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여름의 맛 하나요.
이맘때쯤 저의 유튜브 홈 화면엔 ‘여름 집밥’처럼 눈과 입을 사로잡는 제목의 영상들이 우후죽순 등장합니다. 채 썬 오이가 쫑쫑 올라간 눅진한 콩국수부터 참외에 그릭요거트를 곁들인 요즘 유행하는 신개념 디저트까지. 하나같이 눌러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맛들이 가득해요. 무더위에 입맛이 없어질 법도 한데, 저는 여름이 무르익어갈수록 이 계절을 맛으로 채워넣고 싶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맛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있나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계절공방에도 저와 비슷한 분들이 꽤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은 세 명의 에디터가 사랑하는 여름 맛과 그에 꼭 맞은 책 페어링을 준비했어요. 에세이와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조합입니다.
찰옥수수 x 박연준 『모월모일』

여름에 오는 비는 좀 특별하다. 몇 날을 연이어 내리기도, 축제처럼 요란히 퍼붓기도, 엉덩이가 무거운 손님처럼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비는 여름을 편애한다.
장마는 비가 여름에게 우정을 고백하며 쓰는 긴 편지다. ‘다시없겠지?’ ‘다시없을 거야.’ 귓가에 소곤거리는 빗방울들.
_박연준, 『모월모일』 중에서
누군가 비 오는 여름이 언제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장맛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바스락거리는 얇은 이불을 덮고 옥수수를 먹으며 이 구절을 읽었던 순간부터라고 답할 거예요. 운이 좋았지요.
비 오는 여름날, 특히 장마철은 눅눅하고 우중충해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지금 쏟아지는 이 빗방울이, 적막을 가득 채우는 빗소리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긴 우정의 편지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장마도 다시 없을 찬란한 시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잖아요. 친구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몇 시간을 떠들고도 집으로 돌아가 여백 없는 긴 편지를 쓰는, 우정으로 꽉 찬 날들.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긴 장마도 끝이 나듯, 삶이 우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지요.
『모월모일』은 박연준 시인이 발견한 삶의 순간들,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을 계절별로 담은 산문집이에요.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이란 소제목에서 느껴지듯, 자칫하면 놓치고말 계절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포착해 그려내는 문장이 참 맛깔나요.
여름이 숨겨둔 쫀득함을 맛보고 싶은 구독자분들께 이번 여름 책으로 『모월모일』을 추천할게요. 주의할 점은 ‘여름비’에선 다양한 여름 먹거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꼭 제철 먹거리를 구비해두고 책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다 애꿎은 입맛만 다시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복숭아도 수박도 좋다지만 저의 추천은 찰옥수수랍니다. 요즘은 알알이 톡톡 튀는 달콤한 초당 옥수수가 훨씬 인기라지만, 제철에 먹는 쫀득한 찰옥수수는 다시 없을 여름 맛이거든요. 지나가는 장맛비처럼, 때가 지나면 헐거워지는 우정처럼, 지금이 아니면 다시 없을 쫀득하고 고소한 여름만이 지닌 맛이요.
Editor. 송쏘
납작 복숭아 x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맛은 대극천복숭아, 흔히 ‘한국판 납작복숭아’라고 불리는 과일입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저로서 여름은 네번째로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이 복숭아 맛 덕분에 여름을 조금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납작복숭아를 먹으면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여름이 떠올라요. 랜드마크를 돌아다니고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공원을 거닐던 순간들이었어요. 파리의 여름은 햇볕이 무척 강해 선글라스 없이는 외출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세 시원해졌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과 죄드폼 미술관이 있는 튈르리 공원은 특히 좋아하던 장소예요. 미술관을 관람하고 난 뒤에 천천히 걷거나 나무 아래에 앉아 쉬었던 기억이 있어요.
오늘 아침 튈르리 공원의 태양은 잠이덜 깬 듯 돌계단 위를 한 칸씩 미끄러지며 내려가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태양의 그림자는 선잠에 빠진 금발 청년을 금방이라도 깨울 것 같았다.
_마르셀 프루스트, 「튈르리 공원」,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중에서
프루스트의 시 「튈르리 공원」에서는 어느 봄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공원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하루종일 공원 안에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에요. 햇살과 그림자,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해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요.
