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 책을 읽고, 읽을 때마다 리뷰를 쓰고, 한 달이 끝나면 읽은 책들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곤 했죠. 솔직히 ‘나,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어’ 하고 살짝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모아 나만의 ‘올해의 책’을 뽑아보기도 했고요.
어느덧 12월이네요. 참 빨리 지나갔죠? 돌아보면 늘 바빴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책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계절책장에서는 계절공방 에디터들이 각자 마음에 담은 ‘올해의 책’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추천해주는 에디터들의 책을 보니 제게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줬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져줬으며,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펼쳐 읽기도 했던 책들이네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느낀 따뜻함과 놀라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랄게요.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 책들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요.
Editor. 롤러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문학동네, 2024년) : 한 권의 책에 안길 수 있다면
김애란 작가님의 13년 만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이 작품을 소개하는 문장에 제가 평소 좋아하는 단어들이 가득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세 명의 ‘고등학생’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든가 ‘비밀’과 ‘거짓말’이 뒤엉켜 있다는 서사에서 말이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 소설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지고, 소설에 등장하는 ‘웹툰’이나 반려동물 ‘도마뱀’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이 모두 낯설었지만, 한참 어른이 된 지금의 제게도 심연 깊은 곳을 울리는 문장과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까? 나는 이걸 부치고 싶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는 상대라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_p.182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상하게 눈물이 났는데요. 아직도 어느 대목에서 왜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인공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무한한 다정함에 저 역시 엄청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Editor. 지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문학동네, 2024년)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책이 되기 전, 교정을 막 마친 pdf 상태로도, 아니 사실은 그 이전의 제목만으로도 눈에 딱 띄는 소설이었습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며 저는 이 책이 비범하게 주목받으리라 감히 예상했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김기태 작가님은 올해 이 책으로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동인문학상까지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라는 문장에 따라붙을 다음 문장이 두 주인공에 대한 문장일 거라는 예상은 200여 년 전 프로이센의 ‘두 사람'에 가로막혔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뜀틀을 만났습니다. 공산당 선언, 러일전쟁, 소비에트 혁명, We Are The World, 소련 해체, 구글의 탄생, 외환위기, 컨츄리꼬꼬, 다이나믹듀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까지. 그것들을 모두 뛰어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동북부의 한 중학교로부터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이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서로의 존재만 기억하는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중학생 때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 당도해 서로를 만납니다.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나누고, 지글지글 보글보글한 외식 음식을 아주 여러 번 나누어 먹고, 연애와 연대 사이 무언가를 넘어서서 낯설고 새롭고 따뜻한 ‘친한 사이’가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2020년대의 증거가 존재합니다. 덕분에 진주와 니콜라이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존재로 우리 옆에 다가옵니다. 조금은 낙담하고 조금은 막막한, 이 시대의 청춘으로요.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될 수 있고, 이모티콘을 골라 보낼 수 있고, 서로의 손을 잡고 기립할 수도 있죠.
때로는 그거면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Editor. 일립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2024년) : 온기는 여전히 힘이 있다고
저는 자주 냉담해지는 사람이에요. 가령 너무 허무한 이유로 사람이 죽고, 그런 일이 어김없이 반복될 때. 그런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설익은 분노와 어설픈 연민을 보낸 후, 이제 내 몫은 다 했다는 듯 서둘러 내 삶의 감각으로 돌아오려 할 때. 저는 이런 저 자신이, 나아가 사람이란 존재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분노할 일에 같이 분노하고, 슬퍼할 일에 함께 슬퍼하는 일마저 인색해진 듯해요. 안타깝지만 내가 구해줄 수는 없는 거니까. 삶은 원래 불공평하고 사람도 본디 이기적인 존재니까.
