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설가 김유진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레터의 주제를 ‘일상의 균형’, 그러니까 ‘조율하듯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정리해봤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가 김유진이 생각하는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어요. ‘평균율 연습’ 소설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낙관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Editor. 그나

Q. 이번 뉴스레터 ‘계절 공방’ 인터뷰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13년 만에 장편소설 『평균율 연습』이 출간되었어요.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랜만에 낸 장편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출간 축하를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덕분에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평균율 연습』은 2022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후에 2년 정도 퇴고를 거쳐서 출간하게 된 작품이에요. 출간까지 꽤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히셨어요. “눈을 치우는 인물의 마음을 내가 잘 몰라줘서”라고 말이죠.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지, 혹은 퇴고하시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썼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서 퇴고를 시작하게 된 건 아니에요. 현실적인 이유가 컸죠. 이대로 원고를 내버려두면 처음에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어요. 그래서 꾸역꾸역 손보기 시작했던 거죠.(웃음) 외려 퇴고를 거의 다 마쳤을 때쯤 그제서야 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 『평균율 연습』을 쓰게 된 건 되게 속상한 일을 겪은 뒤에도 묵묵히 눈을 치우는 인물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렇게 실패나 고통을 경험하고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런 태도를 이해해보고 싶다고도 생각했고요. 다 고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런 건 제가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요. 그냥 그게 삶이고 엄연한 진실인데, 제가 뭐라고 이해를 하나……(웃음)
소설을 퇴고하면서 신경썼던 건, 이 소설이 평범한 인물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었어요. 서사도 일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그래서 ‘잘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막힘없이. 본래 제 글이 아주 편하게 읽히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웃음) 개인적인 욕심이나 시도들은 좀 내려놓고, 작품 속 수민처럼 ‘친절해지자’고 계속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챕터를 고칠 때마다 매번 편집자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어요. 읽을 만하냐? 이해가 되냐? 인물의 행동에 의문점은 없냐? 물어보기도 했고요.
Q. 그런 식으로 쓰는 게 흔한 방식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힘드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그랬죠. 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쓰는 타입이었거든요. 이전까진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마침표를 찍은 다음에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었는데, 이 소설은 애초에 사람들과 같이 쓰는 작품 같다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이미 연재 때부터 따라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좀더 질척여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Q. 처음으로 겪어본 작업 방식으로서의 결과물이 나왔을 때 어떠셨어요?
사실 이런 일상적인 분위기의 장편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컸습니다. 아마 담당 편집자님이 좀 귀찮으셨을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요?’ ‘정말 이래도 될까요?’ 하는 질문을 자주 했어요. 막상 책이 나오니, 기뻤어요. 뿌듯했고요. 일단 표지가 너무 예쁘더라고요.(웃음) 제작까지 많은 손을 거친 책이라고 생각하니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나온 책이지만 저 혼자 한 게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고민을 털어냈다는 홀가분함도 한몫했던 것 같고요.
Q. 저는 작가님처럼 순수하게 창작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내가 쓴 것을 바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고 그 사람의 의견에 따라 또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낯설더라고요. 그런데 재미있었어요. 장편은 단편소설과는 달리 인물 행동의 당위성이나 서사의 개연성이 무척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그걸 읽는 사람도 이해해야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실제로 학원을 다니면서 조율을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저는 사실 조율 학원이 있는지도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어쩌다가 조율 학원을 다니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오래전에 「음의 속성」(『보이지 않는 정원』, 문학동네, 2018)이란 단편소설을 썼는데, 거기에 조율사가 등장해요. 그때 자료 조사차 유튜브에 올라온 조율 이론 강의를 들었거든요? 나중에 조율사 이야기를 좀더 길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뒤에 다시 찾아보니, 강의 동영상 속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학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찾아갔죠. 선생님께서 대뜸 물어보시더라고요. ‘여기 뭐하러 왔냐’고요. 그래서 소설로 좀 써보려고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재밌겠다고 하셨어요. 그뒤로 몇 달간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을 받았고요.
