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에 내소사에 다녀왔습니다.
고민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지내던 지인과는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상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무슨 일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나날이 이어지자 마음마저 무기력해지고 말았죠.
그런 날들의 연속이던 이주 전 주말 아침, 눈은 떴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이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창으로 보이는 가을 아침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과 한창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 그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땅을 환히 비추고 있었죠. 문득 ‘이렇게 좋은 날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 시기가 지나면 못 볼 것만 같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을 곳을 검색한 뒤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렸고, 사이트로 들어가 충동적으로 예약한 호텔을 취소하려고 보니 바로 그 주의 예약이라 환불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단념하고 이렇게 된 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여유롭게 주차를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내소사로 올라갔습니다. 제법 큰 절이라 경내를 한참 둘러보다가 대웅보전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어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거나, 아름답게 물든 나무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와 여유로움이 가득했어요. 물론 여행이란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굳이 찡그릴 이유가 없다는 건 알면서도 그 모습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고민들이, 무기력했던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듯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이렇게 쉽게 누그러지고 마는 마음이었다니…!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사소한 실수에 마음이 무너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좌절하기도 하죠. 그 순간에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또 일어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들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죠. 일련의 고민들을 겪으면서 저 역시 한층 더 단단해진 셈입니다. (긍정의 화신)
우리가 읽는 여러 책들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읽다보면 그들의 삶도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때로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기도 하죠. 그래서 오늘 소개할 책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물들,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알려주는 책들입니다.
Editor. 롤러

『평균율 연습』 (김유진, 문학동네, 2024년)
피아노를 배우고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피아노를 두드리기만 해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던, 자신감이 충만하던 때였죠. 하지만 그땐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다는 사실을요. 그 시절, 왜 아빠는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원망이 오래도록 남아, 피아노만 생각하면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이 있어요. 그때는 몰랐던 일이 어느 날, 머릿속을 스치며 떠오르는 한 장면으로 인해 갑작스레 이해되는 순간 말이죠.
수민을 데리고 홀로 상경해 힘겹게 삶을 이어가던 엄마의 두려움을, 어린 수민은 알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오래전 경주에서의 아침 산책 중 숲속 빈터에 둥글게 팬 구덩이를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하던 수찬의 옆모습이 담고 있던 의미 역시 알지 못했을 테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혼자가 된 수민이 문득 그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며 비로소 그녀의 삶을 이해했던 것처럼, 숙려 기간이 끝나고 이혼이 확정된 후에야, 십오 년간 늘 가볍기만 했던 수찬의 진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이탈된 피아노의 음들이 모여 평균율을 이루듯, 그 진실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살아갈 뿐이죠.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란, 바로 그런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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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다산초당, 2024년)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세계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요약해 전해주던 잡지가 있었어요. 1922년 미국에서 탄생한 『리더스 다이제스트』인데요, 건강, 생활, 역사, 문화, 유머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작은 책은 지루한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주곤 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공개 에세이는 마치 오래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어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가진 안톤의 이야기,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공감의 말을 건넬 용기를 내지 못해 안타까워한 일, 그리고 돈의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 않았기에 평범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띠지에 적힌 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불안했던 시기를 살아간’ 츠바이크가 전하는 이 작은 희망들은, 우리에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을 건네줍니다.
(덧, 알고 보니 두 편의 글은 진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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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문학동네, 2022년)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내년의 삶이 궁금해 무료 토정비결이나 운세를 찾아보게 됩니다. 늘 좋은 말보다는 걱정할 일들이 더 많았지만, 덕분에 조심할 것은 조심하며 살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었죠.
사람들은 흔히 가장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합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특별히 큰일도, 걱정거리도 없는 삶이야말로 복 받은 삶이라고요. 돌아보면, 그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김연수 작가의 이 책이 떠오르곤 했어요. 책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등장하고, 작가는 가장 좋은 미래를 기억하는 일에 대해 말합니다. 그 글을 읽다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도 노력하게 되고 부정적인 걱정을 하기보다는 먼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긍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덕분이었을까요? 지난 몇 주 동안의 내 고민들 역시, 내소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만 보아도 사라질, 결국 아무것도 아니고 (어쩌면) 행복에 겨운, 지극히 평범한 고민이었던 겁니다. 「진주의 결말」 속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은 똑같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71쪽) 문장이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결말은 바꿀 수 없지만,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일깨워줍니다.
만약 결말이 똑같다면, 그동안 노력하고 긍정을 생각한 나를 미래의 내가 다독이며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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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시공주니어, 2017년)
가끔 고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마치 호랑 애벌레처럼,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으니까요. 그 이상을 찾고 싶었던 저는 결국 호랑 애벌레처럼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호랑 애벌레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모두가 그곳으로 향하기에 무작정 따라 올라가는 삶. 다른 애벌레들에게 밟혀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다시 일어서는 삶. 그 과정에서 노랑 애벌레와의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끝까지 올라가보겠다고 결심한 호랑 애벌레처럼, 저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맨 꼭대기에서 호랑 애벌레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삶이란 험난한 것이고,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일까요?(89쪽) 호랑 애벌레는 애벌레로서의 삶에선 성공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꿈꾸던 이상은, 다른 애벌레들을 밟으며 올라간 그곳에 없었으니까요.
반면, 다른 길을 선택한 노랑 애벌레는 애벌레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님을 깨닫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고치를 만듭니다. 비록 그 과정이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를 찾겠다고 고향을 떠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수없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살아남으며, 비록 나비가 되진 못했더라도 이제야 비로소 나비가 되는 길을 깨달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요?
때로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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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내소사에 다녀왔습니다.