소설가 조해진의 이야기는 저처럼 쉽게 냉소하는 사람에게 열기를 불어넣어 기어코 부끄럽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올해 출간된 『빛과 멜로디』 역시 사람을 끝까지 믿고자 하는 온기가 응축된 작품이에요. 특히 내 삶이 있는 여기와 저 먼 곳의 참혹함을 연결하는 섬세함이 탁월합니다.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죠. 그리고 나의 삶은 그곳과 먼 지금 여기에 있고요. 이 아득한 거리감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지금 여기서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저 먼 곳의 참혹함에 관심을 가지는 일과 어째서 다르지 않은지. 여러분도 궁금하다면, 부디 이 작품을 읽어보세요. 특히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자주 냉담해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작품을 꺼내 읽으며 온기를 구할 생각입니다.
Editor. 송쏘

『어떤 비밀』 (최진영, 난다, 2024년) : 한 작가의 비밀에 대하여
어느 날 팀원이 말했습니다.
"팀장님, 매일 자기 전에 한 챕터씩 읽기 좋은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그렇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책을 많이 읽게 된다지만 사실 회사 책은 유난히 펼치기가 힘들기도 하거든요(매우 솔직한 편). 더군다나 회사에서 출간되는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 책을 면밀히 살펴볼 여유마저 없어지기 마련.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데도 불구하고 독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받쳐주지 않을 때 저는 속상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팀 내에 소문난 #최진영 작가 덕후임에도 이 책은 출간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읽었어요.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자기 전에 읽기 좋은 책이라는 팀원의 후기도 딱 맞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최진영 작가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선함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과 문장을 발견하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게다가 소설이 아닌 첫 산문집이라니요.
『단 한 사람』 『이제야 언니에게』 그리고 『구의 증명』까지. 그동안 최진영 작가가 썼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어떤 장면과 마음을 꾹꾹 담아 써내려갔다는 느낌이 읽는 내내 들었습니다. 최진영 작가가 말하는 진심, 그 비밀 같은 이야기들은 눈물 없이는 읽지 못하실 거예요.
Editor. 그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한정원, 난다, 2024년) : 내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
제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예요. 오전, 오후, 저녁 중에서요. 바로 그 시간에 적고 있는 글이에요. 이렇게 가장 싫어하는 시간보다,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니, 이 나른하고 졸린 오후도 조금 사랑하게 되어요.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지난 내내 읽고 또 읽었던 책이에요.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의 기획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매일 한 편 꺼내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저같이 게으른 독자는 매일 책을 펼치는 걸 까먹거나, 까먹은 것으로 치고 미루거나 합니다…… 얼마나 부지런해야 시의적절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꺼내 볼 수 있게 될까요? 12월 시의적절 시리즈 김복희 작가님의 『오늘부터 일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시의적절 시리즈의 부지런함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저는 이 책의 8월 7일 에세이 「조금 사랑하기」를 가장 애정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여실히 느껴져 계속 머물게 되더라고요. 더운 날에 이 글을 여러 차례 읽었는데, 이렇게 추워지고 다시 펼치니 또 다르게 좋네요. “이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문장으로 반전되는 내용도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요.
이 책에 대한 사랑을 글로 옮겨보니 쑥스러우면서도 좋네요. 작은 사랑, 큰 사랑, 미약한 사랑, 강한 사랑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든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ditor. 이꼼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2024년) :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시절에 산울림의 노래 <청춘>과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곤 했던 적이 있어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던 시기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즈음의 제게도 ‘언젠가 가’버릴 청춘이 아쉬워서였을까요? 강산이 몇 번 변하고 지금이야말로 가버린 청춘을 돌아보며 울컥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은 또 왜일까요?
몇 달 전에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고, 연말이 다가오자 이 책이 생각나 다시 읽은 후 전 이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는 친구들에게 추천하며 다녔는데요, 각 소설에서 보여주는 지난 시절의 추억담이나 문득 떠오르는 어느 시절의 풍경, 무덤덤한 현재의 상황들을 읽으며 오래전 <청춘>이나 <사노라면>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던 것과는 또 다르게 이제는 사라져버린,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지더라고요. 그 공허함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지금의 나를 좀더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래서 책 속 화자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에게 추천했는데 읽어보면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12월, 올해의 마무리를 위해 책 한 권을 선택해서 읽겠다면,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Editor. 롤러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 책을 읽고, 읽을 때마다 리뷰를 쓰고, 한 달이 끝나면 읽은 책들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곤 했죠. 솔직히 ‘나,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어’ 하고 살짝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모아 나만의 ‘올해의 책’을 뽑아보기도 했고요.
