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서의 마법이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더웠던 8월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낮에는 햇빛이 강렬하여 숨이 턱 막히지만, 그늘로 들어가기만 해도 8월의 폭염 때와는 다릅니다. 뭐라 해도 확실한 것은 처서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선선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참 신비로워요. 아무리 더워도 기다리면 결국 여름은 가고, 가을이 찾아오니까요.
선선해진 날씨에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이런 때, 잠시 틈을 내어 즐길 거리를 찾아보거나 책 한 권으로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긴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며 읽는 책이야말로 집중이 가장 잘되는 순간이죠. 그래서 이번 호에는 최근에 읽은 망중한의 도서들과 틈새 독서에 어울리는 책 몇 권을 소개해봅니다.
산문은 아침에 읽기에 좋아!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박솔뫼, 위즈덤하우스, 2024)
새벽에 자주 깹니다. 눈은 뜨지만 바로 일어나기보다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주로 책을 읽는 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일찍 일어난 덕분에 책을 펼칠 여유가 생깁니다. 아침이니까 가벼운 산문이나 유쾌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이면 좋겠죠.
최근에 저의 아침 독서를 담당한 책은 박솔뫼 작가의 산문입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이라는 제목에 끌려 구매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하루를 시작하기에 매우 바람직한 책이었습니다. 책이 책을 부른다고나 할까요? 계절별로 나누어진 목차에서 「여름」을 읽었는데 볼라뇨로 시작해서 볼라뇨로 끝나더라고요. 그 아침에 저는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꼭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읽기를 망설이던 작가 중 한 사람이었지만, ‘팔랑귀’인 제가 박솔뫼 작가가 좋다는 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거든요. 그 덕분에 제 장바구니에는 볼라뇨의 책이 가득 담겼습니다. 저는 책을 고를 때 추천해주는 사람의 글이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할 때가 꽤 있는데요, 대체로 성공률이 좋아요. 물론 제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요. 이번에도 박솔뫼 작가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제 장바구니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드네요. 실패율보다는 성공률이 더 높을 것도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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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웹툰을 읽기에 좋은 시간은 바로, 이때!

『미래의 골동품 가게 1~3』 (구아진, 들녘, 2023) / 『정년이 1~8』 (서이레, 나몬, 문학동네, 202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책을 읽는 일입니다. 그다음에 화장실 다녀오는 일까지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화장실의 친구(!)는 주로 핸드폰이지만 올여름 제 곁에는 웹툰이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했던 『미래의 골동품 가게』인데요,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있더라고요. 구아진 작가의 방대한 자료조사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저는 만화도 글밥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활자중독자인지라, 작가가 들려주는 한국 설화와 민담, 동북아시아 토착민의 신화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이 만화를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는지 아쉬울 정도였어요.
조금 으스스하고 무서운 내용들이 많아 그런 걸 못 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관심이 없을 테지만, 저는 평소에 무서운 것들을 잘 보는 편인데도 이 만화를 읽으면서는 오싹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선풍기나 에어컨 없는 화장실에 있을 때조차 더위를 느낄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책이었답니다. 단, 주의할 점은 책 읽느라 본분(!)을 잊고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못 나오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만화책 『정년이』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다 읽고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볼일은 안 보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10월 12일부터 tvN에서 12부작 드라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1권부터 재독하기 시작했어요. 웹툰 연재중에 10점 만점에 만점을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라 단행본 출간 소식에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단행본은 아직 완결 전이지만 드라마 시작 전에 모두 나올까요? 개인적으로 드라마 방영 전에 완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어서 만화편집부에 물어보니(출판사 직원은 이래서 좋은 거죠!) 두둥!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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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바쁜 가운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김태정, 창비, 2004)
휴가철이 지난 이맘때, 미황사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김태정 시인의 시집을 읽은 후였어요. 김태정 시인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에는 미황사를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요, 그 시들을 읽다보니 마치 미황사가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았거든요.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미황사(美黃寺)」)를 직접 맡아보고 싶었고,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 두 칸짜리 해우소”(「동백꽃 피는 해우소」)도 직접 가보고 싶었죠. 그리고 “하나, 둘, 셋……열 / 다시 하나, 둘, 셋……열 / 열까지 호흡을 세며 /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참선이란 걸 해본다”(「별밭에서 헤매다」)의 김태정 시인처럼 저도 새벽 예불에 가서 호흡을 하며 난생처음으로 참선도 해보고 싶었어요. 한밤에 쏟아지던 별들 아래, 휴가철이 지나 한가로운 미황사의 경내를 하릴없이 거닐며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다녀온 곳이었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었죠.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그런 망중한의 시간이 제게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미황사 템플스테이가 준 여유로움은 이후 오랫동안 힘들 때마다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이후 우연히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를 보게 되었는데요. 첫 이야기에 미황사가 나오더라고요. 주인공이 마치 그때의 저처럼 미황사 곳곳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잊고 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다시 슬슬 망중한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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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휴일의 하루를 책임지는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2024)
일주일 내내 회사 일에 치이다보면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책을 읽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장편소설처럼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책은 역시 약속 없는 주말에 읽는 것이 가장 좋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는 조해진 작가의 새 장편을 읽으며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답니다.
