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마음(「미스테리아」 김용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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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 4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셜록 홈즈’ 시리즈와 엘러리 퀸과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전까지 ‘아동용’ 작품을 읽으면 선한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았고, 혹시라도 죄 없는 이가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연민과 애도가 주어졌다(적절한 예일지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그전까지 접했던 동화 전집에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를 『행복한 왕자』로만 알았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찾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었다). 그런데 미스터리 소설(비록 아동용으로 축약된 버전일지라도)을 읽으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가 끔찍한 욕망과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처음 배웠고, 삶은 권선징악의 법칙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그나마 정의와 행복을 향한 희망은 이미 저질러진 죄를 누군가 들여다보고 해결하여 악의 원인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했다. 열 살짜리에게도 그 깨달음은 너무나 놀라웠고, 또 빛나는 이성과 지혜를 지닌 탐정이 악을 찾아내 처단하는 과정이 너무나 짜릿해서,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결말을 알고 싶은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손에 쥔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부모님은 애가 왜 이렇게 ‘사람 죽이는 책’에 열심일까 하며 용돈을 끊기도 하고 꾸중도 여러 번 했지만, 부모님이 아무리 길을 막아도 애들은 다 빠져나갈 방도를 찾기 마련이다.

그후로 30년이 넘게 흘렀다. 최근에는 내면의 흐름을 좇는 소설을 읽다가 문득 독서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주인공의 모호한 의식에 나까지 감염되는 것 같아, 책을 읽던 중 몇 번이나 내려놓았다. 그 소설을 완독한 다음 새로운 미스터리 소설을 집어들어 몇 페이지 넘겼을 때 불현듯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명료한 이야기를 원하고 있구나. 세상이 제아무리 혼탁하고 우연과 변덕이 지배하는 난장판이라 할지라도, 픽션의 세계 속에서만큼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거쳐 어떤 사건들이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이 입으로든 머릿속으로든 선을 지향하든 악을 추구하든 의지와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구나. 나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미스터리 소설을 사랑하는구나.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미스터리 소설에 매혹됐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이 세상에 가상의 질서를 부여하고자 노력하고 선과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고수하는 이 장르를 사랑하는구나.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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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그나 | guest 김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