고민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오랫동안 문제없이 잘 지내던 지인과는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상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무슨 일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나날이 이어지자 마음마저 무기력해지고 말았죠.
그런 날들의 연속이던 이주 전 주말 아침, 눈은 떴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이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창으로 보이는 가을 아침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과 한창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 그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땅을 환히 비추고 있었죠. 문득 ‘이렇게 좋은 날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 시기가 지나면 못 볼 것만 같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을 곳을 검색한 뒤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렸고, 사이트로 들어가 충동적으로 예약한 호텔을 취소하려고 보니 바로 그 주의 예약이라 환불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단념하고 이렇게 된 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여유롭게 주차를 마치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내소사로 올라갔습니다. 제법 큰 절이라 경내를 한참 둘러보다가 대웅보전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어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거나, 아름답게 물든 나무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미소와 여유로움이 가득했어요. 물론 여행이란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굳이 찡그릴 이유가 없다는 건 알면서도 그 모습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고민들이, 무기력했던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듯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이렇게 쉽게 누그러지고 마는 마음이었다니…!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사소한 실수에 마음이 무너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좌절하기도 하죠. 그 순간에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또 일어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들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죠. 일련의 고민들을 겪으면서 저 역시 한층 더 단단해진 셈입니다. (긍정의 화신)
우리가 읽는 여러 책들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읽다보면 그들의 삶도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때로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기도 하죠. 그래서 오늘 소개할 책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물들,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알려주는 책들입니다.
Editor. 롤러
『평균율 연습』 (김유진, 문학동네, 2024년)
피아노를 배우고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피아노를 두드리기만 해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던, 자신감이 충만하던 때였죠. 하지만 그땐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다는 사실을요. 그 시절, 왜 아빠는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원망이 오래도록 남아, 피아노만 생각하면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이 있어요. 그때는 몰랐던 일이 어느 날, 머릿속을 스치며 떠오르는 한 장면으로 인해 갑작스레 이해되는 순간 말이죠.
수민을 데리고 홀로 상경해 힘겹게 삶을 이어가던 엄마의 두려움을, 어린 수민은 알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오래전 경주에서의 아침 산책 중 숲속 빈터에 둥글게 팬 구덩이를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하던 수찬의 옆모습이 담고 있던 의미 역시 알지 못했을 테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혼자가 된 수민이 문득 그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며 비로소 그녀의 삶을 이해했던 것처럼, 숙려 기간이 끝나고 이혼이 확정된 후에야, 십오 년간 늘 가볍기만 했던 수찬의 진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이탈된 피아노의 음들이 모여 평균율을 이루듯, 그 진실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살아갈 뿐이죠.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란, 바로 그런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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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다산초당, 2024년)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세계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요약해 전해주던 잡지가 있었어요. 1922년 미국에서 탄생한 『리더스 다이제스트』인데요, 건강, 생활, 역사, 문화, 유머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작은 책은 지루한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주곤 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공개 에세이는 마치 오래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어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가진 안톤의 이야기,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공감의 말을 건넬 용기를 내지 못해 안타까워한 일, 그리고 돈의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 않았기에 평범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띠지에 적힌 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불안했던 시기를 살아간’ 츠바이크가 전하는 이 작은 희망들은, 우리에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을 건네줍니다.
(덧, 알고 보니 두 편의 글은 진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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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문학동네, 2022년)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내년의 삶이 궁금해 무료 토정비결이나 운세를 찾아보게 됩니다. 늘 좋은 말보다는 걱정할 일들이 더 많았지만, 덕분에 조심할 것은 조심하며 살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었죠.
사람들은 흔히 가장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고 말합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특별히 큰일도, 걱정거리도 없는 삶이야말로 복 받은 삶이라고요. 돌아보면, 그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김연수 작가의 이 책이 떠오르곤 했어요. 책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이 등장하고, 작가는 가장 좋은 미래를 기억하는 일에 대해 말합니다. 그 글을 읽다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도 노력하게 되고 부정적인 걱정을 하기보다는 먼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긍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덕분이었을까요? 지난 몇 주 동안의 내 고민들 역시, 내소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만 보아도 사라질, 결국 아무것도 아니고 (어쩌면) 행복에 겨운, 지극히 평범한 고민이었던 겁니다. 「진주의 결말」 속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은 똑같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71쪽) 문장이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결말은 바꿀 수 없지만,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일깨워줍니다.
만약 결말이 똑같다면, 그동안 노력하고 긍정을 생각한 나를 미래의 내가 다독이며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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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시공주니어, 2017년)
가끔 고향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마치 호랑 애벌레처럼,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으니까요. 그 이상을 찾고 싶었던 저는 결국 호랑 애벌레처럼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호랑 애벌레의 삶이 내가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모두가 그곳으로 향하기에 무작정 따라 올라가는 삶. 다른 애벌레들에게 밟혀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다시 일어서는 삶. 그 과정에서 노랑 애벌레와의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끝까지 올라가보겠다고 결심한 호랑 애벌레처럼, 저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맨 꼭대기에서 호랑 애벌레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삶이란 험난한 것이고,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일까요?(89쪽) 호랑 애벌레는 애벌레로서의 삶에선 성공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꿈꾸던 이상은, 다른 애벌레들을 밟으며 올라간 그곳에 없었으니까요.
반면, 다른 길을 선택한 노랑 애벌레는 애벌레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님을 깨닫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고치를 만듭니다. 비록 그 과정이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를 찾겠다고 고향을 떠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수없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살아남으며, 비록 나비가 되진 못했더라도 이제야 비로소 나비가 되는 길을 깨달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요?
때로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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