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봄날의 ‘책’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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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내게로 다가와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라고 말한다면 ‘아가씨’라고 불러준 새끼 곰에게 반해서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종일 놀아”주고 싶은 봄, 보오옴, 꽃 피는 계절이 다시 찾아왔어요.

봄이 오면 한 번쯤 아무에게나 묻게 됩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뜬금없이 무슨 곰이냐고 묻는 이도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되묻는 이도 있습니다.

 

봄날의 ‘책’을 좋아하세요?

 

책을 좋아하는데 계절이 무슨 상관있겠어요. 겨울잠에서 깨어난 귀여운 새끼 곰이랑 봄날의 들판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미소를 짓지만, 따스한 봄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놓인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책을 읽는 시간이야말로 행복한 일일 테니, 봄날의 ‘책’은 당연히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해요. 봄날의 ‘곰’을 물었는데, 봄날의 ‘책’으로 되묻는 이라면 자주 책을 펼치는 사람일 거예요.

봄은 시작, 젊음,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키워드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예요. 누군가에게 봄은 아쉬움과 그리움, 때론 아픔으로 남는 계절이기도 할 테니까요. 그런 다양한 봄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입니다.


* 인용은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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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김멜라 외, 문학동네, 2024)


벚꽃 필 무렵 떠오르는 첫번째 책은 바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입니다. 봄이 되어 새싹이 나고 꽃이 피듯, 매년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등장은 설레고 기대됩니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도 처음 만나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여요.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는다고 큰소리쳤는데도 모르는 작가가 있어 조금 놀랐지만 이렇게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면 그들의 첫 작품집이나 장편소설이 유독 기다려져요.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수상작은 대상을 받은 김멜라 작가의 소설 「이응 이응」이었어요. 제목부터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요. 소설 속 기계의 가치보다는 할머니와 반려견 ‘보리차차’에 대한 그리움이 곳곳에서 드러나 읽는 내내 가슴 뭉클했답니다.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이응’이라는 기계라 하더라도 허벅지에 등짝을 맞대고 잠든 강아지의 체온과 어릴 적 얼굴을 씻어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이길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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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프랑수아즈 사강, 장소미 옮김, 녹색광선, 2022)


두번째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입니다. 사랑의 시작과 헤어짐이 ‘봄도 한철 꽃도 한철’이라는 속담을 떠오르게 해요. 읽다보면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본 듯한 꽤나 익숙한 스토리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어요.

 

‘이것 봐, 그가 내 손을 잡고 공원을 통과하고 있어. 봄이야. 겁먹을 필요 없다고, 난 더이상 열여섯 살이 아니야.’

 

부동산 사업가이자 돈 많은 쉰 살의 남자 ‘샤를’과 함께 살고 있는 서른 살의 ‘루실’. 마흔 살이면서 백만장자인 ‘디안’의 애인 ‘앙투안’. 동갑내기 젊은 그들은 우연히 만나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랑에 빠집니다. 누군가의 애인이라는 도덕적 제약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서로를 향한 열망에 사로잡힌 두 사람은 오직 사랑만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아요. 결국 불꽃처럼 타올랐던 사랑은 이내 사그라지고 예정된 이별이 찾아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과 낭만적인 분위기로 인해 사랑이 궁금한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아요. 하지만 사랑 앞에서 나이는 무용합니다.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사랑이니까요. 특히 이 책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잘 표현되어 밑줄이 많았어요.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이별의 아픔을 안고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이 소설을 권하고 싶네요. 깊은 공감과 위안을 받으며 한층 성숙한 자신과 만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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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어느 해부터인지 모르게 매년 봄이 되면 꼭 읽어야 할 소설이 하나 생겼습니다. 봄바람처럼 상쾌하고 달콤한 로맨스를 다룬 이야기도 아니고, 따뜻한 위로를 주는 힐링 소설도 아닙니다. 눈물나게 하고 삶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소설, 세번째 책입니다.

 

사람에 따라 각자의 봄밤이 있겠죠. 활짝 핀 꽃들이 반겨주는 공원을 달리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봄밤, 겨우내 입혔던 보온복을 벗겨주자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종종거리며 걷는 반려견과의 산책이 즐거웠던 봄밤, 왕벚나무 아래 놓인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친구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봄밤.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에 가서는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쏟아내고야 마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 「봄밤」이 있습니다.

 

‘수환’이 ‘영경’을 만났던 봄날은 “쌍안경 자국처럼 깊게 파”인 눈가와 “말랑한 주머니처럼 늘어져 있”던 볼을 가진 술 취한 영경을 업고 집에 데려다주던 밤이었어요. 그날 이후 매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영경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이 반복되다가 함께 살기로 하고 보낸 열두 번의 봄. 평범한 시작은 아니었어도 남들처럼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수환과 영경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류머티즘을 앓게 된 수환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영경은 함께 있기 위해 같은 요양원에 들어가 지내죠. 하지만 알코올중독자인 영경은 주기적으로 술을 마셔야 했어요. 수환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영경은 외출을 하고 며칠을 밖에서 보내고 들어오기를 되풀이하며 지냅니다. 둘이 함께한 마지막 봄에 다시 외출이 필요해진 영경과 독한 진통제를 맞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배웅하는 수환. 둘은 그날이 서로를 보는 마지막이라는 걸 알지 못하죠.

 

수환의 장례식이 끝난 후에야 돌아온 영경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엄청난 것이 사라진 느낌을 받으며 우는 장면에서 이번엔 결코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결국엔 영경을 따라 엉엉 울고 맙니다. 이들의 사랑이 눈물겨워서, 그 슬픔이 남 일 같지 않아서요. 하지만 둘의 사랑은 진심이었고 함께한 순간에는 행복했으므로 성공적인 사랑이었을 거예요. 특히 영경을 처음 만난 봄밤과 영경과의 마지막이었던 봄밤은 활짝 핀 꽃으로 더욱 환한 봄밤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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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김용택, 문학동네, 2006)


벚꽃이 휘날리던 어느 봄날, 카페 이층 창가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나타난 친구의 손에는 작은 시집이 한 권 들려 있어요.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반갑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그래서 당신’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먼저 갑니다. 안부 인사를 나누자마자 시집을 빼앗아 펼쳐요.

 

봄이면 꼭 읽고 있는 네번째 책은 시집입니다.

 

첫번째 시는 ‘매화’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시예요. 그다음은 「그리움」 「홍매」 「춘몽」 「나비」 「꽃」 「봄비」 등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한 몇 구절의 시에는 봄이 가득하네요. 시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바람이 불면, 내 가슴 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난다거나 “봄비 오는 날”이면 “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 비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비를” 본다는 단순한 시구절에 빠져 친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어디 그럼, 시를 한번 읽어봐” 하더니 시집을 건네주더군요. 그날 밤 시가 제게로 왔어요. 봄날 내내 이 시집을 들고 다녔어요, 특히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며 햇살을 쏟아냅니다. 눈이 부시네요.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기다립니다”로 시작하는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은 애정 시가 되었어요. 어쩌면 그즈음에 사랑에 빠진 제 마음이 이 시집 속에 들어 있어서 그런가봐요. 봄은 어쨌든 모든 것의 시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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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읽어보면 좋을 몇 권의 책

 

- 『어제는 봄』(최은미, 현대문학, 2019)

- 『4월이 오면 그녀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6』(요시다 아키미, 조은하 옮김, 문학동네, 2021)

- 「벚꽃 새해」(『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문학동네, 2013)

- 「상춘곡」(『반달』, 윤대녕, 문학동네, 2014)

- 『엄마. 나야.』(곽수인 외 33인, 난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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