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당신은 지금 무엇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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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블로그 소개글을 17년 동안 ‘책이 좋아, 정말 좋아~!’로 유지하고 있죠. 저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하루종일 그 일만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에 읽던 책을 펼칩니다. 식사시간에도 책을 놓지 못하는 편이죠. 어릴 때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세월아, 네월아’ 책을 읽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어요.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책에 대한 열정이 샘솟으면서, 끊임없이 읽고 쓰는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책 속에서 공감의 밑줄이 가득찬 문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지죠. 하지만 주변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책 리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읽은 책들을 다시 살펴보는 일종의 아카이빙 작업이기도 하고, 제가 읽은 책들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작가의 줌 북토크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책을 읽을 때 기억하고 싶은 책이다 싶으면 워드에 밑줄을 옮겨 적”는다고 하더라고요. 책마다 분리를 하지 않고 하나의 파일에 모든 책의 밑줄 그은 문구들을 기록한대요. 그러면 읽은 책이 많아질수록 기록 또한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거죠. 그 기록이 10년 동안 A4 용지 1,100장 되는 분량이라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식으로 기록을 담은 제 블로그가 떠올랐어요. 저 역시 밑줄과 리뷰를 업로드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검색을 해보거든요.

최혜진 작가는 『에디토리얼 씽킹』에서 “온 국민이 준 에디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이 SNS에 올릴 사진과 영상을 고르고 편집하고, 바디 텍스트를 쓰며, 자기만의 해시태그를 정해 콘텐츠를 아카이브한다. 방대한 하이퍼링크 세상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큐레이션해 상황별 추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영감 수집 부계정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라고 했어요. 그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죠. 특히, 이번 ‘계절공방’의 주제와 잘 맞는 문장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절책장에서는 기록과 수집에 관한 책들을 찾아봤습니다.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스케치로 가게의 모습을 기록한 작가의 이야기, 일본 위스키에 대한 열정을 담아 오래된 증류소를 방문하며 기록한 책, 수많은 클래식 레코드와 티셔츠를 수집하고 소개한 무라카미 하루키, 매일 일기를 쓰며 그달의 소소한 기록을 남긴 시인, 그리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소소하고 작은 수집에 관한 책까지, 여러 권을 욕심내어 소개해봅니다.


인용: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터틀넥프레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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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17)


역전 광장 한 모퉁이, 엄마의 빵집 옆에 있던 외삼촌의 식품점은 제 기억 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구멍가게입니다.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선물을 사기 위해 붐볐던 그곳은 이제 과거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어요. 내부는 그대로인 채 식품점에서 슈퍼로, 그리고 지금은 편의점으로 명칭을 바꿨지만 활기 넘쳤던 시절의 모습은 사라졌죠. 주기적으로 바뀌는 이름만이 흐르는 세월을 증명할 뿐 이제는 고요함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어요.

이미경 작가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구멍가게들을 찾아 그림을 그렸어요.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꿋꿋하게 버텨온 상회, 슈퍼.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이름조차 없는 구멍가게들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이 책에 담았습니다.

해룡상회, 감나무가게, 흥인수퍼 그리고 덕평리, 율곡리의 구멍가게 같은 곳은 어린 시절, 학교 앞이나 동네 어귀에 자리잡아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며 동전 하나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던 소중한 공간이었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구멍가게들이 ‘한 우물 파는 일’로 묵묵히 자리매김하며 삶을 이어왔다면 그러한 구멍가게들을 지난 20년 동안 찾아다니며 그림으로 기록한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단순한 그림 그리기를 넘어 “지난날의 그리움, 고향 생각, 동심, 정겨운 이야기 등 향수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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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권남희 옮김, 비채, 2021)


하루키는 달리기, 맥주, 재즈, 자동차, 위스키, 야구 등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자신의 취미를 당당하게 표현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책으로까지 펴내는 열정을 보여주죠. 몇 년 전, 그는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는 없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 것이 인생의 모티프 같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티셔츠였죠. ‘아니, 티셔츠는 나도 많다고. 그게 뭐 책으로 써낼 정도야?’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의 컬렉션을 담은 책을 보니 그럴 만하더라고요 (^^)

