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Editor’s Pick : 에디터들이 사랑한 김애란의 단편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누군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일이 있을까요?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고 나누는 자리, 〈계절공방〉 에디터들은 김애란 작가를 향한 사랑 고백을 냅다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대화 끝에 이번 〈계절공방〉 8호도 만들어질 수 있었지요.

김애란 작가와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 최근에는 원고를 최초 공개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독파메이트에 지원하기도 하고, 찐팬 테스트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어요. 에디터들은 정말 김애란 작가님에 진심이랍니다.

오늘 에디터스 코너에서는 에디터 5인이 사랑한 김애란 작가의 단편을 하나씩 소개하려 합니다. 이번 호를 통해 새로 인사드리는 송쏘, 디또, 보니의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에디터 송쏘가 사랑한 단편 「풍경의 쓸모」

얼마 전, 본가에서 먼지가 두껍게 쌓인 앨범을 펼쳐보았는데요. 지금 우리 가족과는 사뭇 다른, 마치 앞으로 닥쳐올 삶의 권태와 풍파 따위는 전혀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는 듯 해사하고 단란한 젊은 가족의 모습을 보니 참 오묘했어요. 뭉클하면서도 명치 아래 어딘가가 아릿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이후 이번 원고를 쓰고자 오랜만에 『바깥은 여름』을 꺼내 읽었고, 이 구절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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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읽고, 제가 느낀 아릿한 통증에 어렴풋이나마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건 단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냥 해맑은 네 사람에 대한 일종의 안타까움, 앞으로 그들 앞에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는 데서 비롯한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풍경의 쓸모」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어렸을 땐 커가며 무엇을 잃어버릴지 모른 채 사진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젊은 강사가 되어서는 앞으로 얼마나 ‘중심’에서 멀어질지 모른 채 사회에 속한 기분에 섣불리 들뜨고 말죠. 그리고 ‘중심’에 속하고 싶어서 어떤 선택을 하고 마는데요. 이야기 바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엔 결과를 알 것만 같은, 그래서 안타깝고 어리석은 선택이죠.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지금 나는 얼마나 많은 걸 모르고 있으며, 내가 많은 걸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까 싶어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간에 미리 안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지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어떤 어리석음을, 실패를, 상실을 우리가 미리 알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을 피해 갈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때론 기꺼이 어리석어지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질까 두려워 이 소설처럼 좋은 이야기를 부지런히 읽어두곤 하고요. 어쩌면 사진 속 나의 어린 엄마와 아빠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에디터 지지가 사랑한 단편 「입동」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마치 함께 보는 유명 드라마를 가지고 친구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특정 책에 대해서 수다를 떠는 일이 많습니다. 아마 같은 책을, 그것이 일로서든 취미로든 함께 읽고 있어 가능한 일이겠지요. 회사 밖을 나가면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서 가끔씩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판사에서 ‘책’이란 그 무엇보다 핫한 콘텐츠이고 유희의 대상이랍니다.

『바깥은 여름』이 출간되었던 2017년도 그랬습니다. 탕비실에서 동기들을 마주치면 “읽어봤어?”라고 서로 물어보기 바빴고, 평소에는 잘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다른 부서 과장님의 SNS에 이 책에 대한 장문의 리뷰가 올라와 공감하며 읽은 기억도 납니다. 다들 많이 울고, 또 괴로워하며 읽었지만 모두가 한목소리로 이 책을 좋아했어요.

「입동」은 『바깥은 여름』에 실린 첫번째 단편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비극. 부부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리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무심하게 보낸 선물, 부모가 보험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도는 괴상한 소문들, 그럼에도 다시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일까지. 부부를 둘러싼 기이한 폭력과 분노를 넘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들을 그들은 오롯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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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읊조림을, 문장의 마침표를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묵직한 진실로 와닿았어요. 아이가 세상에 없다는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과, 그 누구와도 공유될 수 없는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한 닫힘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린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공통점이라곤 거의 없을 소설 속 부부와 독자인 저, 그리고 이 소설을 썼을 작가를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조금은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에디터 일립이 사랑한 단편 「노찬성과 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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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생명을 내가 온전히 ‘책임’진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이 연약하고 무력한 생명체의 체온과 호흡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는 아릿한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아무 말 없이 『바깥은 여름』 수록작 「노찬성과 에반」을 추천할 것입니다.

이야기는 노찬성이라는 이름의 초등학생이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며 시작됩니다. 찬성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와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둘이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찬성에게 버려진 개가 나타나고, 찬성은 그 개에게 ‘에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동생이자 친구로 삼습니다.

그러나 찬성을 만날 때 이미 나이든 개였던 에반은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립니다. 찬성은 에반이 더는 괴롭지 않도록 안락사를 시켜주려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나이를 속인 후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아껴 모은 10만 원으로 에반의 고통을 덜어주려 하죠.

하지만 난생처음으로 큰돈을 쥐어본 찬성은 몇 가지 유혹―스마트폰 유심 칩, 액정 보호 필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따끈한 핫바―을 이기지 못합니다. 결국 10만 원이 넘던 돈은 어느새 6만 7천 원이 되고, 죄책감에 길바닥을 떠돌다가 돌아온 찬성은 에반이 사라졌음을 알게 됩니다.

