요. 영상은 밴드부 학생들이 먼저 연주를 선보인 뒤 프로 뮤지션들에게 멘토링을 받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아이들이 들려주는 연주는 서툰 구석이 있지만 대단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열정이 너무나 순수해서 보는 내내 미소 짓게 돼요. 이 콘텐츠의 백미는 바로 프로 뮤지션들이 따스한 시선으로 건네는 진심어린 조언, 그리고 어른 대 아이가 아닌 동등한 뮤지션으로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계절공방> 에디터들은 대부분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고, 이젠 학교를 둘러싼 것들과도 한참이나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때를 추억하곤 합니다. 그 시절의 나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시선으로 말이죠. 에디터들끼리도 서로의 학창 시절을 모르기에 이번 글은 서로가 즐겁게 읽어보지 않을까 싶네요. 쑥스럽지만 여러분께도 살짝 공개할게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는
가끔은 출판사에 다니는 제가 신기하게 느껴져요. 물론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모여 지금으로 이어졌는지 곱씹게 될 때가 있어요. 오늘은 그중 가장 애틋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짧은 글에도 웃고 울던 때가 있었어요. 바로 여고 시절인데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었어요. 선생님의 둘째 딸이 저희와 동갑이었으니 말 그대로 아빠와 딸‘들’의 만남이었죠. 선생님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꼭 교탁 옆 책상에 앉아 자리를 지키셨지요. 선생님이 졸면 우리도 같이 졸던 시절, 그런 헌신적인 담임선생님을 둔 덕분에 저와 친구들은 너무나도 끈끈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해줍니다. (지금 돌아보면 믿기지 않을 만큼 건전한) ‘EBS 문화사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에요. 1950년대 명동을 드나들었던 문화예술인의 삶을 그린 <명동백작>과 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이후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을 이야기를 담은 <지금도 마로니에에는>을 함께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특히 <지금도 마로니에는>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소설가 김지하, 김승옥, 전혜린 등이었는데 늘 교과서에서만 보던 인물들을 드라마에서 만나니 무척 신선했지요. 소설가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라는 점도 참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독재정권하에서 나름의 모습으로 투쟁하는 모습에,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지만 서로를 보듬는 깊은 우정에 감동을 받았어요. 드라마 속 1960년대 서울 풍경은 너무나도 춥고 쓸쓸했지만 그럼에도 어떤 낭만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본 덕분에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남긴 문학작품들을 너무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요. 드라마 속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학로’와 ‘학림다방’도 방문했습니다. 그야말로 문학 소녀들의 덕질이었달까요. 이때의 기억은 정말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시간이 흘러 문학 출판사에 입사 지원을 했을 때는 물론 요즘까지도 종종 그때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문학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저를 이곳으로 이끈 게 아닐까 하고요.
<계절공방> 덕분에 처음으로 그 시절을 글 위에 옮겨보게 되었어요. ‘학창시절이라니 이제 정말 기억 안 나요’라고 얘기해왔지만 마음 깊은 곳엔 어떤 흔적들이 아주 선명히 남아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며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이 레터가 공방원분들게 닿을 즈음엔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려고 합니다. “얘들아 그때 기억하지?” 하고요.
by. 지지
키보드 덮개 속, 나만의 여름방학
무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충학습으로 시간표가 빼곡히 차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하루는 동아리 친구들과 보충학습을 빼 먹기로 작당 모의를 마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 곳이 떠올랐어요. 시청각실 무대 뒤편에 붙어 있는 밴드부 연습실이었죠. 음악 선생님과 우리만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들킬 리 없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비해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일탈 자체가 목적이라 교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그렇게 몰래 연습실에 모여 무엇을 했느냐면… 키보드 덮개 아래에 들어가 단잠을 잤어요. 끝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이토록 기억에 남는 건지.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저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의 비현실적인 감각, 잠시 모든 현실에서 발을 떼고 어딘가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이에요. 키보드 덮개의 거친 감촉, 연습실 바닥에서 올려다본 천장의 생경한 무늬, 친구가 빈 건반을 딸깍이는 소리, 바깥에서 들려온 마이크 테스트 소리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차츰 현실로 돌아오며 왠지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아, 이 순간이 나의 여름이구나, 매일 국영수 수업을 반복하는 지루한 나의 학창시절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챘던 것도 같아요.
이렇게 쓰고 보니 늘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다가 간만에 마음 놓고 단잠을 잔 것 자체가 행복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학창 시절의 일탈이 흔히 그렇듯 일상과 규칙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억이니까요.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것은, 밴드부 연습실의 키보드 덮개가 제 인생 최고의 침낭이었고, 그 아래에서 단잠을 자던 순간이 제 학창시절 최고의 여름방학이었다는 사실이에요.
by. 송쏘
영동대교에서 아침을
여러분의 등굣길은 어떠셨나요? 저는 중고등학교 모두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버스 안에서는 그냥 속절없이 잠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끔은 일어나지 못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평소처럼 버스에 타자마자 의자 두 개에 누워 그대로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니까 생전 처음 보는 한강 위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0시가 가까웠고요.
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라디오를 들으며 즐겁게 운전중이던 기사님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여기가 어디예요...?"
기사님은 흐억!? 하는 소리를 내시고는 제가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돌아보셨습니다. 기사님의 두 눈동자는 니가 왜 여기서 나와? 하고 묻고 있었죠. 저와 기사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습니다. 빗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공허하게 버스 안을 맴돌았고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착잡한 얼굴의 기사님이었습니다.
"여기는 영동대교인데, 아저씨가 10시 반까지는 학교로 태워다줄게."
저는 훌쩍이며 “네...” 하고는 방금까지 누워 자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앉았습니다. 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어, 담임 선생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왜 학교에 안 오냐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장을 했습니다.
─나 자다가 못 내렸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자다가 못 내렸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결론적으로 저는 영동대교에서 학교까지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지각 사유에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의 웃음보가 터진 덕분인지 혼은 나지 않았습니다. 좀 머쓱할 뿐이었죠.
이후 제가 다니던 중학교의 모든 셔틀버스에 도착지를 알리는 마이크가 설치되었는데요. 여전히 제 쓸모를 다하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지곤 합니다.
by. 일립
도서부원의 작고 귀여운 일상
여러분은 중학교 시절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도서부였습니다. (어쩌면 이때부터였을까요. 제가 출판사에서 일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
한번은 도서관에서 ’밤새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하루종일 도서관에 파묻혀 책을 읽고,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죠. 중학생에게 학교에서 컵라면을 먹는다는 건 당시 최고의 일탈이었어요. 텅 빈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맛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부 친구들과 함께 파주출판단지 견학을 다녀온 날도 잊을 수 없어요. 파주출판단지의 랜드마크인 복합문화공간 ‘지혜의숲’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며 압도되었는데, 제가 매일 그 앞을 지나가는 출판계 사람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계간 소식지를 만들었는데요. 포토샵 같은 툴이 아니라 워드 프로그램으로 텍스트 상자와 도형을 하나하나 정렬해가며 수작업과 다름없이 편집을 했어요. 최근에 친구가 방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다며 그때 만든 소식지를 찍어 보내주었는데요. 출판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지금의 예고편 같아서 왠지 뭉클해졌어요.
작년에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 다시 찾은 학교에서 당시 도서부 지도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께 인사드릴 수 있어 행복했어요. 저는 이렇게나 훌쩍 커버렸는데 여전히 그 시절과 다름없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보니 제 추억 속의 시간만큼은 멈춰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대출 정지 해제’ 이벤트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다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도서부에서 보낸 시간들이 저를 지금 이곳으로 이끌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by. 디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