단편 「빛의 호위」의 연장선상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해 손을 내미는 따뜻한 마음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어린 시절 승준이 권은에게 그랬듯이,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권은에게 애나가 손을 내밉니다. 애나의 오빠 게리에 대한 권은의 애도가 두 사람을 연결했죠. 소설 속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이 소설이 감동적인 것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각 나라에도 있으며 그들 덕분에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위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주말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작고 추운 겨울 하나가 유리구 안에 밀봉되어 있는 그 세계가, 태엽을 끝까지 돌려도 겨우 일 분 삼십 초 동안만 빛이 들어오는 그곳이 유일한 위안”(82쪽)이 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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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읽는 단편

『음악소설집音樂小說集』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프란츠, 2024)
잠들기 전에 주로 뭐하시나요? 저는 예전부터 책을 읽으며 잠드는 습관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핸드폰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어서 잠들기 전 짧은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주로 단편소설을 읽는데요,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졸음이 찾아와 스르륵 잠이 들어요. 최근에는 『음악소설집』이 잠들기 전 저와 함께했습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선보인 『음악소설집』에는 등단 20년을 넘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다섯 작가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에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 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불렀다는 한국 음악, 옛 연인과 우연히 들었던 클래식과 함께 걸었던 밤길의 추억, 그리고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은 딸, 문상 가는 길에 기차에서 만난 한 노인의 악보를 보며 떠올린 각자의 기억을 담은 소설이 담겨 있어요. 다섯 편의 소설에서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소설을 읽으며 음악이 주는 위로와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요,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저는 잠들기 전, 한 편의 소설을 읽고 그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소설 속 음악을 들었는데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는 닷새 동안은 정말 행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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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의 마법이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더웠던 8월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낮에는 햇빛이 강렬하여 숨이 턱 막히지만, 그늘로 들어가기만 해도 8월의 폭염 때와는 다릅니다. 뭐라 해도 확실한 것은 처서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선선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참 신비로워요. 아무리 더워도 기다리면 결국 여름은 가고, 가을이 찾아오니까요.
선선해진 날씨에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이런 때, 잠시 틈을 내어 즐길 거리를 찾아보거나 책 한 권으로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긴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며 읽는 책이야말로 집중이 가장 잘되는 순간이죠. 그래서 이번 호에는 최근에 읽은 망중한의 도서들과 틈새 독서에 어울리는 책 몇 권을 소개해봅니다.
산문은 아침에 읽기에 좋아!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박솔뫼, 위즈덤하우스, 2024)
새벽에 자주 깹니다. 눈은 뜨지만 바로 일어나기보다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주로 책을 읽는 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일찍 일어난 덕분에 책을 펼칠 여유가 생깁니다. 아침이니까 가벼운 산문이나 유쾌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이면 좋겠죠.
최근에 저의 아침 독서를 담당한 책은 박솔뫼 작가의 산문입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이라는 제목에 끌려 구매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하루를 시작하기에 매우 바람직한 책이었습니다. 책이 책을 부른다고나 할까요? 계절별로 나누어진 목차에서 「여름」을 읽었는데 볼라뇨로 시작해서 볼라뇨로 끝나더라고요. 그 아침에 저는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꼭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읽기를 망설이던 작가 중 한 사람이었지만, ‘팔랑귀’인 제가 박솔뫼 작가가 좋다는 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거든요. 그 덕분에 제 장바구니에는 볼라뇨의 책이 가득 담겼습니다. 저는 책을 고를 때 추천해주는 사람의 글이나 이야기를 듣고 선택할 때가 꽤 있는데요, 대체로 성공률이 좋아요. 물론 제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요. 이번에도 박솔뫼 작가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제 장바구니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드네요. 실패율보다는 성공률이 더 높을 것도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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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웹툰을 읽기에 좋은 시간은 바로, 이때!