어느덧 12월이네요. 참 빨리 지나갔죠? 돌아보면 늘 바빴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책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계절책장에서는 계절공방 에디터들이 각자 마음에 담은 ‘올해의 책’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추천해주는 에디터들의 책을 보니 제게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줬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져줬으며,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펼쳐 읽기도 했던 책들이네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느낀 따뜻함과 놀라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랄게요.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 책들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요.
Editor. 롤러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문학동네, 2024년) : 한 권의 책에 안길 수 있다면
김애란 작가님의 13년 만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이 작품을 소개하는 문장에 제가 평소 좋아하는 단어들이 가득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세 명의 ‘고등학생’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든가 ‘비밀’과 ‘거짓말’이 뒤엉켜 있다는 서사에서 말이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 소설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지고, 소설에 등장하는 ‘웹툰’이나 반려동물 ‘도마뱀’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이 모두 낯설었지만, 한참 어른이 된 지금의 제게도 심연 깊은 곳을 울리는 문장과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까? 나는 이걸 부치고 싶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는 상대라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_p.182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상하게 눈물이 났는데요. 아직도 어느 대목에서 왜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인공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무한한 다정함에 저 역시 엄청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Editor. 지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문학동네, 2024년)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책이 되기 전, 교정을 막 마친 pdf 상태로도, 아니 사실은 그 이전의 제목만으로도 눈에 딱 띄는 소설이었습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며 저는 이 책이 비범하게 주목받으리라 감히 예상했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김기태 작가님은 올해 이 책으로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동인문학상까지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라는 문장에 따라붙을 다음 문장이 두 주인공에 대한 문장일 거라는 예상은 200여 년 전 프로이센의 ‘두 사람'에 가로막혔습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뜀틀을 만났습니다. 공산당 선언, 러일전쟁, 소비에트 혁명, We Are The World, 소련 해체, 구글의 탄생, 외환위기, 컨츄리꼬꼬, 다이나믹듀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까지. 그것들을 모두 뛰어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동북부의 한 중학교로부터 서로를 기억하는 두 사람이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서로의 존재만 기억하는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중학생 때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 당도해 서로를 만납니다.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나누고, 지글지글 보글보글한 외식 음식을 아주 여러 번 나누어 먹고, 연애와 연대 사이 무언가를 넘어서서 낯설고 새롭고 따뜻한 ‘친한 사이’가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2020년대의 증거가 존재합니다. 덕분에 진주와 니콜라이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존재로 우리 옆에 다가옵니다. 조금은 낙담하고 조금은 막막한, 이 시대의 청춘으로요.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될 수 있고, 이모티콘을 골라 보낼 수 있고, 서로의 손을 잡고 기립할 수도 있죠.
때로는 그거면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Editor. 일립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2024년) : 온기는 여전히 힘이 있다고
저는 자주 냉담해지는 사람이에요. 가령 너무 허무한 이유로 사람이 죽고, 그런 일이 어김없이 반복될 때. 그런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설익은 분노와 어설픈 연민을 보낸 후, 이제 내 몫은 다 했다는 듯 서둘러 내 삶의 감각으로 돌아오려 할 때. 저는 이런 저 자신이, 나아가 사람이란 존재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분노할 일에 같이 분노하고, 슬퍼할 일에 함께 슬퍼하는 일마저 인색해진 듯해요. 안타깝지만 내가 구해줄 수는 없는 거니까. 삶은 원래 불공평하고 사람도 본디 이기적인 존재니까.
