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2024 노벨문학상 현장 비하인드 (feat. 편집자K)

2024 노벨문학상 시상식 내내 저와 편집자 K는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현장 소식을 독자 여러분께 가장 빠르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덕분에 #문학동네는지금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현지 사진들을 가장 빠르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한 편집자 K 부장님. 이제는 끝났겠지라고 안도 하셨겠지만 저는 한번 더 질척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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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노벨문학상 비하인드 (feat. 편집자 K 부장님) 지금 시작합니다. 



12월 6일 

7박 8일 출장에 28인치 대형 캐리어가 부족할 일인지…? 공식 일정들에 드레스코드가 정해져 있던 터라 대충 껴입고 다니는 게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옷과 구두를 고이고이 모셔가야 할 판이었다. 여기에 이번에 만든 ‘한강 스페셜 에디션’ 3종 세트와 『작별하지 않는다』 『흰』도 챙김. 언제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원서’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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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뽑템

북유럽 겨울여행출장은 처음. 겨울 좀 좋아했는데 올초 낙상사고 크게 당한 후론 눈 내리는 것도 무섭고 영하로 떨어진 날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두려워짐.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겠다 싶어 부랴부랴 캠퍼용 작은 전기장판과 방한화를 마련했다. 결론은 올해 제일 잘한 소비… 유럽 호텔 추위 예상 못한 L님은 핫팩 붙이고 잤다고. 언 몸 방에서 뜨끈하게 지지고, 나갈 때는 방한화 단디 챙겨 신은 덕에 드레스코드 엄격했던 시상식 당일 제외하곤 크게 추운 줄 모르고 지냄.


★후회템

가져와서 후회된 건 없지만 가져올걸 하고 후회되었던 아이템 두 가지. 하나는 압축파우치. 격식 있는 자리에 입을 코트는 도저히 구겨 넣을 수 없어 입고 가기로 하고, 롱패딩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어떻게든 욱여넣긴 했는데, L님이 압축파우치에 싹 넣어온 거 보고 놀라버림. 압축파우치가 생각보다 비싸서 끝까지 당근 들락거리며 ‘살말살말’ 했는데, 정답은 ‘살’이었다. 또하나는 미니 가습기. 이것도 생각 안 한 건 아닌데 와 진짜 일하러 가면서 적당히 좀 하자 나여… 싶어 말았다. 결국 북유럽 호텔의 추위는 해결했지만 건조함은 잡을 수 없었고, 매일 아침 코피 흘리며 깸(진짜).




