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연습을 거르면 내가 알고, 이틀 않으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 않으면 청중이 안다.”
레너드 번스타인부터 야샤 하이페츠까지,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음악인들 사이에 종종 회자되는 말입니다. 체육인들 또한 공감할 만해서, 박지성 선수는 “하루를 쉬면 다음날 훈련량이 늘어날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쓰기와 읽기도 다르지 않을 테지요. 하루 거른다고 입에 가시까지 돋진 않아도, 매일의 읽고 씀이 쌓이는 것을 두고 ‘독서 근력’이라 이름해보는 이유입니다.
하루 한 편의 글, 그리 쌓여 한 달 한 권의 책. 난다가 꾸려나가는 ‘시의적절’ 시리즈는 무겁지도 버겁지도 않게, 매일의 읽기를 함께하는 독서 메이트입니다. 편편이 길지 않으니 가벼이 기지개 켜듯 아침을 열어도 좋을 테고요, 시의 깊이와 넓이 두루 있으니 하루 끝 든든히 닫기에도 딱일 겁니다. 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책장도 삶도 쌓음으로 이루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 시(詩)이기도 계절(時)이기도 할 테지요. 2024년도 어느새 일곱째 달, 도로 무를 수도 달리 부를 수도 없이 계절은 여름. 그 여름에 가장 먼저 떠올릴 시인이라면 역시 황인찬 시인인 법이고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 한 편의 글로 여름의 날들을 미리 살아낸 황인찬 시인에게 영원이기도 순간이기도 할 시의 일상을, 그러니까 ‘매일’을 물었습니다.
Q. 선생님의 요즘 일상은 어떠신가요. 선생님께 ‘매일매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저의 매일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시간에 잠들곤 하거든요. 심지어 프리랜서는 주말도 따로 없기 때문에 평일과 주말의 구분조차 희미합니다. 매일이란 그렇게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하고, 그 변화의 누적이 한 달 전과 오늘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저에게 매일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너무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깜짝 놀랄 만큼 달라져 있는 것.
Q. 하루하루 변하지만 그 변함이 쌓여 꾸려지는 것이 또 일상이네요. 그럼 혹시 일상 속에서 ‘데일리 루틴’처럼 꼭 하시는 일이 있는지, 또 ‘쓰기’ 또한 매일인지 궁금합니다.
매일 꼭 하는 일이라면 실내 가드닝중인 식물들 살펴보기와 스트레칭이군요. 잠들기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을 꼭 하고 잡니다. 후면 근육을 중심으로 풀어주면 잠도 잘 오고 자고 일어나서도 상쾌합니다! ‘쓰기’는 매일 하고 있지만, 매일 시 쓰기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매일 꼭 조금이라도 시를 썼는데, 요즘에는 이런저런 써야 할 글들이 너무 많아 시를 매일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얼른 다시 매일 시를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읽기’의 매일은 또 어떨까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책 또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책이 있을까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시라지만, 아무리 좋은 시집도 매일 들여다보면 결국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지 않을지…… 다만 저희 집 식물들을 매일 들여다보는 일들은 질리지 않네요.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예뻐지고, 또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시들어버려서 질릴 틈이 없습니다.
Q. 어제가 오늘 같다가도 조금씩 달라지고 또 문득 바뀌어 있는 것…… ‘계절’도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때마침 여름이네요. 선생님께 여름 그리고 7월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름의 에너지가 폭발하듯이 넘쳐나는 때가 7월이죠. 7월은 그 넘치는 에너지에 쩔쩔매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지 않나요? 그 넘치는 에너지에 쩔쩔매는 일이요.
Q. 실제로 선생님의 시 속에서 그런 계절감,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 “쩔쩔맴”의 에너지란 것 또한 있을 테지요.) 마침 시의적절 시리즈의 두 축이 시(詩)와 때(時)이기도 한데요, ‘시의 시간’이라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으신가요?
작게 속삭이는 사람들을 몇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순간, 비가 완전히 멎기 직전, 지금 비가 내리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는 순간, 살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Q. 시의적절 7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 한 편의 시와 에세이를 담은 책인데요. 집필하면서 날짜를 염두에 두고 각 꼭지를 쓰신 걸까요? 아니면 글을 모두 모은 후에 날짜를 매칭하신 걸까요?
