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긴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났어요. 한동안 보지 못했던 터라 서로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친구는 사진을 보여주며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들려줬고, 저는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조심스레 털어놨어요. 제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친구가 문득 “넌 참 긍정적인 사람이구나”라고 하더군요. 뜬금없는 말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맞아요. 저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부당한 일을 겪고도 껄껄 웃어넘기곤 하지요. 따지고 보면 그런 성격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으니, 꼭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일’에 있어서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일의 세계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곳이었거든요.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며 웃고, 울고, 자존감을 얻거나 잃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내가 이러려고 입사 했나’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뜻밖의 칭찬 한 마디에 힘이 나기도 하지요. 그렇게 일은 우리의 감정을 쉴 틈 없이 흔들고, 또 단단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일에 대해 자주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지 않으면 끝내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마음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번 계절책장에서는 이런 마음으로 일하며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들,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함께 소개하려고 해요.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규직이 되기까지의 유쾌하고 발랄한 직장 생존기부터, 똑같은 일을 하고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법정투쟁을 담은 이야기까지. 일의 고단함은 직업도, 나이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 책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인 우리 모두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와 웃음을 건네주길 바랍니다. 부당한 대우와 갑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고단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우리 안에 단단한 힘이 분명 있다고 믿으니까요.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 메리엠 엘 메흐다티, 달, 2025년)
20대 후반의 직장인 메리엠.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푸에르토리코에 살고 있는 그녀는, 역사상 가장 높은 학력을 지닌 세대이자, 동시에 가장 낮은 연봉을 받는 세대의 일원으로, 대형 슈퍼마켓 본사에서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요. ‘누군가 지시하면, 다른 이가 처리한다’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지옥’ 같은 두려움을 견뎌내며 마침내 ‘무서운 건 신과 소득세 신고 뿐이라는’ 정규직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메리엠의 내면 독백인데요, 자신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회의 부조리와 주변 인물들을 날카로운 유머로 비틀어내는 표현이 돋보입니다.
인턴 시절, 메리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무례한 상사부터, 부모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간섭을 일삼는 동료들까지. 그런 현실 속에서도 그녀는 유머와 자조를 무기로 삼아 묵묵히 버텨냅니다. 이런 모습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인 수많은 청년들의 삶과 닮아 있어요. 그래서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라는 제목이 어쩌면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요약해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메리엠이 인턴에서 정규직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지 않은 상황들에 공감하게 돼요. 월세 걱정, 현실의 벽, 여성으로서의 삶, 사회초년생에게 주어지는 무게들. 국적을 막론하고 직장인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더욱 빠져들어 읽게 될, 메리엠의 직장생활! 메리엠이 어떻게 그 자리를 지켜 정규직이 되는지 따라가보세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창비, 2021년)
카나리아제도에 메리엠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이 있어요. 바로 장류진 작가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에 나오는 은상, 다해, 지송입니다. 내 얘기 같았던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이어, 이 책에서도 작가는 특유의 감각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과 세대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동시대, 동세대의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냈어요.
『달까지 가자』는 유명 제과회사에 비공채로 입사한 세 명의 직장인, 브랜드실 스낵팀의 다해, 경영지원실 구매팀의 은상, 회계팀의 지송의 우정과 일상을 그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이들은 서로를 동기라 여기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함께 보내다보니 각자 다른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회사 안팎의 소식, 부서 간 가십, 공채 직원들만 아는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서로가 없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해 큰 수익을 얻게 되고, 다해와 지송도 그 흐름에 합류하면서 셋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인 저도 마치 함께 투자에 뛰어든 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았는데요, 카나리아제도의 메리엠이 체념과 유머로 일상을 버텨낸다면, 이들은 작고 불확실한 가능성 앞에서도 기꺼이 뛰어드는, 한층 더 도전적인 K-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윤지영, 클, 2025년)
사회 초년병이던 시절, 뭔지도 잘 모르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서를 한 장 써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이 오랜 시간 동안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때 알게 되었죠. 사회는 학교와 달리 생각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때로는 차갑다는 것을요. 법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잘 몰랐다고 해도 실수는 실수로 남았어요. 직접 쓴 각서 한 장은 결국 모든 책임을 제게로 돌려놓았고 오래도록 법의 부당함에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지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때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세상의 얼굴을, 아주 아프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니 ‘나만큼 억울한 사람도 드물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윤지영 변호사의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세상엔 저처럼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들 역시 함께 일하던 사람을 믿었을 뿐인데,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으며 마음도 몸도 무너져내리는 시간을 지나왔더라고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일이 어느새 삶 전체를 흔들어버린 거죠.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윤지영 변호사의 이 책은 불안정하고 고립된 일터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입주민 갑질 사건’부터 ‘핸드폰 판매노동자의 족쇄 계약’, ‘택시기사의 사납금 거부’, ‘현장실습생의 노동 착취’,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예제도’까지. 다양한 업종의 사례를 다룹니다. 이들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존중받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거나, 보호받기 위해 감당해야 할 시간과 비용, 용기가 너무도 버겁기만 하지요.