Q. 조율이라는 작업이 궁금한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배우는 걸까요?
처음엔 기초적인 음악 이론 수업과 피아노의 구조나 부품, 재료 같은 걸 배워요. 극중 수민처럼 모든 소리는 수치화되기 때문에 조율에 필요한 수학 계산도 하고요. 동시에 실습도 진행해요. 제가 제일 먼저 배운 건 건 맥놀이 듣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맥놀이 듣기인데요, 건반을 하나 누르고, 먼 데서 들리는 일렁이는 소리를 찾는 건데, 꽤 집중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 다니셨다고 했는데 소설 쓰는 작업이랑 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섬세하다는 점이 말이죠.
섬세하다는 점에선 맞아요. 그런데 정반대인 점도 있어요. 소설 쓰는 작업은 전적으로 눈에 의지하잖아요? 일단 텍스트를 봐야 하니까. 하지만 조율은 오히려 시각이 방해가 되더라고요. 잘 안 들리는 소리를 막 눈을 찡그려가며 보려고 하니까. 선생님이 매번 그러시더라고요. 피아노에서 좀 떨어지라고.
Q.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수찬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이들이 종종 들려주는 놀라운 소식들,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회사를 차렸다거나 대학에 전임교수로 임용됐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자기 계발서식 자위 방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흔들리면 지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점차 쌓여가는 피로와 회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수찬을, 수민은 이해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수민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대목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그랬고요. 당장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까요?
저도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웃음) 저는 사실 미래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 같은 비관주의자에겐 미래에 대한 생각이 제 영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계획표를 짜는 취미가 있긴 하지만, 일주일 이상의 계획은 안 세우는 편이에요. 대신 하루 일과표를 치밀하게 짜죠.(웃음) 생각이 많아지면 머리를 비우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고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이 하는 일의 전망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꿈을 이루고 싶다거나,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건 모두 결과일 뿐이잖아요. 과정을 건너뛴 결과. 지금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더라도 당장 내일은 싫어질 수도 있는데. 꿈은 가지되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책 속에 이런 문장도 나와요. 띠지에도 있는 문장인데요.
“조율 배우니까 좋은 점이 뭐야?”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손으로 만지작거리다보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거든요.
소설엔 많은 선택이 필요해요.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르는데, 그게 서사를 이루는 거잖아요. 작가는 자신이 한 선택을 믿고 서사를 진행시켜야 하는데, 막상 쓰고 보면 후회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안도하죠. 고치면 되니까. 소설엔 퇴고라는 게 있잖아요. 퇴고로 인물에게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제가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도 생기고요. 같은 장면인데 시점을 바꿔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해요. 하지만 인생은 선택을 되돌리거나 다시 사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책임이 더 엄중하죠.
네. 너무 엄중하죠.
소설은 모든 선택들이 실책으로 남는 게 아니라 과정이 된다는 점이 좋아요.

Q. 『평균율 연습』 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양한 실수와 실책 앞에서 좌절을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의연하게 나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기는 힘든 일인데 선생님은 그럴 때 어떤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굉장히 쉽게 좌절하고 전전긍긍하는 편이어서요.(웃음) 이번 장편소설을 고칠 때 특히 멘탈이 심하게 흔들리더라고요. 초고가 원고지로 650매 정도였는데, 제 눈엔 650매짜리 실책으로 보였으니까. 이걸 언제 다 고치나 싶어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퇴고를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 일정표를 작성하고 책 한 권을 조금씩 읽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요.
Q. 혹시 그 책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막상스 페르민의 『꿀벌 키우는 사람』(임선기 옮김, 난다, 2022)이라는 책입니다. 한 달간 매일 5~10페이지씩 읽었어요. 마음의 의지처가 된달까. 곱게 정돈된 문장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잖아요.
Q. 제가 최근에 한 지인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가 어떤 소설을 보고 너무 충격과 감동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부러움이 들어서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왜 부럽고 힘들어하냐, 그런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 그 순간이 중요한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공감이 됐어요.
좋은 소설은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겐 마음의 피난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자기 것과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가진 게 저마다 다를 테니까.
Q. 선생님은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중이시잖아요.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프란츠, 2017), 피에르 베르제의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프란츠, 2021) 등 여러 번역 작업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섬세한 언어로 소개해주셨어요. 번역을 하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번역가 김유진, 소설가 김유진은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해요.
