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지금, 우리 모두가 빠져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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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네에 있던 유일한 책방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소중한 공간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사서 며칠 동안 아껴가며 읽고 나면,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책방에 들러 신간이 나왔는지 살피곤 했죠. 교과서만 가득한 소도시의 작은 책방 한쪽에는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책들이 주로 있었고, 그 까닭에 자연스럽게 그런 책들을 읽던 시절이었어요.

책은 소도시라는 현실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특별한 통로랄까요. 그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 했고, 자주 위로와 평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제 청춘의 한 부분은 텅 빈 채로 남지 않았을까 싶어요. 책은 그 시절 제게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마음속 허전함을 채워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 소중한 친구였으니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한강’이라는 이름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책을 항상 가까이하던 사람도, 그렇지 않던 사람도 모두 한강 작가의 책을 들고 축하하며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보며, 마치 제가 상을 받은 듯 벅찬 감동을 느꼈어요. 그동안 스포츠, 영화, 음악 등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을 보며 자랑스러워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흥분하며 기뻤던 적은 없었어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라는 사실이 더 큰 감동을 준 것 같아요.

계절책장의 주제는 미리 정하는데요, 주제가 확정되면 책을 고르고 다시 읽으며 원고를 씁니다. 누구도 한강 작가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지금, 우리 모두가 빠져 있는 책’을 주제로 정한 것이 우연 이상의 예감이었던 건 아닐까, 혼자 뿌듯해했습니다.

Editor. 롤러

 

1. 한강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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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1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인증하며 읽는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모든 소셜 미디어 피드가 뜨겁습니다. 저 역시 친구들과 밤새 한강 작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느라 대화가 끊이지 않았거든요. 온라인 서점은 수상 직후 사이트가 잠시 마비되기도 하고 오프라인 서점은 진열과 동시에 책들이 빠르게 판매되었다고 해요.

대부분의 독자는 출간된 수 권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망설이기도 할 텐데요, 한강 작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읽어볼 책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한 적이 있어요.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발생한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비교적 최근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절실하고도 깊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폭력과 공포의 현장 속 무고한 희생자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역사의 상처를 아름다운 문체로 보여주며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려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데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는 특별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시작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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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2030 여성들의 ‘바이블’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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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쓰다, 2013년 개정판: 초판 출간 1998년)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에 출간된 『모순』은 당시 여성들의 삶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작품입니다. 특히 결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많은 여성에게 공감을 얻었죠. 최근에는 2030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다시금 주목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졌지만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달랐죠.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 후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이모와 다르게 진진의 엄마는 가난과 폭력의 일상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책은 단순한 가족 소설을 넘어, 삶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루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줘요. 그리고 상반된 사랑을 경험하며 안정적인 삶을 약속하는 남자와 불안정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진진은 부유한 삶을 살던 이모의 선택으로 인해 행복의 기준을 다시금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양귀자 작가의 작품은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워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작들이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에 출간된 이 작품 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저와는 또다른 세대여서 안진진의 선택에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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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자인 삶에 지친 이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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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루리, 문학동네, 2021년)

우리는 일상에서 ‘혼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떠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어요. 하지만 ‘혼자’라는 말에 담긴 긍정적인 의미 이면에는, 세상과 단절된 듯 외로운 혼자들이 존재합니다. 가족 없이 홀로 남겨진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온 보호 종료 아동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비록 ‘수단’처럼 같은 종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과연 누구일까, 의문이 들었죠. 어쩌면 그들에게도 앙가부나 치쿠, 펭귄처럼 소중한 이들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연대, 우정, 사랑을 상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루리 작가의 『긴긴밤』은 2018년 멸종된 북부흰코뿔소 수단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지구상에 단 한 마리만 남은 흰바위코뿔소 고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함께 바다를 향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행복했던 날 가족을 잃은 고든이 동물원에서 앙가부를 만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치쿠와 펭귄을 만나 바다로 향하며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되어주는 장면들은 깊은 감동이었어요. 마지막에 힘을 잃은 고든을 두고 혼자서 바다로 향해 떠나는 펭귄의 모습은 보호 종료를 앞둔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는데요, 그들도 펭귄처럼 “당돌하고 씩씩하”기 바라며,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싶어서 살아”가길 바라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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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나지 않는 이야기, 자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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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문학동네, 2013년)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공부가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친구와 연결되어 있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친구, 우정, 만남으로 가득했죠. 공부는 그저 작은 부분을 차지했을 뿐이었어요. 청소년기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죠. 그래서 『데미안』은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을 겁니다.

1919년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데미안』은 세상에 나온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에밀 싱클레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청소년기의 불안과 자아 발견, 선과 악의 이중성 등 인간 내면의 복잡한 문제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 철학적이고 영적인 성찰을 담아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데미안』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깊을수록 독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이미 익숙한 이 소설이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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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간관계의 스테디셀러,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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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현대지성, 2019년)

조카를 만났어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으니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고 답하더군요. 소설이나 산문, 시만 즐겨 읽는 저는 ‘아니, 인간관계를 알려면 소설을 읽어야지’라고 머뭇거리며 말하긴 했는데요, 사실 이 유명한 책을 그동안 읽어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독서 편식이 심한 터라 책을 좀 가려 읽거든요. 그나마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 도서가 있으면 이유가 궁금해서 읽어보는 편이긴 해요. 조카의 대답을 듣고 찾아보니 어느새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유가 궁금해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자주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찾아 읽고 있어요, 마침 책이 눈에 띄기에 펼쳐보니 역시 공감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소설들도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더라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든, 세계문학전집이든, 2030 여성들이 좋아하는 소설이든 간에 말이에요. 그러니 이 책이 왜 유명하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지 알겠더라고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단순히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넘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건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이해해야 하며, 비판하기 전에 칭찬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훌륭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많은 사람이 꾸준히 이 책을 찾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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