시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꼭지들 몇은 미리 날짜를 정해두었고, 가장 마지막 날인 30일과 31일 또한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나머지는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순서가 정해졌어요. 순서를 정하는 데는 김민정 시인의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Q. 하필 혹은 마침 7월! 처음 7월을 배정(?)받았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집필부터 출간까지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사실 시의적절 시리즈의 기획중 담당할 달을 가장 먼저 정한 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어쩐지 7월이라면 제가 가장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제 착각이었고, 어떤 달에 대해 생각하며 말하는 일이 생각보다 참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Q. 시의적절이 시인들의 시리즈이긴 하지만, 이번 7월은 특히나 처음부터 끝까지 ‘시’ 이야기로 가득한 것 같아요. 한 권의 책을 시로 오롯이 채워봐야겠다 의도하신 걸까요, 혹은 써가면서 가닥이 점차 잡히신 걸까요?
여러모로 반성을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시에 대해서 말고는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작업을 하며 새삼 깨달았거든요. 여러 이야기를 써봤지만 결국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시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독자분들이 읽다가 질려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기뻐하며 읽어주시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Q. 마침 그러해서, 독자분들께 질문 몇 가지를 받아보았어요. 대신 전해봅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힘들이지 않고서 쓴 것 같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어요. 실제로 편안한 상태에서 ‘힘주지 않고 쓰기’를 의식하시나요? (전세은 님)
말씀하신 것처럼 비교적 쉽고 편하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을 쓰려고 의식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정말 오래도록 문장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힘을 준다거나 주지 않는 문제라기보다는, 문장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어렵다고 해야겠습니다. 문장이 바로 떠오른다기보다는 오랜 기다림 끝에 가까스로 그 문장을 마주하게 되는 편입니다.
Q. 그리고 이 계절에 피할 수 없는 질문……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으신가요? (유지연 님)
전봉건 시인의 「빛」이라는 시가 떠오르는군요! 어느 여름의 오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횟집에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는 순간을 그리는 시입니다. 넘쳐나는 음식들, 넘쳐나는 사랑이 어우러지며 매우 육감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Q. 이번 7월의 책에서도 꼽아볼까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에 수록된 글 중 특별히 애정하는, 또는 기억에 남는 꼭지가 있으신가요?
30일과 31일의 두 꼭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축시를 쓰게 되었는데요. 하루는 그 축시가(「미래의 책」), 또다른 하루는 그 축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을 위한 이야기는 잘 기억에 남지 않지만,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라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있을, 혹은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7월은 계절의 힘에 치이고, 또 여러모로 지치는 시절인데요. 이 책과 함께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 어려운 시절을 잘 보내주시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7월 30일 「미래의 책」, 232~235쪽
이제 너에게 비밀을 말해줄게
이 책에는 너의 미래가 적혀 있고
그 일은 모두 다 일어날 거야
언젠가 네가 바닷가에 갔을 때
너는 혼자가 아닐 거야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거야
수면은 빛을 받아 눈부시게 산란하고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바다를 보며 이상한 농담을 던지지
그때 나눈 농담은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계속 되풀이되며
두 사람을 웃음 짓게 할 거야
아침이 오면 식탁 위에 올려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을 거고 밤이 오면 포근한 어둠 속에서 낮 동안의 일을 이야기할 거야
그러다 깜빡 잠들어버리겠지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로
두 호흡을 교환하며
부드러운 꿈속에 빠져드는 거야
그건 아주 평화로운 밤일 거야
가끔 슬픔이 찾아올 때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결코 혼자가 아닐 거야
갓 구운 빵을 나누며 그 순간 서로가 같은 온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이 삶의 위로가 된다는 당연한 사실에 놀라며 잠시 서로를 끌어안을 거야
그거면 된 거야
다 괜찮아지는 거야
너에게는 더 많은 기쁨이 있을 거야 딸기밭에 딸기가 매달린 것을 보며 웃을 거고 강아지가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웃을 거야
물론 아무 일이 없어도 웃을 수 있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면 말이야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7월 31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242~244쪽
(……)
「미래의 책」은 바로 그런 마음을 모아 쓴 것이다. 친구와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눌러 담느라 시가 다소 길고 늘어지는 느낌이 되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뜻이니까. 두 사람이 모두 문학 고관여층이라는 사실(그래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처럼 나란히 접혀 있다는 사실에서 이 시는 출발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만드는 한 권의 책, 그것을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은유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의 제목을 ‘미래의 책’이라 하기로 했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적어나갈 미래의 책에 크고 작은 기쁨이 가득하리라는 믿음을 그대로 옮겨 적고 싶었다. 그 시에는 이렇다 할 대단한 기교도 없고, 굉장하고 멋진 선언 같은 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소박하고 솔직하게, 단순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적힌 그런 시가 두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베이킹에 취미를 붙인 친구를 생각하며, 흰소리와 싱거운 농담을 좋아하는 두 사람을 생각하며, 그 모든 일상적인 순간의 행복이 두 사람의 미래에 가득할 것이라는,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너무 당연해서 의심조차 할 수 없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을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약속하고 싶었다. 그 순간들을 차곡차곡 적어나간 책의 맨 앞장에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을 터였다.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좋은 점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어긋난 상상조차 이미 두 사람의 미래의 책에는 적혀 있으리라고 믿었다. 꼭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가끔은 슬퍼하거나 괴로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멋진 점 아니겠는가.