번역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의 독서를 요구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보통 책을 읽을 때도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번역할 땐 그걸 한 문장, 한 단어, 혹은 쉼표 하나 단위로 따지게 돼요. 문장을 재생산해야 하니까. 게다가 소설은 맥락이나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많이 변해서 대충 넘어갈 수가 없어요. 저는 번역하면서 이렇게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도대체 왜!’를 외친 적이 많습니다.(웃음)
반면 소설은 자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놓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엔 다른 압박감도 들어요. 모든 게 내 것이라는 게 어떤 면에선 자유롭지만 한편으론 감옥 같기도 해요. 내 것이라는 게 결국 내가 해온 것, 나 자신이라고 믿어지는 것, 나와 타인의 기대라고 추정되는 것의 총합에 불과하잖아요? 결국 실체가 없는 거죠. 그러니 생각이 훨씬 많아져요. 망설임도 길고. 그런 것에 비하면 번역은 마음은 편한 편이에요. 그냥 오독하지 말자. 오역하지 말자. 있는 대로 쓰자. 이런 생각을 하죠.
Q. 이번에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레터의 주제를 ‘일상의 균형’, 그러니까 ‘조율하듯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정리해봤거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인지가 궁금한데요. 동시에 저는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낙관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이 궁금해요.
연재 당시 이 소설의 제목은 ‘미래와 전망’이었어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것저것 생각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나온 것들 중 하나가 ‘낙관적인 태도’라는 거였어요. 그 밖에도 여러 말도 안 되는 제목들이 있었는데, 제가 편집자님께 자꾸 제목 타령을 하니까 어느 날 편집자님이 ‘평균율 연습’이라는 제목을 지어주셨어요. 천만다행이죠.(웃음)
‘낙관’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제가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스티븐 핑거라는 사람이 쓴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책 설명에 인류는 실책도 많지만 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주장을 역사를 통해 증명해 보이는 책이라는 거예요. 그런 낙관적인 태도가 좀 흥미로워서 덥석 주문했는데, 실제로 배송된 책이 1200페이지나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낙관이라는 건 증명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맞아요. 사람들에게 비관을 믿게 하기가 더 쉽죠.
그래서 낙관을 좀더 소중히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임정희라는 인물이 보이는 낙관이 저에겐 의미가 있어요. 큰 실패를 경험하면서 갖게 되는 낙관이란 절실함의 다른 말 같거든요.
Q. 제가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도 정희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부분에 유난히 마음이 가더라고요. 정희가 돌보는 할머니가 500피스짜리 퍼즐을 가리키면서 정희에게 이렇게 말하잖아요. “자넨 아직 젊으니까 어려운 거 해봐”라고. 그리고 이렇게 이어져요.
임정희는 그 말이 좋아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꼭 맞는 퍼즐을 찾으면, 자신이 정말로 아직 젊은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용기가 났다.
그러니까 삶이 퍼즐을 맞추듯 어떤 단계들에 꼭 들어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수민이 피아노를 조율하면서 깨닫거나 정희가 퍼즐에 집중하면서 느꼈듯 선생님께 일상적인 깨달음을 주었던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발레를 꽤 오래 했거든요. 아무리 해도 안 늘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그냥 하는 거 있잖아요. 발레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서는 법이거든요? 어떤 거냐면, 어디에 기대지 않고 서는 거예요. 저희 같은 원고 노동자들은 늘 어딘가에 기대어 있잖아요. 자기 관절이나 척추에.(웃음) 그런데 무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서서 오로지 근육의 힘으로 몸을 들어올리더라고요.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아이들은 이걸 가르치면 금방 배운대요.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쁜 습관이 들지 않은 거겠죠. 저 같은 성인은 아무리 배워도 적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최근엔 그 느낌을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내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새삼스러운데, 정말 낯선 기분이었어요. 땅은 되게 넓고 단단하잖아요. 무용수들은 이 대단한 힘을 이용해서 그렇게 날아오르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너무 멋진 말이네요. 무용가들의 땅은 넓고 단단하고 그 땅을 자기 힘으로 온전히 디딜 줄 아는 것이라는 표현이요.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맨날 그러세요. ‘바닥을 믿으세요. 넘어지지 않아요.’