결말은 알려드리지 않을 예정이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작고 약한 생명체의 안녕을 어떻게든 책임져보려고 한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 앞에서 울지 않기란 어려울 거예요.

읽는 동안 처음으로 키운 고양이를 떠올리며 오래 울었습니다. 엄마 고양이가 길에 버렸고, 맡아줄 이도 갈 곳도 없다는 말에 덜컥 데려온 새끼 고양이 나고는 선천적 심장 기형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이 사실을 그애가 두 살이 되던 해에 알았고,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죠.

찬성과 달리 아르바이트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저는 버는 돈의 거의 모두를 나고의 병원비와 검진비와 약값에 쏟아부었습니다.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저는 라면을 먹어도 그애가 먹고 쓴 것들은 모두 고가의 수입품이었고, 제 약은 잊어도 아침저녁으로 먹여야 하는 나고의 심장약은 빼먹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아도 여전히,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의 마음은 저를 의심합니다. 과연 나는 나고를 제대로 ‘책임’진 걸까? 나는 나고에게 최선을 다했을까? 술자리를 덜 나가고 더 일찍 들어왔더라면, 물을 더 많이 마시게 했더라면, 더 큰 병원에 가고 더 자주 검진을 했더라면 우리 나고는 더 오래 살았을까?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압니다. 찬성 역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라는 사실과, 그 질문 앞에서 찬성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스마트폰 유심 칩이 필요하고 핫바가 먹고 싶은 것은 그애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죠.

「노찬성과 에반」은 김애란 작가님이 그리는 슬픔의 면면들 중 제가 가장 아프게 느끼는 슬픔입니다. 작고 소중한 생명을 책임져본 분들이라면 같은 눈물을 흘릴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에디터 디또가 사랑한 단편 「침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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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하는 것, 쓰는 것, 생각하는 것, 감탄하는 것 모두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지만 실감합니다. 언어라는 상징물은 과연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언어의 기원, 언어의 의미, 언어의 모든 것 말이에요. 당연하게 읽고 쓰지만, 결국 이것 또한 시작점이 있는 한 문명인 셈이죠.

『바깥은 여름』의 네번째 단편 「침묵의 미래」를 읽고 나면 언어는 또한 권력이라고 여겨집니다. 세계 공용어와 소멸해가는 소수 언어의 극명한 대비를 머릿속에 연상해보기만 해도 그 힘을 느낄 수 있죠. 당연하게 배우고 사용하는 세계 공용어, 해외여행 중 “실례합니다”라고 영어로 발화를 시작하는 것조차 일종의 권력이었음을 느낍니다.

그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_「침묵의 미래」, 132쪽

저는 외국어를 쓸 때 제 세계가 확장됨을 느껴요.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취미로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저는 외국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프랑스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일본어 노랫말을 어쩌다 이해하는 기쁨이 좋습니다.

저는 모국어를 쓸 때 제 세계가 깊어짐을 느껴요. 모국어로 사유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무엇보다 모국어로 내밀한 대화까지 할 수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요. 단편 속 주인공처럼 내가 내 언어를 쓰는 ‘마지막 화자’라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은 그만 끝내고 싶을 정도로 끔찍합니다.

모국어, 그리고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넓고 깊은 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언어라는 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겠죠. 책 속에서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의 고독함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러기에 사라질 것들에 더욱 마음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무상함에 담담해지는 마음으로 책을 덮습니다.



에디터 보니가 사랑한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

이 책을 처음 펼쳤던 곳은 한남동의 작은 책방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간,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향긋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저는 소설 앤솔러지 『음악소설집』의 첫번째 단편인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마치 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이 책 속으로 저를 끌어들이는 듯했죠.

이 소설에서는 〈Love Hurts〉라는 곡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곡을 바탕으로 인물들 사이의 이해와 오해,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간극이 섬세하게 그려지는데요. 대화 속에 스며든 음색들은 마치 이 노래가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작중에서 주인공 은미는 화상영어 수업을 통해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강사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눕니다.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오해와 의미의 상실이 생기기도 하고, 또 어떤 말들은 부족한 영어 실력 덕분에 오히려 담백하고 솔직하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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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하고 싶은 말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 혹은 익숙했던 단어가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항상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말이죠. 그래서 오해나 갈등이 생기더라도 ‘아, 그 사람에게는 그런 뜻이었겠구나’ 하고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말들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그제야 이해하게 되는 순간도 있죠. 마치 그때는 들리지 않던 선율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것처럼요.

이 책의 말미에는 김애란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그는 책장을 펼치면 흘러나오는 멜로디 카드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저에게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이 책을 다시 펼칠 때마다, 그 책방에서의 시간과 〈Love Hurts〉의 멜로디가 제 머릿속에서 오르골처럼 조용히 재생될 것 같습니다.

▶ 더 알아보기: 〈Love Hurts〉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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