윤지영 변호사는 법률가의 시선에서 이 다양한 노동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은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유지되어온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밝히지요. 특히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불법파견, 부당해고 같은 사례들을 통해 일터가 단순히 ‘힘든 곳’을 넘어 ‘폭력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는 노동자들을 법적으로 돕는 일을 하면서도, 법의 한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노동자가 존엄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적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연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285쪽)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김동식 외, 문학동네, 2025년)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 회사나 사회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장애인 노동자부터 비취업자까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깊은 위로와 공감으로 그려낸 소설집이에요.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세번째 작품집으로, 현실적인 노동의 단면을 담은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죠. 비록 소설이지만, ‘발품을 팔아 사실을 적은’ 이야기들이기에 실제와 다르지 않은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표제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백화점 지하 안마실에서 일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입니다. 복지라는 이름 아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일하다 점차 자존감을 잃어가는 그를 통해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외, 게임 머니를 팔아서 쌀을 먹고 산다는, 소위 ‘쌀먹’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김남우(「쌀먹: 키보드 농사꾼」),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매니저 승진을 꿈꾸며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리라 다짐하는 주미(「올바른 크리스마스」),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해서는 시니어시터로 돌봄 노동을 하는 희지(「아무 사이」) 등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의 현실이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조건을 갖고 등장합니다.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그렇게 운좋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있지 않을까요.
‘일다운 일’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지쳐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노동자’로 살아가겠지요.

주말에 긴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났어요. 한동안 보지 못했던 터라 서로 나눌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친구는 사진을 보여주며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들려줬고, 저는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조심스레 털어놨어요. 제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친구가 문득 “넌 참 긍정적인 사람이구나”라고 하더군요. 뜬금없는 말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맞아요. 저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부당한 일을 겪고도 껄껄 웃어넘기곤 하지요. 따지고 보면 그런 성격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으니, 꼭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일’에 있어서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일의 세계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곳이었거든요.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며 웃고, 울고, 자존감을 얻거나 잃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내가 이러려고 입사 했나’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뜻밖의 칭찬 한 마디에 힘이 나기도 하지요. 그렇게 일은 우리의 감정을 쉴 틈 없이 흔들고, 또 단단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일에 대해 자주 말하고 싶어집니다. 말하지 않으면 끝내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마음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번 계절책장에서는 이런 마음으로 일하며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들,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담은 책을 함께 소개하려고 해요.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정규직이 되기까지의 유쾌하고 발랄한 직장 생존기부터, 똑같은 일을 하고도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법정투쟁을 담은 이야기까지. 일의 고단함은 직업도, 나이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 책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인 우리 모두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와 웃음을 건네주길 바랍니다. 부당한 대우와 갑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고단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우리 안에 단단한 힘이 분명 있다고 믿으니까요.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 메리엠 엘 메흐다티, 달, 2025년)
20대 후반의 직장인 메리엠.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푸에르토리코에 살고 있는 그녀는, 역사상 가장 높은 학력을 지닌 세대이자, 동시에 가장 낮은 연봉을 받는 세대의 일원으로, 대형 슈퍼마켓 본사에서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요. ‘누군가 지시하면, 다른 이가 처리한다’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지옥’ 같은 두려움을 견뎌내며 마침내 ‘무서운 건 신과 소득세 신고 뿐이라는’ 정규직이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메리엠의 내면 독백인데요, 자신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회의 부조리와 주변 인물들을 날카로운 유머로 비틀어내는 표현이 돋보입니다.
