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쁘다’라는 말 뒤에 서서 많은 것을 놓아버리곤 합니다. 일단 바쁘게 살다보면 언젠가 놓았던 것들을 주워 담을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놓아버린 것들, 이를테면 오늘 하늘에 뜬 강아지 모양의 뭉게구름, 짧은 저녁 산책에서 느낄 수 있는 설익은 가을 한줄기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도, 바쁘기 때문에 더더욱 잠시라도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바쁜 와중 찰나의 한가로움, 망중한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최근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낸 문학동네 임직원 두 분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홉 명의 목숨』을 편집하신 허유민 편집자(에디터 미니)와, 『그레이트 서클』과 『빛과 멜로디』를 작업하신 백주영 디자이너(에디터 맥주)인데요. 최근 화제작을 작업하신 두 분의 망중한을 들여다보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먼저 계절공방 구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1. 미니
안녕하세요! 해외3팀에서 해외문학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허유민입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확장되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일에 매료되어 해외문학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현대 영미소설을 편집하며 종종 에세이를 작업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출판사 직원들이 그렇듯 중증의 활자중독자로 늘 무언가를 읽고 있는데요. 요즘은 출퇴근길에 20여 개의 뉴스레터를 읽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A1. 맥주
반갑습니다. 저는 문학동네 북디자이너입니다. 인문서, 만화, 문학 등 장르 전반을 디자인하고 있는데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이번 인터뷰 주제와 맞는 사람일지 걱정이 됩니다. 최선을 다해 대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Q2. 두 분이 최근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는 소문이 문학동네 내에 파다합니다. 어떤 작업으로 바쁘셨는지요.
A2. 미니
다들 바쁘셔서 ‘바빴다’고 하기에 살짝 민망하지만, 최근 작업한 『아홉 명의 목숨』으로 지난 두 달을 알차게 보낸 것 같습니다. 스릴러의 대표 작가 피터 스완슨의 신작인데요. 많은 독자들이 애정하는 작가인 만큼 신경쓸 부분이 많아 분주하게 뛰어다녔어요. 인물 소개와 추리 노트가 들어간 엽서 삽지도 만들고, 서평단을 위한 티저북 마감 한 번, 본책 마감 한 번 총 두 번의 마감을 일주일 간격으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도서 제작이 들어간 후에는 마케팅팀이 열심히 만든 콘텐츠를 확인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신저로 파일을 주고받았어요. 덕분에 책도, 홍보 콘텐츠도 다 잘 나와서 바쁘지만 뿌듯한 나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A2. 맥주
저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유독 바쁘고 뜨거웠던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오~ 좀 바쁘네?” 하는데 의뢰서가 또 들어오는 그런 나날이었어요. 저는 최근에 조해진 작가님의 5년 만의 신작 장편 『빛과 멜로디』, 그리고 원고의 양만큼이나 압도적인 스케일의 영미소설 『그레이트 서클』을 작업했습니다. 두 원고가 다르지만 비슷해서 교차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두 소설 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빛나고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Q3. 두 분 다 정신없는 여름을 보내셨겠는데요. 마침 이번 레터의 주제가 ‘바쁜 사이에 잠깐 얻어낸 틈’이라는 뜻을 가진 망중한입니다. 이번 작업 기간 내 특별히 즐긴 망중한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왼) 미니의 짧은 산책길 파주 풍경 / (오) 맥주의 망원경 속 같은 자리 파랑새
A3. 미니
점심시간에 짧은 산책을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곤 했어요. 파주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산책하는 재미가 커요.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초록색 하천 위를 날아가는 새들, 비 온 뒤 시리도록 푸르게 갠 하늘, 여름을 실감하는 매미 울음소리를 눈과 귀로 만끽하며 걷고 있으면 뿌옇던 머리가 맑게 개는 기분이 듭니다. 가끔은 회사 정문 옆에 있는 화단도 구경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 있어요. 큰 꽃송이가 달린 키 큰 식물과 나팔꽃, 심지어 딸기도 있습니다. 봄에 빨간 딸기가 조그맣게 매달려 있는 걸 보았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A3. 맥주
아무래도 작업을 할 땐 모니터와 원고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그럴 땐 ‘파주’라는 지역의 장점을 적극 이용합니다. 책상에 망원경이 하나 있고, 또 매일 메고 다니는 백팩에도 망원경이 하나 있어요. 뭔가 좀 환기가 필요할 땐 망원경의 동그란 원에 눈을 대봅니다. 창문 앞 벚나무에 찾아오는 새를 탐조하기도 하고요, 나뭇잎 앞면 뒷면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장면을 멍하니 보기도 합니다.