12월 7일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이 있었다. 30분 남짓의 이 강연은 수상 소감이자 작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과 작품을 돌아보는 의미를 갖는다. ‘귀로 듣는 문학‘이라고도 불린다. 이 강연들을 모은 책이 있을 정도(한국어판 제목은 『아버지의 여행가방』). 수상자의 게스트가 초대되고 신청자도 따로 받는 이 강연은 진즉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강연에 앞서 크리찬 라슨의 바흐 첼로 무반주 모음곡 연주가 있었다. 그후 작가님이 미리 준비한 원고를 한국어로 낭독했다. 뒤이어 『작별하지 않는다』의 두 대목이 한 번은 스웨덴어로, 한 번은 영어로 낭독되었다. 1부 17쪽~20쪽, 2부 178쪽~181쪽까지 두 부분이었다. 한림원에서 고른 부분이라는데 참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잘 모르는 언어들에 집중해봄. 새삼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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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산문은 자주 발표하지 않지만 그간 인터뷰나 대담 등으로 작품에 대해 말해온 자료가 있고 나는 그것을 제법 많이 읽은 독자에 속하는 터라 강연의 내용은 익숙한 산책로를 걸을 때처럼 찬찬히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여러 번 눈물이 났는데,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써왔는지 몰랐을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랬다. 담담한 듯 힘있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으로 남겠구나 생각하니. 그리고 한국어를 모르는 대개의 청중이 영어와 스웨덴어로 번역된 강연 원고를 손에 쥔 채, 눈은 작가님에게 고정한 채 집중해 듣고 있는 얼굴을 보니 그랬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라고 작가님은 말했다. 한강 작가님이 품어온, 쓰는 일을 통해 답을 찾고자 했던 질문들이 언어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무척 기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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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이틀 뒤 시상식이 열릴 콘서트하우스 메인 홀에서 ‘노벨상 기념 콘서트’가 열렸다. 평소에 클래식 공연 보러 다니는 게 취미라 더 기대되기도 했다. 콘서트하우스 외벽에는 푸른색 족자 세 개가 걸려 있어 역사적 장소의 잔잔한 위용이 느껴졌고, 관객들에게선 며칠 앞으로 다가온 노벨상 시상식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이토록 활기차고 들뜬 분위기 느껴본 적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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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노벨상 시상식 영상을 여러 번 본 터라 메인홀 공간은 익숙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서울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2500석 정도 되는데, 이곳이 1770석 정도라 하니 실제로 초대형홀은 아닌 게 맞긴 하다. 노벨상 수상자와 그들의 게스트, 국왕을 비롯해 로열패밀리, 노벨 재단 관계자 등이 함께한 자리로, 로열패밀리는 2층 중앙에, 한강 작가님은 그 왼쪽 블록에 자리하셨다. 내 자리는 2층 발코니석. 왼눈으론 무대, 오른눈으론 로열패밀리와 작가님 볼 수 있는 자리… 객석이 다 차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자리를 잡고서도 한참이 지난 뒤 로열패밀리 등장. 스웨덴이 ‘왕국’임을 실감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객석의 모두가 기립해 로열패밀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아마도 국가(國歌)로 추정되는 노래를 부름.

 

스웨덴 소프라노 말린 비스트룀과 체코의 지휘자 페트르 포펠카가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날의 공연 프로그램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마지막 장면과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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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국경을 넘어 함께 나눌 수 있는 언어일 텐데, 전 세계에서 축하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쌀쌀한 스톡홀름 밤거리를 휘휘 걸어보았다.

 




12월 9일 



스톡홀름은 정오부터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오후 세시면 깜깜해졌다. 체감 새벽 2시인데 시계를 보면 오후 5시인 매직… 그 짧은 낮시간도 사흘 내내 흐리기만 했고,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들 속에서 점점 몸도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일부러 더 숙소 밖으로 나가서 여기저기 걸어보려 했다. 나 같은 여행객의 마음만 허허로운 것은 아닌지(당연히 아니겠지. 여기서 나고 자랐어도 적응 안 될 거야… ←현지인피셜 실제로 안 된다고 함. 다들 비타민D 밥 먹듯 먹고 운동 빡세게 하며 견딘다고), 시내 이곳저곳에 조명이 반짝거렸다. 크리스마스 마켓들도 벌써 제법 있고.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노벨 위크’에는 특별히 스톡홀름 전역에 매년 새로운 주제로 여러 예술가의 작품인 ‘노벨 위크 라이츠’가 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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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6개 작품이 스톡홀름 곳곳에 설치되었다. 그중 스톡홀름 시청 외벽에 레이저로 쏜 미디어 파사드 ‘리딩 라이츠Leading Lights’와 맞으편 부두에 설치된 조명 ‘돔 아데톤De aderton’은 특히 여성 수상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제작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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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라이츠’는 65명뿐인 역대 여성 노벨상 수상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거대한 작품이다. 각 분야의 선구적 여성들의 얼굴이 그 분야의 상징성을 드러낸 모티프 위로 드리워질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문학 부문의 작가들 사진 속 한강 작가님의 익숙한 얼굴과 친필 이미지를 본 순간 눈물이 펑 나버렸고, 새삼 너무.. 너무.. 너무 벅차올랐다. 이 일의 의미나 내가 여기 있는 의미나 그런 게 너무 강렬하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한순간에 너무 좋아짐.19b8544669721.jpg

