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부터 계절공방의 계절책장을 맡아 북 큐레이션을 담당해온 시간이 길지 않은 듯하지만,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 시작한 계절책장은 지금까지 열세번의 북 큐레이션을 선보였고, 이제 열네번째 큐레이션을 앞두고 있어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하는 시기인 만큼, 우리도 12월에는 그 흐름을 따라가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계절공방 에디터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2024 올해의 책’을 추천받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문학동네’ 올해의 책 1위는 (아마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을 거예요) 무려 13년 만에 장편소설을 펴낸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올해 신성처럼 등장한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입니다. 두 책 모두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도 나란히 선정되었는데요,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순위였던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 역시 임직원이 뽑은 추천도서로 이어 추천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들은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듯합니다. 이외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스페셜 에디션』, 김원영 작가의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이승우 작가의 『고요한 읽기』와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기적의 식단 혁명 『저속노화 식사법』이 선정되었어요. 또한,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가 짧은 기간 동안 추천 리스트에 오른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타 출판사의 책도 함께 추천을 부탁드렸는데요. 다양한 책들이 언급되면서, 임직원들이 우리 책뿐만 아니라 타사 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위권에 오른 책으로는 천선란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 명실상부 올해의 책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랜만의 신간으로 화제를 모은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정유정 작가의 욕망 3부작 중 두 번째인 『영원한 천국』, 2024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관심을 받았던 『음악소설집』, 입소문만으로 MZ세대에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제뉴어리의 푸른 문』과 시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토스 사용자가 직접 남긴 ‘금융이 궁금한 순간’ 중 100가지를 선별하여 책으로 출간한 『더 머니 북』 등이 있었습니다.
에세이부터 소설, 경제경영서, 자기계발서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추천되었는데요, 유독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이번 겨울이지만, 책 속에 담긴 위로와 사랑의 힘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이 겨울, 추천받은 책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다가올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2024 올해의 책 5권’을 소개합니다.
Editor. 롤러

『사랑과 결함』 (예소연, 문학동네, 2024)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문학동네' 올해의 책" 중 세번째로 선정된 이 책은 친구, 가족, 연인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사랑과 결함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숨김없이 보여주는 사랑의 진심은 어떤 모습인지 알려줍니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이내 다시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힘들 때마다 외면하고, 슬픔을 견디지 못해 이별하며, 불행을 극복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동시대적인 사랑과 그 결함들. 분명 나와는 다른 이야기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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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2023)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사랑과 결함』과 같은 순위를 차지한 이 책은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타 출판사' 올해의 책으로도 뽑혔는데요, 사실 2023년 11월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부터 전작 『맡겨진 소녀』의 인기 덕분에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어느 책이 더 좋았는지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조명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기를 끈 듯합니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보여주는 펄롱의 친절과 용기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 아일랜드의 풍경은 내가 살아온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고, 펄롱이 우연히 마주한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 내린 결단은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꾸 되새기게 만들었죠.
이번 큐레이션을 위해 책을 다시 읽으며, 텍스트가 아닌 오디오북으로도 들어보았는데요. 눈이 아닌 귀로 받아들이는 펄롱의 고민들이 한층 더 진심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마침내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에서는 깊은 울림을 받았어요. 우리는 늘 선택의 경계에서 선택을 강요하거나 요구받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관심이 미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시작은 스스로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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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문학동네, 2024)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작가가 변호사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사건 기록이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을 펼치면서 알게 된 변호사에서 무용수로 변신한 김원영 작가의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작가는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마주한 질문들을 춤의 역사를 통해 사유하고, 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규범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춤과 예술에서 '다른 몸'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타인의 몸을 바라볼 때면 겉으로만 보이는 몸만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아름다운 몸'이라는 것은 ‘정상적’이어야만 한다는 기준에 갇혀 있었던 거죠. 이 책 덕분에 역사,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성찰과 장애인 무용수들의 삶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차별과 싸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편견을 끄집어내어 보여준 이 책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발걸음도 내딛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은 이토록 선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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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천선란, 위고, 2024)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우리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만화를 좋아했는지, 어떤 노래를 따라 불렀는지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과 감성이 형성되기도 하죠.