『미래의 골동품 가게 1~3』 (구아진, 들녘, 2023) / 『정년이 1~8』 (서이레, 나몬, 문학동네, 202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책을 읽는 일입니다. 그다음에 화장실 다녀오는 일까지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화장실의 친구(!)는 주로 핸드폰이지만 올여름 제 곁에는 웹툰이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했던 『미래의 골동품 가게』인데요,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있더라고요. 구아진 작가의 방대한 자료조사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저는 만화도 글밥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활자중독자인지라, 작가가 들려주는 한국 설화와 민담, 동북아시아 토착민의 신화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이 만화를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는지 아쉬울 정도였어요.
조금 으스스하고 무서운 내용들이 많아 그런 걸 못 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관심이 없을 테지만, 저는 평소에 무서운 것들을 잘 보는 편인데도 이 만화를 읽으면서는 오싹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선풍기나 에어컨 없는 화장실에 있을 때조차 더위를 느낄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책이었답니다. 단, 주의할 점은 책 읽느라 본분(!)을 잊고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못 나오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만화책 『정년이』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다 읽고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볼일은 안 보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10월 12일부터 tvN에서 12부작 드라마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1권부터 재독하기 시작했어요. 웹툰 연재중에 10점 만점에 만점을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라 단행본 출간 소식에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단행본은 아직 완결 전이지만 드라마 시작 전에 모두 나올까요? 개인적으로 드라마 방영 전에 완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어서 만화편집부에 물어보니(출판사 직원은 이래서 좋은 거죠!) 두둥!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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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바쁜 가운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김태정, 창비, 2004)
휴가철이 지난 이맘때, 미황사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김태정 시인의 시집을 읽은 후였어요. 김태정 시인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에는 미황사를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요, 그 시들을 읽다보니 마치 미황사가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았거든요.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미황사(美黃寺)」)를 직접 맡아보고 싶었고,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 두 칸짜리 해우소”(「동백꽃 피는 해우소」)도 직접 가보고 싶었죠. 그리고 “하나, 둘, 셋……열 / 다시 하나, 둘, 셋……열 / 열까지 호흡을 세며 /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참선이란 걸 해본다”(「별밭에서 헤매다」)의 김태정 시인처럼 저도 새벽 예불에 가서 호흡을 하며 난생처음으로 참선도 해보고 싶었어요. 한밤에 쏟아지던 별들 아래, 휴가철이 지나 한가로운 미황사의 경내를 하릴없이 거닐며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다녀온 곳이었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었죠.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그런 망중한의 시간이 제게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미황사 템플스테이가 준 여유로움은 이후 오랫동안 힘들 때마다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이후 우연히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를 보게 되었는데요. 첫 이야기에 미황사가 나오더라고요. 주인공이 마치 그때의 저처럼 미황사 곳곳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잊고 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다시 슬슬 망중한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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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휴일의 하루를 책임지는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2024)
일주일 내내 회사 일에 치이다보면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책을 읽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장편소설처럼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책은 역시 약속 없는 주말에 읽는 것이 가장 좋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는 조해진 작가의 새 장편을 읽으며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답니다.
단편 「빛의 호위」의 연장선상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해 손을 내미는 따뜻한 마음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어린 시절 승준이 권은에게 그랬듯이,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권은에게 애나가 손을 내밉니다. 애나의 오빠 게리에 대한 권은의 애도가 두 사람을 연결했죠. 소설 속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이 소설이 감동적인 것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각 나라에도 있으며 그들 덕분에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위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주말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작고 추운 겨울 하나가 유리구 안에 밀봉되어 있는 그 세계가, 태엽을 끝까지 돌려도 겨우 일 분 삼십 초 동안만 빛이 들어오는 그곳이 유일한 위안”(82쪽)이 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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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편안한 잠자리에서 읽는 단편
『음악소설집音樂小說集』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프란츠, 2024)
잠들기 전에 주로 뭐하시나요? 저는 예전부터 책을 읽으며 잠드는 습관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핸드폰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어서 잠들기 전 짧은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주로 단편소설을 읽는데요,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졸음이 찾아와 스르륵 잠이 들어요. 최근에는 『음악소설집』이 잠들기 전 저와 함께했습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선보인 『음악소설집』에는 등단 20년을 넘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다섯 작가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에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 엄마가 친구들과 함께 불렀다는 한국 음악, 옛 연인과 우연히 들었던 클래식과 함께 걸었던 밤길의 추억, 그리고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은 딸, 문상 가는 길에 기차에서 만난 한 노인의 악보를 보며 떠올린 각자의 기억을 담은 소설이 담겨 있어요. 다섯 편의 소설에서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소설을 읽으며 음악이 주는 위로와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요,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 저는 잠들기 전, 한 편의 소설을 읽고 그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소설 속 음악을 들었는데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는 닷새 동안은 정말 행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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