앞서 나는 내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좀처럼 하기 어려워졌다고 털어놓았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시에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상상이라면, 소중한 이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어설프고 어쭙잖은 냉담함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해도 좋겠다. 시는 기본적으로는 지독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일이고, 그래서 지나친 자기 몰입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지만, 때로 시는 타인을 위해 문을 활짝 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시는 조금 깨져도 좋겠다. 헐거워져도 좋겠다.
사랑이란 함께 꿈꾸는 일이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미래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시 또한 그러하다. 시는 지독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지만, 우리는 사랑과 더불어 시를 통해 또다른 미래를 그릴 수도 있고, 함께 행복한 순간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시를 계속 써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친구의 축시를 쓰며 새삼 생각했다. 그러니 나의 장래 희망은 계속 사랑하기, 그리하여 계속 써나가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editor 종이 & 지지 | guest 황인찬
"하루 연습을 거르면 내가 알고, 이틀 않으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 않으면 청중이 안다.”
레너드 번스타인부터 야샤 하이페츠까지,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음악인들 사이에 종종 회자되는 말입니다. 체육인들 또한 공감할 만해서, 박지성 선수는 “하루를 쉬면 다음날 훈련량이 늘어날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쓰기와 읽기도 다르지 않을 테지요. 하루 거른다고 입에 가시까지 돋진 않아도, 매일의 읽고 씀이 쌓이는 것을 두고 ‘독서 근력’이라 이름해보는 이유입니다.
하루 한 편의 글, 그리 쌓여 한 달 한 권의 책. 난다가 꾸려나가는 ‘시의적절’ 시리즈는 무겁지도 버겁지도 않게, 매일의 읽기를 함께하는 독서 메이트입니다. 편편이 길지 않으니 가벼이 기지개 켜듯 아침을 열어도 좋을 테고요, 시의 깊이와 넓이 두루 있으니 하루 끝 든든히 닫기에도 딱일 겁니다. 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책장도 삶도 쌓음으로 이루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 시(詩)이기도 계절(時)이기도 할 테지요. 2024년도 어느새 일곱째 달, 도로 무를 수도 달리 부를 수도 없이 계절은 여름. 그 여름에 가장 먼저 떠올릴 시인이라면 역시 황인찬 시인인 법이고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 한 편의 글로 여름의 날들을 미리 살아낸 황인찬 시인에게 영원이기도 순간이기도 할 시의 일상을, 그러니까 ‘매일’을 물었습니다.
Q. 선생님의 요즘 일상은 어떠신가요. 선생님께 ‘매일매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저의 매일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한 시간에 잠들곤 하거든요. 심지어 프리랜서는 주말도 따로 없기 때문에 평일과 주말의 구분조차 희미합니다. 매일이란 그렇게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하고, 그 변화의 누적이 한 달 전과 오늘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저에게 매일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너무 비슷해서 구분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깜짝 놀랄 만큼 달라져 있는 것.