소설가 조해진의 이야기는 저처럼 쉽게 냉소하는 사람에게 열기를 불어넣어 기어코 부끄럽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올해 출간된 『빛과 멜로디』 역시 사람을 끝까지 믿고자 하는 온기가 응축된 작품이에요. 특히 내 삶이 있는 여기와 저 먼 곳의 참혹함을 연결하는 섬세함이 탁월합니다.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죠. 그리고 나의 삶은 그곳과 먼 지금 여기에 있고요. 이 아득한 거리감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지금 여기서 타인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저 먼 곳의 참혹함에 관심을 가지는 일과 어째서 다르지 않은지. 여러분도 궁금하다면, 부디 이 작품을 읽어보세요. 특히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자주 냉담해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작품을 꺼내 읽으며 온기를 구할 생각입니다.
Editor. 송쏘
『어떤 비밀』 (최진영, 난다, 2024년) : 한 작가의 비밀에 대하여
어느 날 팀원이 말했습니다.
"팀장님, 매일 자기 전에 한 챕터씩 읽기 좋은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그렇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책을 많이 읽게 된다지만 사실 회사 책은 유난히 펼치기가 힘들기도 하거든요(매우 솔직한 편). 더군다나 회사에서 출간되는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 책을 면밀히 살펴볼 여유마저 없어지기 마련.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데도 불구하고 독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받쳐주지 않을 때 저는 속상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팀 내에 소문난 #최진영 작가 덕후임에도 이 책은 출간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읽었어요. 역시는 역시였습니다. 자기 전에 읽기 좋은 책이라는 팀원의 후기도 딱 맞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최진영 작가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선함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과 문장을 발견하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게다가 소설이 아닌 첫 산문집이라니요.
『단 한 사람』 『이제야 언니에게』 그리고 『구의 증명』까지. 그동안 최진영 작가가 썼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어떤 장면과 마음을 꾹꾹 담아 써내려갔다는 느낌이 읽는 내내 들었습니다. 최진영 작가가 말하는 진심, 그 비밀 같은 이야기들은 눈물 없이는 읽지 못하실 거예요.
Editor. 그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한정원, 난다, 2024년) : 내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
제가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예요. 오전, 오후, 저녁 중에서요. 바로 그 시간에 적고 있는 글이에요. 이렇게 가장 싫어하는 시간보다, 세번째로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니, 이 나른하고 졸린 오후도 조금 사랑하게 되어요.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지난 내내 읽고 또 읽었던 책이에요.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의 기획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매일 한 편 꺼내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저같이 게으른 독자는 매일 책을 펼치는 걸 까먹거나, 까먹은 것으로 치고 미루거나 합니다…… 얼마나 부지런해야 시의적절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꺼내 볼 수 있게 될까요? 12월 시의적절 시리즈 김복희 작가님의 『오늘부터 일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시의적절 시리즈의 부지런함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저는 이 책의 8월 7일 에세이 「조금 사랑하기」를 가장 애정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여실히 느껴져 계속 머물게 되더라고요. 더운 날에 이 글을 여러 차례 읽었는데, 이렇게 추워지고 다시 펼치니 또 다르게 좋네요. “이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문장으로 반전되는 내용도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요.
이 책에 대한 사랑을 글로 옮겨보니 쑥스러우면서도 좋네요. 작은 사랑, 큰 사랑, 미약한 사랑, 강한 사랑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든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ditor. 이꼼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2024년) :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시절에 산울림의 노래 <청춘>과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곤 했던 적이 있어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던 시기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즈음의 제게도 ‘언젠가 가’버릴 청춘이 아쉬워서였을까요? 강산이 몇 번 변하고 지금이야말로 가버린 청춘을 돌아보며 울컥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담담해지는 것은 또 왜일까요?
몇 달 전에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고, 연말이 다가오자 이 책이 생각나 다시 읽은 후 전 이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는 친구들에게 추천하며 다녔는데요, 각 소설에서 보여주는 지난 시절의 추억담이나 문득 떠오르는 어느 시절의 풍경, 무덤덤한 현재의 상황들을 읽으며 오래전 <청춘>이나 <사노라면>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던 것과는 또 다르게 이제는 사라져버린,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지더라고요. 그 공허함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지금의 나를 좀더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래서 책 속 화자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에게 추천했는데 읽어보면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12월, 올해의 마무리를 위해 책 한 권을 선택해서 읽겠다면,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을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Editor. 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