Q4. 역시 파주 노동자라면 파주의 풍경을 십분 활용하게 되나봅니다. 저도 틈틈이 두 눈에 창밖의 푸르름을 담아두는데요. 그럴 때마다 모니터를 벗어나 내가 두 발을 딛고 자리하는 이 현실세계를 바로 느낄 수 있어 좋더라고요. 그렇다면 두 분은 주로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자주 망중한을 가지시는 편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망중한의 시간이 있을까요?

미니의 간식 서랍에도 불어온 저속노화 열풍
A4. 미니
업무시간에는 세네시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 마침 졸음이 쏟아질 시간이거든요. 앉아 있느라 굳은 몸도 풀어줄 겸 일어나서 잠시 탕비실에 간다거나, 당이 떨어질 때 조용히 책상 옆 서랍에서 간식을 꺼내 먹어요. 특히 간식 먹는 시간이 오후의 소소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서랍의 간식 트렌드가 바뀌었어요. 전에는 에너지바나 과자류를 주로 넣어두었는데, 요즘엔 저속노화로 유명한 정희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견과류로 바꾸었습니다. 영양소도 풍부하고 좋은 탄수화물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이참에 건강을 챙겨보자는 마음으로 먹고 있는데, 생각보다 포만감도 크고 잠도 깨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어요.

맥주의 사무실 풍경. 겨울에 놓아줄 새집이 보인다.
A4. 맥주
아침 회사 앞. 출판사를 다니는 회사원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주부니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걷는 것도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 주로 아침의 파주를 탐색해요. 더운 날이 지나고, 조금 선선해지려니까 아침 시간엔 흰뺨검둥오리 등의 새들이 많이 보여요. 파주엔 습지가 많거든요. 그 녀석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또 파동과 파동이 만나서 생기는 파동의 삭제를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Q5. 출판사 직원은 마감 노동자라는 말이 있지요. 업무 특성상 두 분 다 마감이 임박하면 틈을 사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특별히 시간을 내서 틈을 사수하시는 편인가요? 혹시 망중한을 사수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A5. 미니
마감이 임박한 주에는 아무래도 쉴 틈을 내기 어렵지만,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은 있어야 힘을 얻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매일 업무 노트를 쓰는데, 그날 할 일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가며 일을 해요. 그때 업무 사이사이에 저에게 약간의 틈을 허락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업무가 A, B, C, D, E가 있다고 하면 ‘A, B까지 한 다음에 C를 하기 전에 잠깐 쉬어줘야지’ 하고 여유를 주는 거예요.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그 틈을 놓칠 때도 있지만 그러면 다시 ‘D를 하기 전에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계획형 인간인 INFJ답게 휴식마저 계획하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 같아요.
A5. 맥주
마감은 늘 있는 일이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마감에 대한 리추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아요. 이번 기회로 책 한 권 한 권 쌓일 때마다 적당한 망중한을 사수하도록 의식해보겠습니다.