Q. 하루하루 변하지만 그 변함이 쌓여 꾸려지는 것이 또 일상이네요. 그럼 혹시 일상 속에서 ‘데일리 루틴’처럼 꼭 하시는 일이 있는지, 또 ‘쓰기’ 또한 매일인지 궁금합니다.
매일 꼭 하는 일이라면 실내 가드닝중인 식물들 살펴보기와 스트레칭이군요. 잠들기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을 꼭 하고 잡니다. 후면 근육을 중심으로 풀어주면 잠도 잘 오고 자고 일어나서도 상쾌합니다! ‘쓰기’는 매일 하고 있지만, 매일 시 쓰기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매일 꼭 조금이라도 시를 썼는데, 요즘에는 이런저런 써야 할 글들이 너무 많아 시를 매일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얼른 다시 매일 시를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읽기’의 매일은 또 어떨까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책 또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책이 있을까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시라지만, 아무리 좋은 시집도 매일 들여다보면 결국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되지 않을지…… 다만 저희 집 식물들을 매일 들여다보는 일들은 질리지 않네요.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예뻐지고, 또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시들어버려서 질릴 틈이 없습니다.
Q. 어제가 오늘 같다가도 조금씩 달라지고 또 문득 바뀌어 있는 것…… ‘계절’도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때마침 여름이네요. 선생님께 여름 그리고 7월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름의 에너지가 폭발하듯이 넘쳐나는 때가 7월이죠. 7월은 그 넘치는 에너지에 쩔쩔매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지 않나요? 그 넘치는 에너지에 쩔쩔매는 일이요.
Q. 실제로 선생님의 시 속에서 그런 계절감,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를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 “쩔쩔맴”의 에너지란 것 또한 있을 테지요.) 마침 시의적절 시리즈의 두 축이 시(詩)와 때(時)이기도 한데요, ‘시의 시간’이라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으신가요?
작게 속삭이는 사람들을 몇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순간, 비가 완전히 멎기 직전, 지금 비가 내리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는 순간, 살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Q. 시의적절 7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 한 편의 시와 에세이를 담은 책인데요. 집필하면서 날짜를 염두에 두고 각 꼭지를 쓰신 걸까요? 아니면 글을 모두 모은 후에 날짜를 매칭하신 걸까요?
시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꼭지들 몇은 미리 날짜를 정해두었고, 가장 마지막 날인 30일과 31일 또한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나머지는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순서가 정해졌어요. 순서를 정하는 데는 김민정 시인의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Q. 하필 혹은 마침 7월! 처음 7월을 배정(?)받았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집필부터 출간까지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사실 시의적절 시리즈의 기획중 담당할 달을 가장 먼저 정한 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어쩐지 7월이라면 제가 가장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제 착각이었고, 어떤 달에 대해 생각하며 말하는 일이 생각보다 참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Q. 시의적절이 시인들의 시리즈이긴 하지만, 이번 7월은 특히나 처음부터 끝까지 ‘시’ 이야기로 가득한 것 같아요. 한 권의 책을 시로 오롯이 채워봐야겠다 의도하신 걸까요, 혹은 써가면서 가닥이 점차 잡히신 걸까요?
여러모로 반성을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시에 대해서 말고는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작업을 하며 새삼 깨달았거든요. 여러 이야기를 써봤지만 결국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시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독자분들이 읽다가 질려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기뻐하며 읽어주시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Q. 마침 그러해서, 독자분들께 질문 몇 가지를 받아보았어요. 대신 전해봅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힘들이지 않고서 쓴 것 같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어요. 실제로 편안한 상태에서 ‘힘주지 않고 쓰기’를 의식하시나요? (전세은 님)
말씀하신 것처럼 비교적 쉽고 편하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을 쓰려고 의식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정말 오래도록 문장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힘을 준다거나 주지 않는 문제라기보다는, 문장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어렵다고 해야겠습니다. 문장이 바로 떠오른다기보다는 오랜 기다림 끝에 가까스로 그 문장을 마주하게 되는 편입니다.
Q. 그리고 이 계절에 피할 수 없는 질문……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으신가요? (유지연 님)
전봉건 시인의 「빛」이라는 시가 떠오르는군요! 어느 여름의 오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횟집에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는 순간을 그리는 시입니다. 넘쳐나는 음식들, 넘쳐나는 사랑이 어우러지며 매우 육감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Q. 이번 7월의 책에서도 꼽아볼까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에 수록된 글 중 특별히 애정하는, 또는 기억에 남는 꼭지가 있으신가요?