인턴 시절, 메리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무례한 상사부터, 부모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간섭을 일삼는 동료들까지. 그런 현실 속에서도 그녀는 유머와 자조를 무기로 삼아 묵묵히 버텨냅니다. 이런 모습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인 수많은 청년들의 삶과 닮아 있어요. 그래서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라는 제목이 어쩌면 이 이야기를 가장 잘 요약해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메리엠이 인턴에서 정규직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지 않은 상황들에 공감하게 돼요. 월세 걱정, 현실의 벽, 여성으로서의 삶, 사회초년생에게 주어지는 무게들. 국적을 막론하고 직장인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더욱 빠져들어 읽게 될, 메리엠의 직장생활! 메리엠이 어떻게 그 자리를 지켜 정규직이 되는지 따라가보세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창비, 2021년)
카나리아제도에 메리엠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이 있어요. 바로 장류진 작가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에 나오는 은상, 다해, 지송입니다. 내 얘기 같았던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이어, 이 책에서도 작가는 특유의 감각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과 세대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동시대, 동세대의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냈어요.
『달까지 가자』는 유명 제과회사에 비공채로 입사한 세 명의 직장인, 브랜드실 스낵팀의 다해, 경영지원실 구매팀의 은상, 회계팀의 지송의 우정과 일상을 그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이들은 서로를 동기라 여기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함께 보내다보니 각자 다른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회사 안팎의 소식, 부서 간 가십, 공채 직원들만 아는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서로가 없었다면 몰랐을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해 큰 수익을 얻게 되고, 다해와 지송도 그 흐름에 합류하면서 셋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인 저도 마치 함께 투자에 뛰어든 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았는데요, 카나리아제도의 메리엠이 체념과 유머로 일상을 버텨낸다면, 이들은 작고 불확실한 가능성 앞에서도 기꺼이 뛰어드는, 한층 더 도전적인 K-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윤지영, 클, 2025년)
사회 초년병이던 시절, 뭔지도 잘 모르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서를 한 장 써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이 오랜 시간 동안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때 알게 되었죠. 사회는 학교와 달리 생각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때로는 차갑다는 것을요. 법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잘 몰랐다고 해도 실수는 실수로 남았어요. 직접 쓴 각서 한 장은 결국 모든 책임을 제게로 돌려놓았고 오래도록 법의 부당함에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지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때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세상의 얼굴을, 아주 아프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니 ‘나만큼 억울한 사람도 드물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윤지영 변호사의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세상엔 저처럼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들 역시 함께 일하던 사람을 믿었을 뿐인데,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으며 마음도 몸도 무너져내리는 시간을 지나왔더라고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했던 일이 어느새 삶 전체를 흔들어버린 거죠.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윤지영 변호사의 이 책은 불안정하고 고립된 일터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입주민 갑질 사건’부터 ‘핸드폰 판매노동자의 족쇄 계약’, ‘택시기사의 사납금 거부’, ‘현장실습생의 노동 착취’,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예제도’까지. 다양한 업종의 사례를 다룹니다. 이들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존중받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거나, 보호받기 위해 감당해야 할 시간과 비용, 용기가 너무도 버겁기만 하지요.
윤지영 변호사는 법률가의 시선에서 이 다양한 노동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은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유지되어온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밝히지요. 특히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불법파견, 부당해고 같은 사례들을 통해 일터가 단순히 ‘힘든 곳’을 넘어 ‘폭력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는 노동자들을 법적으로 돕는 일을 하면서도, 법의 한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노동자가 존엄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적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연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일하다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세상, 헌법에 있는 권리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285쪽)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김동식 외, 문학동네, 2025년)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이 회사나 사회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장애인 노동자부터 비취업자까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깊은 위로와 공감으로 그려낸 소설집이에요.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세번째 작품집으로, 현실적인 노동의 단면을 담은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죠. 비록 소설이지만, ‘발품을 팔아 사실을 적은’ 이야기들이기에 실제와 다르지 않은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표제작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백화점 지하 안마실에서 일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입니다. 복지라는 이름 아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일하다 점차 자존감을 잃어가는 그를 통해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외, 게임 머니를 팔아서 쌀을 먹고 산다는, 소위 ‘쌀먹’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김남우(「쌀먹: 키보드 농사꾼」),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매니저 승진을 꿈꾸며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리라 다짐하는 주미(「올바른 크리스마스」),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해서는 시니어시터로 돌봄 노동을 하는 희지(「아무 사이」) 등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의 현실이 저마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조건을 갖고 등장합니다.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그렇게 운좋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있지 않을까요.
‘일다운 일’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합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지쳐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노동자’로 살아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