하루키가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는 무려 수백 장이라고 해요. 단돈 1달러짜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티셔츠들을 공개하며 “마음에 들어 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짧을 글을 쓴 것뿐이어서, 이런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은 했지만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티셔츠’라고 공개하는 그의 당당한 모습이 더 멋졌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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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2024)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몇 권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거예요. 재즈에 이어 티셔츠, 그리고 이번에는 클래식 레코드까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하루키의 열정은 멈출 줄 모르는 듯합니다. 그는 육십 년 가까이 1만 5천여 장의 레코드를 모았어요. ‘이 레코드는 평생 품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한 명반부터 ‘이런 게 왜 우리집에 있을까’ 하는 의문의 음반까지 있답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라 클래식 레코드에 대해서도 아는 것 하나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소장합니다(저는 책 수집가). 언젠가는 하루키가 소개하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그의 글을 천천히 읽으며 클래식 레코드에 대한 이해를 하는 날이 있을 테니 말이에요. (그가 클래식 레코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면, 지난번에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 ‘못다 실은’ 레코드가 아쉬워 스스로 두번째 책을 썼다고 해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알아서 하는 것은 그만큼 좋아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역시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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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입고—오은의 5월』 (오은, 난다, 2024)


20대 초반에 무슨 연유에서인지 학창시절 적은 일기와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전부 태워버린 적이 있어요. 그때는 후회 따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죠. 일기는 개인의 소중한 기록이자 아카이브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매일 일어난 일들과 감정들을 글로 남기는 것은 기록의 시작이며, 그 기록들을 모아두는 것은 수집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일기를 쓰는 것일 텐데 그 소중한 것을 태워버렸으니 말이에요.

‘시의적절‘ 시리즈는 매달 한 명의 시인이 한 달 동안 매일 쓴 시이자 일기이며 일상이에요. 그 속엔 시도 있고, 에세이도 있고 인터뷰와 농담도 있어요. ‘봄물이 봇물 터지는’ 5월의 시인은 오은입니다. ‘모든 쓰기는 마음을 쓰는 일’이라는 시인이 노랑도, 오렌지도 아닌 ‘초록을 입고’ 왔어요. 그가 적어둔 ‘적바림’(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둔 기록)은 다채로운 단어들로 빚어낸 아름다움이 있어요.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전채, 주요리, 후식을 떠올리며 썼다고 해요. 마치 진수성찬처럼 풍성하고 맛있는 글 잔치를 펼치기도 하고 매일 새로운 단어를 발견할 수 있는 ‘오발단’(오늘 발견한 단어)을 알려주기도 해요. 오은 시인이 쓴 일품 단어들로 가득한 이 책은 작가만의 소중한 아카이브를 이루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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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오늘은 일본 위스키를 마십니다』 (김대영, 싱긋, 2024년)


우리가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거나 열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특정한 계기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힘들거나 답답할 때, 마치 구세주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저자에게 위스키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살아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불러일으킨 위스키가 게일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처럼 저자에게 진정한 생명수가 되었죠. 이후 그는 일본 위스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로 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증류소를 직접 방문하여 취재하고, 현지 사람들을 인터뷰한 글과 사진 자료로 가득한 이 책은 일본 위스키의 역사와 문화, 제조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줍니다. 제법 두툼하지만 술술 읽히는 것은 위스키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각 증류소 근처의 추천 맛집과 술집 정보까지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일본 위스키에 대한 기록으로 이보다 풍부한 자료를 보여주는 책은 드물 텐데, 일본 위스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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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수집, 스몰컬렉팅—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합니다』 (영민, 휴머니스트, 2023)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저의 취미는 엽서 모으기였습니다. 새로운 엽서를 발견할 때마다 사 모았죠. 엽서를 왜 모으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그 엽서들은 박스 한가득 그대로, 버려지지 않고 책장 한구석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어요. 그야말로 ‘작고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것’인 셈이죠.

한때는 그저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던 작은 것들이지만, 가끔은 그 안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 티켓, 여행지의 영수증, 맥주병 뚜껑, 나뭇잎, 사탕 껍질, 돌멩이 등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작은 물건들은 단순한 쓰레기로 치부하기 쉬워요. 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물건들도 모으고 보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죠. 저자는 이러한 작은 물건들을 소중한 ‘컬렉션’으로 간직하며, 그 안에 담긴 추억과 의미를 섬세하게 기록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은 지금 무엇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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