고독한 아이 선란은 아빠의 해외 출장을 계기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커다란 질문과 존재의 무의미함, 명명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와 우울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선란에게 숨통 트이는 경험을 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디지몬 어드벤처〉였죠.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작품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듯이, 매일 돌발 퀴즈를 푸는 마음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맵을 통과하지 않으면 세계가 종료되는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살며 마침내 작가가 된 선란에게 디지몬의 세계의 존재는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된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타 출판사’ 올해의 책 1위에 선정된 이 책은 펼치기 전에는 단순히 SF소설을 잘 쓰는 천선란 작가와 결이 잘 맞는 책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천선란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디지몬 어드벤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 얕은 생각은 디지몬이 된 엄마의 이야기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어요. 마냥 즐거운 이야기일 거라고만 상상하며 읽고 있었으니까요.
천선란 작가는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이야기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118쪽)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다보니 그간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게 되네요. 어쩐지 저는 앞으로도 천선란 작가의 오래된 독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무튼, 디지몬. 아무튼,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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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문학동네, 2024)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는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봤을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불안을 다루고 있어요.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현재의 어려움을 잊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감정이죠. 하지만 과거에만 집착하다보면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소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 속에서 꺼내 다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병원을 배경으로 해요. 이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과거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죠. 하지만 이 특별한 병원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 불만을 느끼는 건강한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과거로 돌아가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타임 셸터』는 단순히 SF 소설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요. 소설 속에서 과거를 숭배하고 현재를 부정하는 모습은 현실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죠.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정치인이나, 과거의 추억에만 얽매여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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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계절공방의 계절책장을 맡아 북 큐레이션을 담당해온 시간이 길지 않은 듯하지만,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 시작한 계절책장은 지금까지 열세번의 북 큐레이션을 선보였고, 이제 열네번째 큐레이션을 앞두고 있어요.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하는 시기인 만큼, 우리도 12월에는 그 흐름을 따라가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계절공방 에디터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2024 올해의 책’을 추천받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문학동네’ 올해의 책 1위는 (아마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을 거예요) 무려 13년 만에 장편소설을 펴낸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올해 신성처럼 등장한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입니다. 두 책 모두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도 나란히 선정되었는데요,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순위였던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 역시 임직원이 뽑은 추천도서로 이어 추천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들은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듯합니다. 이외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스페셜 에디션』, 김원영 작가의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 이승우 작가의 『고요한 읽기』와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기적의 식단 혁명 『저속노화 식사법』이 선정되었어요. 또한,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가 짧은 기간 동안 추천 리스트에 오른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타 출판사의 책도 함께 추천을 부탁드렸는데요. 다양한 책들이 언급되면서, 임직원들이 우리 책뿐만 아니라 타사 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위권에 오른 책으로는 천선란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 명실상부 올해의 책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랜만의 신간으로 화제를 모은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정유정 작가의 욕망 3부작 중 두 번째인 『영원한 천국』, 2024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관심을 받았던 『음악소설집』, 입소문만으로 MZ세대에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제뉴어리의 푸른 문』과 시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토스 사용자가 직접 남긴 ‘금융이 궁금한 순간’ 중 100가지를 선별하여 책으로 출간한 『더 머니 북』 등이 있었습니다.
에세이부터 소설, 경제경영서, 자기계발서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추천되었는데요, 유독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이번 겨울이지만, 책 속에 담긴 위로와 사랑의 힘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을 거예요. 이 겨울, 추천받은 책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다가올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2024 올해의 책 5권’을 소개합니다.