Q. 저도 깨닫고 싶어요. 제 땅이 얼마나 넓은지, 믿고 딛을 수 있는지 말이죠. 이제 마지막입니다. 오늘 인터뷰가 어떠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제가 말이 많아진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1월에 리스본에 갑니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길지 않은 소설을 써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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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설가 김유진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레터의 주제를 ‘일상의 균형’, 그러니까 ‘조율하듯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정리해봤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가 김유진이 생각하는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인지가 궁금했어요. ‘평균율 연습’ 소설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낙관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Editor. 그나
Q. 이번 뉴스레터 ‘계절 공방’ 인터뷰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13년 만에 장편소설 『평균율 연습』이 출간되었어요.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랜만에 낸 장편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출간 축하를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덕분에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평균율 연습』은 2022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후에 2년 정도 퇴고를 거쳐서 출간하게 된 작품이에요. 출간까지 꽤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히셨어요. “눈을 치우는 인물의 마음을 내가 잘 몰라줘서”라고 말이죠.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지, 혹은 퇴고하시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썼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서 퇴고를 시작하게 된 건 아니에요. 현실적인 이유가 컸죠. 이대로 원고를 내버려두면 처음에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어요. 그래서 꾸역꾸역 손보기 시작했던 거죠.(웃음) 외려 퇴고를 거의 다 마쳤을 때쯤 그제서야 좀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 『평균율 연습』을 쓰게 된 건 되게 속상한 일을 겪은 뒤에도 묵묵히 눈을 치우는 인물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렇게 실패나 고통을 경험하고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런 태도를 이해해보고 싶다고도 생각했고요. 다 고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런 건 제가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요. 그냥 그게 삶이고 엄연한 진실인데, 제가 뭐라고 이해를 하나……(웃음)
소설을 퇴고하면서 신경썼던 건, 이 소설이 평범한 인물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었어요. 서사도 일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그래서 ‘잘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막힘없이. 본래 제 글이 아주 편하게 읽히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웃음) 개인적인 욕심이나 시도들은 좀 내려놓고, 작품 속 수민처럼 ‘친절해지자’고 계속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챕터를 고칠 때마다 매번 편집자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어요. 읽을 만하냐? 이해가 되냐? 인물의 행동에 의문점은 없냐? 물어보기도 했고요.
Q. 그런 식으로 쓰는 게 흔한 방식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힘드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그랬죠. 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쓰는 타입이었거든요. 이전까진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마침표를 찍은 다음에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었는데, 이 소설은 애초에 사람들과 같이 쓰는 작품 같다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이미 연재 때부터 따라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좀더 질척여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Q. 처음으로 겪어본 작업 방식으로서의 결과물이 나왔을 때 어떠셨어요?
사실 이런 일상적인 분위기의 장편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컸습니다. 아마 담당 편집자님이 좀 귀찮으셨을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아요?’ ‘정말 이래도 될까요?’ 하는 질문을 자주 했어요. 막상 책이 나오니, 기뻤어요. 뿌듯했고요. 일단 표지가 너무 예쁘더라고요.(웃음) 제작까지 많은 손을 거친 책이라고 생각하니 순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나온 책이지만 저 혼자 한 게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고민을 털어냈다는 홀가분함도 한몫했던 것 같고요.
Q. 저는 작가님처럼 순수하게 창작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내가 쓴 것을 바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고 그 사람의 의견에 따라 또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낯설더라고요. 그런데 재미있었어요. 장편은 단편소설과는 달리 인물 행동의 당위성이나 서사의 개연성이 무척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그걸 읽는 사람도 이해해야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실제로 학원을 다니면서 조율을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저는 사실 조율 학원이 있는지도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어쩌다가 조율 학원을 다니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오래전에 「음의 속성」(『보이지 않는 정원』, 문학동네, 2018)이란 단편소설을 썼는데, 거기에 조율사가 등장해요. 그때 자료 조사차 유튜브에 올라온 조율 이론 강의를 들었거든요? 나중에 조율사 이야기를 좀더 길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뒤에 다시 찾아보니, 강의 동영상 속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학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찾아갔죠. 선생님께서 대뜸 물어보시더라고요. ‘여기 뭐하러 왔냐’고요. 그래서 소설로 좀 써보려고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재밌겠다고 하셨어요. 그뒤로 몇 달간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을 받았고요.
Q. 조율이라는 작업이 궁금한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배우는 걸까요?
처음엔 기초적인 음악 이론 수업과 피아노의 구조나 부품, 재료 같은 걸 배워요. 극중 수민처럼 모든 소리는 수치화되기 때문에 조율에 필요한 수학 계산도 하고요. 동시에 실습도 진행해요. 제가 제일 먼저 배운 건 건 맥놀이 듣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맥놀이 듣기인데요, 건반을 하나 누르고, 먼 데서 들리는 일렁이는 소리를 찾는 건데, 꽤 집중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 다니셨다고 했는데 소설 쓰는 작업이랑 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섬세하다는 점이 말이죠.