맞은편의 ‘돔 아데톤’은 그중에서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에 집중한 작품. 1901년부터 올해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121명 중 여성은 고작 18명이다. 한강 작가님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려진 초상화라 빛이 반사될 때 신성한 느낌이 드는 ‘돔 아데톤’의 한강 작가님 옆에는 1909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셀마 라게를뢰프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12월 10일 (1)


와우, 드디어 날이 갰다! 햇빛 너무 소중해! 마침(?) 대망의 시상식날이다. 다른 공식 일정들도 대개 ‘라운지 수트’로 드레스코드가 정해져 있었다. ‘라운지 수트’가 무엇인지도 사전 안내사항에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었음… 시상식날의 드레스코드는 조금 더 빡빡했는데,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였다. 이브닝…드레스…? 떠나기 전부터 이 ‘이브닝드레스’에 대한 걱정들이 많았다.(초청받은 편집자들과 참석하게 된 기자들 사이에서.) 드레스 문화는 물론이고 파티 문화 자체가 어색한 한국인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가이드였는데, 딱 한 번 입을 것을 구매할 수도 없고, 빌리자니 일주일 대여비도 만만치 않았고, 여차저차 가지고 간다손 쳐도 그것을 입는단 상상에 식은땀이 나는 것이었다. 격식과 전통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쉽지 않네 싶었던… 결국 기성복 중에서 길이가 긴 블랙 롱(아니아니 맥시) 원피스 중에서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것 중에서 골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설마 ‘드레시’하지 않다고 초대받은 게스트를 문전박대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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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에 모여 각국의 게스트들이 준비된 셔틀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 우리를 실어다준 기사님은 게스트를 이동시키는 이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며 무척 뿌듯해했다. 도로 일부를 막고 게스트들의 셔틀버스를 통과시키는 풍경은 버스 안에 있으면서도 인상적이었고, 스웨덴에서 이 행사가 얼마나 큰 이벤트인지 또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웨덴 내 국왕의 인기와 호감도가 내 생각보다 훨씬 높았고, 시상식과 이어지는 만찬을 가족들과 모여 생중계로 보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고.)97b4d735ab6c5.jpg


우리(한강 작가님의 게스트) 자리는 11열이었다. 열마다 특정 분야 수상자 게스트 자리로 지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현지 시각 오후 4시, 한국 시각 자정에 시작한 시상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다른 수상자들이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대고 앉아 다리를 꼬거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수상 후 상패 등을 편안히 바닥에 두던 것과 달리 한강 작가님은 내내 자세를 바르게 하고 상패를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둔 모습이 무척 고아하다 느껴졌다. 지난 30년간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묵묵히 써온 작가님답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호화로운 시상식장, 스웨덴 국왕이 직접 시상하는 120년 전통의 문학상, 그 모든 것을 넘어 한강 작가님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세계에, 자기 자신에게 물어왔던 질문들이 무엇이었나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그 특별한 의미가 작가님께는 어떻게 남을지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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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2)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시상자들의 짤막한 스피치가 중간중간 이어진 시상식은 한 시간 반 남짓 걸렸던 것 같다. 콘서트하우스에 맡겨둔 외투를 다시 받아 챙겨 입었다. 다들 고심해 준비해온 의상들 위에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북유럽 차가운 밤공기 속에 서니 화려했던 시상식이 꿈이었나 싶었다. 콘서트하우스에서 이십 분쯤 걸렸나, 스톡홀름 시청 건물로 이동해 또 한번 외투를 맡겼다. 현지 시각 7시부터 만찬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만찬 참석자는 시상식에 초대된 인원보다 더 적다고 하지만 1천 명이 넘고, 참석자 전체 명단과 좌석배치도가 인쇄된 64쪽짜리(!!) 소책자가 제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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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를 보며 자리를 가늠한 뒤 식장에 들어섰다. 총길이 25m, 84명이 앉는 헤드테이블이 식장 한가운데를 세로로 가로지른다. 수상자와 국왕 및 로열패밀리, 노벨재단 관계자 등이 앉는 헤드테이블 옆 60여 개의 테이블에 나머지 사람들이 앉게 되는데, 개별 와인잔 위에 참석자의 이름과 직위가 새겨진 카드가 놓여 있었다. ‘Publisher Yun-jeong Kang’이라고 적힌 적당히 자그마한 카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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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쪽엔 함께 간 편집자L이, 오른편에는 한강 작가님의 프랑스 편집자가, 맞은편에는 작가님의 영국 편집자가 앉았다. 그 옆으로는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의 편집자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뭉클하네… 속속들이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한강 작가님의 편집자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이미 유대감이 형성돼 있었던 우리. 나는 이번에 만든 ‘한강 스페셜 에디션’을 최선을 다해 자랑했다. 각국 편집자들에게 실로 수놓은 한국어 제목자가 꽤나 충격적으로 전해진 것 같았다. 작가님의 작품세계와 너무 잘 맞는 아이디어 같다며 여기저기 (극호) 비명을 질러주어서 너무 뿌듯했네… 영국에서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 특별판도 멋졌다. 표지에 제주도 사진이 작게 들어가고 책배 부분에 한국어 제목이 적혀 있었다.