Editor. 롤러
『사랑과 결함』 (예소연, 문학동네, 2024)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문학동네' 올해의 책" 중 세번째로 선정된 이 책은 친구, 가족, 연인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사랑과 결함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숨김없이 보여주는 사랑의 진심은 어떤 모습인지 알려줍니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이내 다시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힘들 때마다 외면하고, 슬픔을 견디지 못해 이별하며, 불행을 극복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동시대적인 사랑과 그 결함들. 분명 나와는 다른 이야기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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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2023)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사랑과 결함』과 같은 순위를 차지한 이 책은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타 출판사' 올해의 책으로도 뽑혔는데요, 사실 2023년 11월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부터 전작 『맡겨진 소녀』의 인기 덕분에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어느 책이 더 좋았는지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조명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기를 끈 듯합니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보여주는 펄롱의 친절과 용기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대 아일랜드의 풍경은 내가 살아온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고, 펄롱이 우연히 마주한 부조리와 억압 속에서 내린 결단은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자꾸 되새기게 만들었죠.
이번 큐레이션을 위해 책을 다시 읽으며, 텍스트가 아닌 오디오북으로도 들어보았는데요. 눈이 아닌 귀로 받아들이는 펄롱의 고민들이 한층 더 진심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마침내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에서는 깊은 울림을 받았어요. 우리는 늘 선택의 경계에서 선택을 강요하거나 요구받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관심이 미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시작은 스스로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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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문학동네, 2024)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작가가 변호사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사건 기록이나 일상을 담은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을 펼치면서 알게 된 변호사에서 무용수로 변신한 김원영 작가의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작가는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마주한 질문들을 춤의 역사를 통해 사유하고, 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규범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춤과 예술에서 '다른 몸'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타인의 몸을 바라볼 때면 겉으로만 보이는 몸만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아름다운 몸'이라는 것은 ‘정상적’이어야만 한다는 기준에 갇혀 있었던 거죠. 이 책 덕분에 역사, 철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성찰과 장애인 무용수들의 삶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차별과 싸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편견을 끄집어내어 보여준 이 책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은 발걸음도 내딛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은 이토록 선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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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천선란, 위고, 2024)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우리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만화를 좋아했는지, 어떤 노래를 따라 불렀는지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과 감성이 형성되기도 하죠.
고독한 아이 선란은 아빠의 해외 출장을 계기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한 커다란 질문과 존재의 무의미함, 명명할 수 없는 거대한 공허와 우울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선란에게 숨통 트이는 경험을 하게 만든 것이 있으니 〈디지몬 어드벤처〉였죠.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작품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듯이, 매일 돌발 퀴즈를 푸는 마음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맵을 통과하지 않으면 세계가 종료되는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살며 마침내 작가가 된 선란에게 디지몬의 세계의 존재는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된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문학동네 임직원이 뽑은 ‘타 출판사’ 올해의 책 1위에 선정된 이 책은 펼치기 전에는 단순히 SF소설을 잘 쓰는 천선란 작가와 결이 잘 맞는 책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천선란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디지몬 어드벤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 얕은 생각은 디지몬이 된 엄마의 이야기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어요. 마냥 즐거운 이야기일 거라고만 상상하며 읽고 있었으니까요.
천선란 작가는 “이야기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이야기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118쪽)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다보니 그간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게 되네요. 어쩐지 저는 앞으로도 천선란 작가의 오래된 독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무튼, 디지몬. 아무튼,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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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문학동네, 2024)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타임 셸터』는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봤을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불안을 다루고 있어요.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현재의 어려움을 잊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감정이죠. 하지만 과거에만 집착하다보면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소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 속에서 꺼내 다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병원을 배경으로 해요. 이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과거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죠. 하지만 이 특별한 병원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 불만을 느끼는 건강한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과거로 돌아가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타임 셸터』는 단순히 SF 소설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요. 소설 속에서 과거를 숭배하고 현재를 부정하는 모습은 현실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죠.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정치인이나, 과거의 추억에만 얽매여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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