납작복숭아를 베어 물면 파리에 막 도착해서 기숙사에 입주하기 전, 친구와 함께 에어비앤비에 머물던 일주일이 떠올라요.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두고 마주앉아 납작복숭아와 요거트를 먹으며 일기를 쓰던 시간들. 프랑스에서 보낸 1년 중에서도 가장 초입의 기억이라 그런지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언젠가 다시 프랑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역시 여름에 떠나고 싶어요. 납작복숭아가 한창 맛있어지는 그 계절에요.
Editor. 디또
토마토 소바와 토마토 마리네이드 x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 사장님, 여기 여름의 맛 하나요.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_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중에서
후덥지근한 지면의 열기가 턱끝까지 느껴지고, 자꾸만 청량한 노래와 시원한 음식을 찾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유독 헉헉거리는 계절, 바로 여름이 왔습니다. 온 우주가 여름이 왔다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지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음식이 참 간절해요. 그래도 저에겐 ‘여름이 왔다!’라는 걸 온몸으로 알리는 음식이 있기에 이 더위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여름만 되면 참새가 찾는 방앗간 마냥 들르는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곳인데요, 갈 때마다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하곤 합니다. “사장님, 여기 토마토 소바랑 명란 오니기리 하나요. 아 참, 하이볼도 하나 주세요.”
진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국물과 정성스레 껍질을 벗긴 토마토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 잠시나마 바깥의 열기를 잊을 수 있거든요. 비록 오니기리는 항상 다 먹지도 못하고 조금씩 남기지만 도저히 저 조합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 여름엔 사랑을 읽고 싶어

기나긴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다 현관 앞에 놓인 토마토 한 상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샤워부터 하려고 했던 계획을 틀어 토마토 몇 알을 집어듭니다. 조금이라도 차갑게 숙성해서 먹으면 여름의 맛이 배가 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토마토의 날. 5분도 안 걸리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후딱 만들어 봅니다. 혹시라도 만들어 보실 분들은 바질은 꼭 잊지 말고 넣어주세요.
샤워를 마치고 한껏 산뜻해진 마음으로 머리도 덜 말린 채 냉장고 앞으로 향합니다. 좋아하는 그릇에 30분 동안 빠르게 숙성한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덜어 책상 앞에 앉습니다. 입으로는 새콤하게 번지는 토마토를 음미하고 눈으로는 아주 신중하게 읽을 책을 고르지요.
여름, 여름, 여름···… 여러분은 유독 여름에 손이 가는 책이 있으신가요? 저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청량한 맛의 산문에 유독 손이 갑니다. 한껏 행복해진 마음으로 사랑을 읽고 싶어지거든요.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_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중에서
Editor. 보키



사장님, 여기 여름의 맛 하나요.
이맘때쯤 저의 유튜브 홈 화면엔 ‘여름 집밥’처럼 눈과 입을 사로잡는 제목의 영상들이 우후죽순 등장합니다. 채 썬 오이가 쫑쫑 올라간 눅진한 콩국수부터 참외에 그릭요거트를 곁들인 요즘 유행하는 신개념 디저트까지. 하나같이 눌러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맛들이 가득해요. 무더위에 입맛이 없어질 법도 한데, 저는 여름이 무르익어갈수록 이 계절을 맛으로 채워넣고 싶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맛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있나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계절공방에도 저와 비슷한 분들이 꽤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은 세 명의 에디터가 사랑하는 여름 맛과 그에 꼭 맞은 책 페어링을 준비했어요. 에세이와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조합입니다.
찰옥수수 x 박연준 『모월모일』
누군가 비 오는 여름이 언제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장맛비가 쏟아지는 여름날 바스락거리는 얇은 이불을 덮고 옥수수를 먹으며 이 구절을 읽었던 순간부터라고 답할 거예요. 운이 좋았지요.
비 오는 여름날, 특히 장마철은 눅눅하고 우중충해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지금 쏟아지는 이 빗방울이, 적막을 가득 채우는 빗소리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긴 우정의 편지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장마도 다시 없을 찬란한 시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잖아요. 친구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몇 시간을 떠들고도 집으로 돌아가 여백 없는 긴 편지를 쓰는, 우정으로 꽉 찬 날들.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긴 장마도 끝이 나듯, 삶이 우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지요.
『모월모일』은 박연준 시인이 발견한 삶의 순간들,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을 계절별로 담은 산문집이에요.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이란 소제목에서 느껴지듯, 자칫하면 놓치고말 계절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포착해 그려내는 문장이 참 맛깔나요.