Q6. 두 분은 망중한을 사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망중한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A6. 미니
일의 지속성을 위해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쉬어가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교정을 볼 때 더 나은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 잠시 쉬어주고 돌아오면 괜찮은 표현이 생각나요. 편집 업무의 마지막 단계인, 거의 모든 편집자가 싫어하는 (좋아하는 편집자가 과연 있을까요?) 신간안내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다가, 잠시 간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다보면 생각이 정리되어 이어서 쓸 수 있게 돼요. 바쁘고 촉박할수록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질 때, 그 시간이 마중물이 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A6. 맥주
잘 안되는 부분이라 애를 많이 먹었는데,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아주 좋아진 부분도 생겼어요. 업무와 개인적인 시간에 대한 스위치가 잘 눌러지고 있느냐인데, 반드시 쉼표가 있어야 질주도 가능하기 때문에 꼭 한 번씩은 잠깐의 망중한이 필요한 것 같아요.
Q7. 그럼 마지막 질문은 가볍게(?) 밸런스 게임으로 해볼게요. 망중한의 반대말은 한중망(한가한 가운데 바쁨)이 되겠지요. 망중한과 한중망.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실 건가요?
A7. 미니
저는 한중망을 고르고 싶어요. 일하다보면 그런 날이 있잖아요. 엄청 바쁜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분주하고, 그렇다고 아주 여유롭지는 않은 날. 그런 ‘은은하게 바쁜 날’에는 적당한 성취감과 적당한 피로감이 있습니다. 오늘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도 들고, 그럼에도 너무 자신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망중한에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도 있죠. 바쁘게 일하다가 잠깐 쉴 때, 또는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는 충만함이 밀려들곤 해요. 하지만 잦은 망중한(또는 마감)은 편집자를 슬프게 하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역시 한중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A7. 맥주
망중한이 한중망보단 쓰임이 많은 사람일 것 같아서 망중한으로!
두 분의 망중한을 들여다보고 나니, 역시 바쁠수록 틈을 사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틈의 모양새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중요한 건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틈을 찾아두고, 부지런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때로는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가 나의 망중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요. 부디 〈계절공방〉 독자님들도 자신만의 망중한을 찾아 자주 들여다보시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시간이 또하나의 망중한이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 인터뷰를 마칩니다.
Interviewee


Interviewer

우리는 ‘바쁘다’라는 말 뒤에 서서 많은 것을 놓아버리곤 합니다. 일단 바쁘게 살다보면 언젠가 놓았던 것들을 주워 담을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놓아버린 것들, 이를테면 오늘 하늘에 뜬 강아지 모양의 뭉게구름, 짧은 저녁 산책에서 느낄 수 있는 설익은 가을 한줄기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도, 바쁘기 때문에 더더욱 잠시라도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바쁜 와중 찰나의 한가로움, 망중한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최근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낸 문학동네 임직원 두 분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홉 명의 목숨』을 편집하신 허유민 편집자(에디터 미니)와, 『그레이트 서클』과 『빛과 멜로디』를 작업하신 백주영 디자이너(에디터 맥주)인데요. 최근 화제작을 작업하신 두 분의 망중한을 들여다보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먼저 계절공방 구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1. 미니
안녕하세요! 해외3팀에서 해외문학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허유민입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확장되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일에 매료되어 해외문학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현대 영미소설을 편집하며 종종 에세이를 작업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출판사 직원들이 그렇듯 중증의 활자중독자로 늘 무언가를 읽고 있는데요. 요즘은 출퇴근길에 20여 개의 뉴스레터를 읽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A1. 맥주
반갑습니다. 저는 문학동네 북디자이너입니다. 인문서, 만화, 문학 등 장르 전반을 디자인하고 있는데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이번 인터뷰 주제와 맞는 사람일지 걱정이 됩니다. 최선을 다해 대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Q2. 두 분이 최근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는 소문이 문학동네 내에 파다합니다. 어떤 작업으로 바쁘셨는지요.