현지 시각 오후 11시까지 이어진 만찬에서는 세 가지 코스 요리와 다종다양한 공연이 이어졌지만, 그 코스 요리와 셰프가 스웨덴에서는 한동안 주목받는다고 하지만, 나에겐 사실 각국 편집자들과의 이야기가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고급스러운 식기들과 테이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노벨 메달을 본뜬 초콜릿, 멋진 술잔들과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던 이야기들 말이다.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걸 하는 생각과, 내가 아무리 영어가 유창했다 해도 답답함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그만큼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많았을 거라는 벅찬 감정과, 그들이 나에게 한국어를 잘 몰라서 미안하다 말했을 때 느낀 묘한 감정 등이 이번 출장의 핵심에 가깝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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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시상식과 만찬 끝난 후에도 몇 가지 일정이 더 남아 있었다. 마지막 공식 일정은 1778년 세워졌다는 스웨덴 왕립 연극극장(드라마텐)에서 있었던 낭독회. 머물렀던 호텔 바로 뒤편이 있는 멋진 건물이 드라마텐이었던 터라 오며가며 이 낭독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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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 역시 빠르게 해가 져 이미 깜깜한 거리를 빠르게 가로질러 드라마텐에 도착했을 때, 건물 내, 외부에 띄워져 있던 작가님 사진과 그 앞에서 사진 찍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또 한번 눈물이 나려 했다. 사람들이 발음하는, ‘한캉’에 가까운 ‘한강’ 이 두 음절이, 이 날뿐 아니라 머무는 내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진짜… 1일 1눈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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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공간에서 낭독 배우들이 스웨덴에 번역된 최근 네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흰』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를 발췌해 읽었다. 작가님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피아노곡이 연주되기도 했다. 무대에 초대된 한강 작가님과 두 진행자의 대화를 통해 작품이나 작업방식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한편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상황에서 시상식을 위해 출국해야 했으니 너무 끔찍하지(awful) 않은지 사회자가 묻자, 작가님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상황을 걱정했고 나 역시 뉴스 속보를 따라 가느라 시차 적응이고 뭐고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추운 밤 자신이 가진 가장 밝고 예쁜 것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시민들과 함께라는 생각에 마냥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한국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멈추지 않을 거니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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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회의 마지막 순서는 작가님의 낭독으로 듣는 『희랍어 시간』. 아직 스웨덴어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라, 객석을 꽉 채운 현지 독자 대다수는 작가의 목소리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셈이었다. 스웨덴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희랍어 시간』은 작가님 작품세계의 또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짐작해보며, 나직하고 단단한 작가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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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책에서 시작된 이 모든 일이 마침내 책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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