여름이 숨겨둔 쫀득함을 맛보고 싶은 구독자분들께 이번 여름 책으로 『모월모일』을 추천할게요. 주의할 점은 ‘여름비’에선 다양한 여름 먹거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꼭 제철 먹거리를 구비해두고 책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다 애꿎은 입맛만 다시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복숭아도 수박도 좋다지만 저의 추천은 찰옥수수랍니다. 요즘은 알알이 톡톡 튀는 달콤한 초당 옥수수가 훨씬 인기라지만, 제철에 먹는 쫀득한 찰옥수수는 다시 없을 여름 맛이거든요. 지나가는 장맛비처럼, 때가 지나면 헐거워지는 우정처럼, 지금이 아니면 다시 없을 쫀득하고 고소한 여름만이 지닌 맛이요.
Editor. 송쏘
납작 복숭아 x 마르셀 프루스트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맛은 대극천복숭아, 흔히 ‘한국판 납작복숭아’라고 불리는 과일입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저로서 여름은 네번째로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이 복숭아 맛 덕분에 여름을 조금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납작복숭아를 먹으면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여름이 떠올라요. 랜드마크를 돌아다니고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공원을 거닐던 순간들이었어요. 파리의 여름은 햇볕이 무척 강해 선글라스 없이는 외출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세 시원해졌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과 죄드폼 미술관이 있는 튈르리 공원은 특히 좋아하던 장소예요. 미술관을 관람하고 난 뒤에 천천히 걷거나 나무 아래에 앉아 쉬었던 기억이 있어요.
프루스트의 시 「튈르리 공원」에서는 어느 봄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공원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하루종일 공원 안에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에요. 햇살과 그림자,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해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요.
납작복숭아를 베어 물면 파리에 막 도착해서 기숙사에 입주하기 전, 친구와 함께 에어비앤비에 머물던 일주일이 떠올라요.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두고 마주앉아 납작복숭아와 요거트를 먹으며 일기를 쓰던 시간들. 프랑스에서 보낸 1년 중에서도 가장 초입의 기억이라 그런지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언젠가 다시 프랑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역시 여름에 떠나고 싶어요. 납작복숭아가 한창 맛있어지는 그 계절에요.
Editor. 디또
토마토 소바와 토마토 마리네이드 x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 사장님, 여기 여름의 맛 하나요.
후덥지근한 지면의 열기가 턱끝까지 느껴지고, 자꾸만 청량한 노래와 시원한 음식을 찾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유독 헉헉거리는 계절, 바로 여름이 왔습니다. 온 우주가 여름이 왔다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지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음식이 참 간절해요. 그래도 저에겐 ‘여름이 왔다!’라는 걸 온몸으로 알리는 음식이 있기에 이 더위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여름만 되면 참새가 찾는 방앗간 마냥 들르는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곳인데요, 갈 때마다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하곤 합니다. “사장님, 여기 토마토 소바랑 명란 오니기리 하나요. 아 참, 하이볼도 하나 주세요.”
진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국물과 정성스레 껍질을 벗긴 토마토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 잠시나마 바깥의 열기를 잊을 수 있거든요. 비록 오니기리는 항상 다 먹지도 못하고 조금씩 남기지만 도저히 저 조합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 여름엔 사랑을 읽고 싶어
기나긴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다 현관 앞에 놓인 토마토 한 상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샤워부터 하려고 했던 계획을 틀어 토마토 몇 알을 집어듭니다. 조금이라도 차갑게 숙성해서 먹으면 여름의 맛이 배가 되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토마토의 날. 5분도 안 걸리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후딱 만들어 봅니다. 혹시라도 만들어 보실 분들은 바질은 꼭 잊지 말고 넣어주세요.
샤워를 마치고 한껏 산뜻해진 마음으로 머리도 덜 말린 채 냉장고 앞으로 향합니다. 좋아하는 그릇에 30분 동안 빠르게 숙성한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덜어 책상 앞에 앉습니다. 입으로는 새콤하게 번지는 토마토를 음미하고 눈으로는 아주 신중하게 읽을 책을 고르지요.
여름, 여름, 여름···… 여러분은 유독 여름에 손이 가는 책이 있으신가요? 저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청량한 맛의 산문에 유독 손이 갑니다. 한껏 행복해진 마음으로 사랑을 읽고 싶어지거든요.
Editor. 보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