A2. 미니
다들 바쁘셔서 ‘바빴다’고 하기에 살짝 민망하지만, 최근 작업한 『아홉 명의 목숨』으로 지난 두 달을 알차게 보낸 것 같습니다. 스릴러의 대표 작가 피터 스완슨의 신작인데요. 많은 독자들이 애정하는 작가인 만큼 신경쓸 부분이 많아 분주하게 뛰어다녔어요. 인물 소개와 추리 노트가 들어간 엽서 삽지도 만들고, 서평단을 위한 티저북 마감 한 번, 본책 마감 한 번 총 두 번의 마감을 일주일 간격으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도서 제작이 들어간 후에는 마케팅팀이 열심히 만든 콘텐츠를 확인하느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신저로 파일을 주고받았어요. 덕분에 책도, 홍보 콘텐츠도 다 잘 나와서 바쁘지만 뿌듯한 나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A2. 맥주
저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유독 바쁘고 뜨거웠던 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오~ 좀 바쁘네?” 하는데 의뢰서가 또 들어오는 그런 나날이었어요. 저는 최근에 조해진 작가님의 5년 만의 신작 장편 『빛과 멜로디』, 그리고 원고의 양만큼이나 압도적인 스케일의 영미소설 『그레이트 서클』을 작업했습니다. 두 원고가 다르지만 비슷해서 교차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두 소설 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빛나고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Q3. 두 분 다 정신없는 여름을 보내셨겠는데요. 마침 이번 레터의 주제가 ‘바쁜 사이에 잠깐 얻어낸 틈’이라는 뜻을 가진 망중한입니다. 이번 작업 기간 내 특별히 즐긴 망중한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왼) 미니의 짧은 산책길 파주 풍경 / (오) 맥주의 망원경 속 같은 자리 파랑새
A3. 미니
점심시간에 짧은 산책을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곤 했어요. 파주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산책하는 재미가 커요.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초록색 하천 위를 날아가는 새들, 비 온 뒤 시리도록 푸르게 갠 하늘, 여름을 실감하는 매미 울음소리를 눈과 귀로 만끽하며 걷고 있으면 뿌옇던 머리가 맑게 개는 기분이 듭니다. 가끔은 회사 정문 옆에 있는 화단도 구경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 있어요. 큰 꽃송이가 달린 키 큰 식물과 나팔꽃, 심지어 딸기도 있습니다. 봄에 빨간 딸기가 조그맣게 매달려 있는 걸 보았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A3. 맥주
아무래도 작업을 할 땐 모니터와 원고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그럴 땐 ‘파주’라는 지역의 장점을 적극 이용합니다. 책상에 망원경이 하나 있고, 또 매일 메고 다니는 백팩에도 망원경이 하나 있어요. 뭔가 좀 환기가 필요할 땐 망원경의 동그란 원에 눈을 대봅니다. 창문 앞 벚나무에 찾아오는 새를 탐조하기도 하고요, 나뭇잎 앞면 뒷면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장면을 멍하니 보기도 합니다.
Q4. 역시 파주 노동자라면 파주의 풍경을 십분 활용하게 되나봅니다. 저도 틈틈이 두 눈에 창밖의 푸르름을 담아두는데요. 그럴 때마다 모니터를 벗어나 내가 두 발을 딛고 자리하는 이 현실세계를 바로 느낄 수 있어 좋더라고요. 그렇다면 두 분은 주로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자주 망중한을 가지시는 편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망중한의 시간이 있을까요?
미니의 간식 서랍에도 불어온 저속노화 열풍
A4. 미니
업무시간에는 세네시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아요. 마침 졸음이 쏟아질 시간이거든요. 앉아 있느라 굳은 몸도 풀어줄 겸 일어나서 잠시 탕비실에 간다거나, 당이 떨어질 때 조용히 책상 옆 서랍에서 간식을 꺼내 먹어요. 특히 간식 먹는 시간이 오후의 소소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서랍의 간식 트렌드가 바뀌었어요. 전에는 에너지바나 과자류를 주로 넣어두었는데, 요즘엔 저속노화로 유명한 정희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견과류로 바꾸었습니다. 영양소도 풍부하고 좋은 탄수화물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이참에 건강을 챙겨보자는 마음으로 먹고 있는데, 생각보다 포만감도 크고 잠도 깨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어요.