섬세하다는 점에선 맞아요. 그런데 정반대인 점도 있어요. 소설 쓰는 작업은 전적으로 눈에 의지하잖아요? 일단 텍스트를 봐야 하니까. 하지만 조율은 오히려 시각이 방해가 되더라고요. 잘 안 들리는 소리를 막 눈을 찡그려가며 보려고 하니까. 선생님이 매번 그러시더라고요. 피아노에서 좀 떨어지라고.
Q.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수찬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이들이 종종 들려주는 놀라운 소식들,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회사를 차렸다거나 대학에 전임교수로 임용됐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자기 계발서식 자위 방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흔들리면 지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점차 쌓여가는 피로와 회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수찬을, 수민은 이해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수민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대목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그랬고요. 당장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까요?
저도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웃음) 저는 사실 미래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 같은 비관주의자에겐 미래에 대한 생각이 제 영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계획표를 짜는 취미가 있긴 하지만, 일주일 이상의 계획은 안 세우는 편이에요. 대신 하루 일과표를 치밀하게 짜죠.(웃음) 생각이 많아지면 머리를 비우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고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세상 사람들 중에 자신이 하는 일의 전망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꿈을 이루고 싶다거나,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건 모두 결과일 뿐이잖아요. 과정을 건너뛴 결과. 지금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더라도 당장 내일은 싫어질 수도 있는데. 꿈은 가지되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책 속에 이런 문장도 나와요. 띠지에도 있는 문장인데요.
“조율 배우니까 좋은 점이 뭐야?”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손으로 만지작거리다보면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거든요.
소설엔 많은 선택이 필요해요.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르는데, 그게 서사를 이루는 거잖아요. 작가는 자신이 한 선택을 믿고 서사를 진행시켜야 하는데, 막상 쓰고 보면 후회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안도하죠. 고치면 되니까. 소설엔 퇴고라는 게 있잖아요. 퇴고로 인물에게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제가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도 생기고요. 같은 장면인데 시점을 바꿔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해요. 하지만 인생은 선택을 되돌리거나 다시 사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책임이 더 엄중하죠.
네. 너무 엄중하죠.
소설은 모든 선택들이 실책으로 남는 게 아니라 과정이 된다는 점이 좋아요.
Q. 『평균율 연습』 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양한 실수와 실책 앞에서 좌절을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의연하게 나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기는 힘든 일인데 선생님은 그럴 때 어떤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굉장히 쉽게 좌절하고 전전긍긍하는 편이어서요.(웃음) 이번 장편소설을 고칠 때 특히 멘탈이 심하게 흔들리더라고요. 초고가 원고지로 650매 정도였는데, 제 눈엔 650매짜리 실책으로 보였으니까. 이걸 언제 다 고치나 싶어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퇴고를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 일정표를 작성하고 책 한 권을 조금씩 읽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요.
Q. 혹시 그 책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막상스 페르민의 『꿀벌 키우는 사람』(임선기 옮김, 난다, 2022)이라는 책입니다. 한 달간 매일 5~10페이지씩 읽었어요. 마음의 의지처가 된달까. 곱게 정돈된 문장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잖아요.
Q. 제가 최근에 한 지인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가 어떤 소설을 보고 너무 충격과 감동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부러움이 들어서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왜 부럽고 힘들어하냐, 그런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는 그 순간이 중요한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공감이 됐어요.
좋은 소설은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겐 마음의 피난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자기 것과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가진 게 저마다 다를 테니까.
Q. 선생님은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중이시잖아요.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프란츠, 2017), 피에르 베르제의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프란츠, 2021) 등 여러 번역 작업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섬세한 언어로 소개해주셨어요. 번역을 하는 일과 소설을 쓰는 일은 다른 영역일 것 같아요. 번역가 김유진, 소설가 김유진은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해요.