30일과 31일의 두 꼭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축시를 쓰게 되었는데요. 하루는 그 축시가(「미래의 책」), 또다른 하루는 그 축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을 위한 이야기는 잘 기억에 남지 않지만,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라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읽고 있을, 혹은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7월은 계절의 힘에 치이고, 또 여러모로 지치는 시절인데요. 이 책과 함께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 어려운 시절을 잘 보내주시면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7월 30일 「미래의 책」, 232~235쪽
이제 너에게 비밀을 말해줄게
이 책에는 너의 미래가 적혀 있고
그 일은 모두 다 일어날 거야
언젠가 네가 바닷가에 갔을 때
너는 혼자가 아닐 거야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거야
수면은 빛을 받아 눈부시게 산란하고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바다를 보며 이상한 농담을 던지지
그때 나눈 농담은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도 계속 되풀이되며
두 사람을 웃음 짓게 할 거야
아침이 오면 식탁 위에 올려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아침을 맞을 거고 밤이 오면 포근한 어둠 속에서 낮 동안의 일을 이야기할 거야
그러다 깜빡 잠들어버리겠지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로
두 호흡을 교환하며
부드러운 꿈속에 빠져드는 거야
그건 아주 평화로운 밤일 거야
가끔 슬픔이 찾아올 때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결코 혼자가 아닐 거야
갓 구운 빵을 나누며 그 순간 서로가 같은 온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겠지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이 삶의 위로가 된다는 당연한 사실에 놀라며 잠시 서로를 끌어안을 거야
그거면 된 거야
다 괜찮아지는 거야
너에게는 더 많은 기쁨이 있을 거야 딸기밭에 딸기가 매달린 것을 보며 웃을 거고 강아지가 나비를 쫓아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웃을 거야
물론 아무 일이 없어도 웃을 수 있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면 말이야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7월 31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242~244쪽
(……)
「미래의 책」은 바로 그런 마음을 모아 쓴 것이다. 친구와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눌러 담느라 시가 다소 길고 늘어지는 느낌이 되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뜻이니까. 두 사람이 모두 문학 고관여층이라는 사실(그래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처럼 나란히 접혀 있다는 사실에서 이 시는 출발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만드는 한 권의 책, 그것을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은유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의 제목을 ‘미래의 책’이라 하기로 했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적어나갈 미래의 책에 크고 작은 기쁨이 가득하리라는 믿음을 그대로 옮겨 적고 싶었다. 그 시에는 이렇다 할 대단한 기교도 없고, 굉장하고 멋진 선언 같은 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소박하고 솔직하게, 단순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적힌 그런 시가 두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베이킹에 취미를 붙인 친구를 생각하며, 흰소리와 싱거운 농담을 좋아하는 두 사람을 생각하며, 그 모든 일상적인 순간의 행복이 두 사람의 미래에 가득할 것이라는,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너무 당연해서 의심조차 할 수 없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을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약속하고 싶었다. 그 순간들을 차곡차곡 적어나간 책의 맨 앞장에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을 터였다.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좋은 점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어긋난 상상조차 이미 두 사람의 미래의 책에는 적혀 있으리라고 믿었다. 꼭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가끔은 슬퍼하거나 괴로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멋진 점 아니겠는가.
앞서 나는 내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좀처럼 하기 어려워졌다고 털어놓았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시에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상상이라면, 소중한 이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어설프고 어쭙잖은 냉담함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해도 좋겠다. 시는 기본적으로는 지독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일이고, 그래서 지나친 자기 몰입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지만, 때로 시는 타인을 위해 문을 활짝 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시는 조금 깨져도 좋겠다. 헐거워져도 좋겠다.
사랑이란 함께 꿈꾸는 일이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미래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시 또한 그러하다. 시는 지독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이지만, 우리는 사랑과 더불어 시를 통해 또다른 미래를 그릴 수도 있고, 함께 행복한 순간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시를 계속 써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친구의 축시를 쓰며 새삼 생각했다. 그러니 나의 장래 희망은 계속 사랑하기, 그리하여 계속 써나가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editor 종이 & 지지 | guest 황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