맥주의 사무실 풍경. 겨울에 놓아줄 새집이 보인다.
A4. 맥주
아침 회사 앞. 출판사를 다니는 회사원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주부니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걷는 것도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 주로 아침의 파주를 탐색해요. 더운 날이 지나고, 조금 선선해지려니까 아침 시간엔 흰뺨검둥오리 등의 새들이 많이 보여요. 파주엔 습지가 많거든요. 그 녀석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을, 또 파동과 파동이 만나서 생기는 파동의 삭제를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Q5. 출판사 직원은 마감 노동자라는 말이 있지요. 업무 특성상 두 분 다 마감이 임박하면 틈을 사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특별히 시간을 내서 틈을 사수하시는 편인가요? 혹시 망중한을 사수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A5. 미니
마감이 임박한 주에는 아무래도 쉴 틈을 내기 어렵지만,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은 있어야 힘을 얻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매일 업무 노트를 쓰는데, 그날 할 일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가며 일을 해요. 그때 업무 사이사이에 저에게 약간의 틈을 허락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업무가 A, B, C, D, E가 있다고 하면 ‘A, B까지 한 다음에 C를 하기 전에 잠깐 쉬어줘야지’ 하고 여유를 주는 거예요.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그 틈을 놓칠 때도 있지만 그러면 다시 ‘D를 하기 전에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계획형 인간인 INFJ답게 휴식마저 계획하는 것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 같아요.
A5. 맥주
마감은 늘 있는 일이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마감에 대한 리추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아요. 이번 기회로 책 한 권 한 권 쌓일 때마다 적당한 망중한을 사수하도록 의식해보겠습니다.
Q6. 두 분은 망중한을 사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망중한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A6. 미니
일의 지속성을 위해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쉬어가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교정을 볼 때 더 나은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 잠시 쉬어주고 돌아오면 괜찮은 표현이 생각나요. 편집 업무의 마지막 단계인, 거의 모든 편집자가 싫어하는 (좋아하는 편집자가 과연 있을까요?) 신간안내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다가, 잠시 간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다보면 생각이 정리되어 이어서 쓸 수 있게 돼요. 바쁘고 촉박할수록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질 때, 그 시간이 마중물이 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A6. 맥주
잘 안되는 부분이라 애를 많이 먹었는데,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아주 좋아진 부분도 생겼어요. 업무와 개인적인 시간에 대한 스위치가 잘 눌러지고 있느냐인데, 반드시 쉼표가 있어야 질주도 가능하기 때문에 꼭 한 번씩은 잠깐의 망중한이 필요한 것 같아요.
Q7. 그럼 마지막 질문은 가볍게(?) 밸런스 게임으로 해볼게요. 망중한의 반대말은 한중망(한가한 가운데 바쁨)이 되겠지요. 망중한과 한중망.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실 건가요?
A7. 미니
저는 한중망을 고르고 싶어요. 일하다보면 그런 날이 있잖아요. 엄청 바쁜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분주하고, 그렇다고 아주 여유롭지는 않은 날. 그런 ‘은은하게 바쁜 날’에는 적당한 성취감과 적당한 피로감이 있습니다. 오늘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도 들고, 그럼에도 너무 자신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망중한에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도 있죠. 바쁘게 일하다가 잠깐 쉴 때, 또는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는 충만함이 밀려들곤 해요. 하지만 잦은 망중한(또는 마감)은 편집자를 슬프게 하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역시 한중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A7. 맥주
망중한이 한중망보단 쓰임이 많은 사람일 것 같아서 망중한으로!
두 분의 망중한을 들여다보고 나니, 역시 바쁠수록 틈을 사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틈의 모양새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중요한 건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틈을 찾아두고, 부지런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때로는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가 나의 망중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요. 부디 〈계절공방〉 독자님들도 자신만의 망중한을 찾아 자주 들여다보시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시간이 또하나의 망중한이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 인터뷰를 마칩니다.
Interview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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