번역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의 독서를 요구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보통 책을 읽을 때도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번역할 땐 그걸 한 문장, 한 단어, 혹은 쉼표 하나 단위로 따지게 돼요. 문장을 재생산해야 하니까. 게다가 소설은 맥락이나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많이 변해서 대충 넘어갈 수가 없어요. 저는 번역하면서 이렇게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도대체 왜!’를 외친 적이 많습니다.(웃음)
반면 소설은 자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놓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엔 다른 압박감도 들어요. 모든 게 내 것이라는 게 어떤 면에선 자유롭지만 한편으론 감옥 같기도 해요. 내 것이라는 게 결국 내가 해온 것, 나 자신이라고 믿어지는 것, 나와 타인의 기대라고 추정되는 것의 총합에 불과하잖아요? 결국 실체가 없는 거죠. 그러니 생각이 훨씬 많아져요. 망설임도 길고. 그런 것에 비하면 번역은 마음은 편한 편이에요. 그냥 오독하지 말자. 오역하지 말자. 있는 대로 쓰자. 이런 생각을 하죠.
Q. 이번에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레터의 주제를 ‘일상의 균형’, 그러니까 ‘조율하듯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정리해봤거든요.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인지가 궁금한데요. 동시에 저는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낙관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이 궁금해요.
연재 당시 이 소설의 제목은 ‘미래와 전망’이었어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것저것 생각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나온 것들 중 하나가 ‘낙관적인 태도’라는 거였어요. 그 밖에도 여러 말도 안 되는 제목들이 있었는데, 제가 편집자님께 자꾸 제목 타령을 하니까 어느 날 편집자님이 ‘평균율 연습’이라는 제목을 지어주셨어요. 천만다행이죠.(웃음)
‘낙관’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제가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스티븐 핑거라는 사람이 쓴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책 설명에 인류는 실책도 많지만 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주장을 역사를 통해 증명해 보이는 책이라는 거예요. 그런 낙관적인 태도가 좀 흥미로워서 덥석 주문했는데, 실제로 배송된 책이 1200페이지나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낙관이라는 건 증명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맞아요. 사람들에게 비관을 믿게 하기가 더 쉽죠.
그래서 낙관을 좀더 소중히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임정희라는 인물이 보이는 낙관이 저에겐 의미가 있어요. 큰 실패를 경험하면서 갖게 되는 낙관이란 절실함의 다른 말 같거든요.
Q. 제가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도 정희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부분에 유난히 마음이 가더라고요. 정희가 돌보는 할머니가 500피스짜리 퍼즐을 가리키면서 정희에게 이렇게 말하잖아요. “자넨 아직 젊으니까 어려운 거 해봐”라고. 그리고 이렇게 이어져요.
임정희는 그 말이 좋아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꼭 맞는 퍼즐을 찾으면, 자신이 정말로 아직 젊은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용기가 났다.
그러니까 삶이 퍼즐을 맞추듯 어떤 단계들에 꼭 들어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수민이 피아노를 조율하면서 깨닫거나 정희가 퍼즐에 집중하면서 느꼈듯 선생님께 일상적인 깨달음을 주었던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발레를 꽤 오래 했거든요. 아무리 해도 안 늘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그냥 하는 거 있잖아요. 발레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서는 법이거든요? 어떤 거냐면, 어디에 기대지 않고 서는 거예요. 저희 같은 원고 노동자들은 늘 어딘가에 기대어 있잖아요. 자기 관절이나 척추에.(웃음) 그런데 무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서서 오로지 근육의 힘으로 몸을 들어올리더라고요.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아이들은 이걸 가르치면 금방 배운대요.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쁜 습관이 들지 않은 거겠죠. 저 같은 성인은 아무리 배워도 적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최근엔 그 느낌을 조금 알 것도 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내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새삼스러운데, 정말 낯선 기분이었어요. 땅은 되게 넓고 단단하잖아요. 무용수들은 이 대단한 힘을 이용해서 그렇게 날아오르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너무 멋진 말이네요. 무용가들의 땅은 넓고 단단하고 그 땅을 자기 힘으로 온전히 디딜 줄 아는 것이라는 표현이요.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맨날 그러세요. ‘바닥을 믿으세요. 넘어지지 않아요.’
Q. 저도 깨닫고 싶어요. 제 땅이 얼마나 넓은지, 믿고 딛을 수 있는지 말이죠. 이제 마지막입니다. 오늘 인터뷰가 어떠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제가 말이 많아진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1월에 리스본에 갑니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길지 않은 소설을 써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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