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월급아티스트 이은규 PD와의 인터뷰

  출간 일정 회의를 할 때 이 책 제목만 나오면 ‘풉’ 하고 모두 웃음이 터졌어요. 매년 근로자의 날에 맞춰 출간되는 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회의 때마다 여러 책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렇게 제목만으로도 반응이 뜨거운 건 참으로 오랜만이에요. 뭐랄까 다들 입 밖으로 꺼낼 때 묘한 짜릿함을 느끼는 걸까요. 

  이 책은 개인적으로도 참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제 오랜 친구인 이은규 PD가 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친구의 이름과 제 이름이 나란히 판권면에 실린 걸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렇게 친구 찬스로 얻어낸 작가 인터뷰! 사전 질문지 공유도 없이 ‘우선 만나!’로 시작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이은규 PD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지금 바로 그날의 풍경을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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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2년 차 다큐멘터리 PD 이은규의 소설가 데뷔를 축하해요. 시사교양 PD의 밥벌이 이야기를 다룬 「기획은 좋으나」로 이번 책에 함께해주셨어요. 첫 소설 집필인 걸로 아는데 책이 나온 소감이 궁금해요. 

― 부끄러워요. 그래도 제 146개월 간의 월급에서 엑기스를 뽑아내듯 쓴 소설이 세상에 나와 기쁘고요. 널리널리 퍼져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Q. 이 소설을 청탁하게 된 계기가 이은규 PD의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 적힌 한 줄 소개 ‘당분간 월급사실주의자’에서 시작했잖아요. 

― 그러니까요. 정말 운명 같아요. 아마 ‘월급사실주의자’라는 말을 어느 칼럼에서 봤거나 그랬을 텐데요. 제가 독립출판물로 처음 만들었던 책 제목이 『삼년차 직장인』이었고, 지금은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 역시 그 독립출판물에서 시작했었기 때문에 한 줄 소개에 그 단어를 가져다 쓴 게 아닌가 싶어요. 당시엔 월급사실주의자보다는, 언제라도 그만둘 마음으로 그 앞의 ‘당분간’에 더 방점을 두었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늘 제 ‘밥벌이’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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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획은 좋으나」의 주인공이 이은규 PD와 같은 ‘시사교양PD’더라고요. 이은규 PD의 지난 발자취를 잘 아는 제게는 읽으면서 이은규 PD가 겹쳐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흥미로웠는데요. 주인공을 굳이 자신과 동일한 직업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어요? 본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설정하면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읽힐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걱정은 없었어요?

― 당연히 저와 주변의 경험을 각색해서 쓰긴 했으나 그래도 염려가 되더라고요. 혹시라도 오해나 항의를 받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뭐 그렇다 한들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더라고요. 딱 쓸 수 있는 것을, 쓸 수 있는 시기에, 기회가 와서 너무 좋았어요. 일기의 상위 버전이 아닌가 싶을 만큼 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문학입니다’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썼습니다.


Q. 방송국 동료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 동료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인데…… (웃음) 안 그래도 선배가 먼저 책 얘기를 해와서 이거 완전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문학동네 SNS 계정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큰일 났어요. 남편은 읽어보더니 ‘잘 읽었어’라는 단답형 대답을 해와서 좀 다그쳤네요. 책이 나오니 가족들도 다들 신기해하고 기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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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인이 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이은규 PD는 왜 소설 속에 서른두 살 주인공인 ‘나’와 후배 ‘소연’을 등장시킨 거예요? (따져보니 저나 이은규 PD는 이미 저 시기를 한참 지났더라고요.)

― 7년 차 미만이 직장인으로서 가장 강렬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주인공의 경력을 5년 차 정도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제게도 그때는 정말 생존을 위해 막 내달리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소연이라는 캐릭터가 선배인 주인공을 지적했던 지점들은 제가 실제로 일을 하면서 챙기지 못했거나 놓쳤던 부분들이거든요. 10년 차를 넘어서니 그때 챙기지 못한 어떤 지점들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10년 차는 주니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정권자도 아니죠. 그 사이에 껴 있는 애매한 상황에서 저는 ‘책임’을 지기 전에 ‘반성’을 하자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어요. 

참, 소설을 쓰려면 회사에 기안을 올려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한 부장님이 결재를 해주며 무슨 이야기를 쓰는 건지 너무 궁금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이 성장하고 반성하는 이야기’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네요. 정말 그래요. 저는 이 소설로 제가 지나온 울퉁불퉁한 시행착오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싶었어요. 


Q. 현재의 이은규 PD는 어떤 ‘월급사실주의자’인가요? 소설처럼 성취와 직업적 윤리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을 택하기란 현실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일 텐데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춰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 요즘 꽂힌 문장이 있어요. ‘울면서 달리고, 달리면서 생각한다.’ 예전에 첫 직장을 다닐 때 굉장히 절망하곤 했어요. ‘아, 나는 창작을 해야 하는데 맨날 점심 메뉴만 고민하고 있네!’ 하고 말이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창작과 월급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월급이 있었기에 창작을 할 수 있었죠. 일을 하며 고민스러운 일이 있다 해도 월급을 받는 이상 멈출 수 없어요. 전에는 ‘당분간 월급사실주의자’에서 ‘당분간’에 방점이 있었다면, 요즘은 그 뒤에 붙은 ‘월급사실주의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최근 오랫동안 운영해온 블로그 이름을 바꿨는데 ‘맛집 가고 육아하는 월급아티스트’입니다. 이제 아트의 경지까지…… (일동 큰 웃음)


 Q. ‘삼년차 직장인’에서 ‘당분간 월급사실주의자’ 그리고 ‘맛집 가고 육아하는 월급아티스트’까지 ‘진화’해온 모습이 재밌게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마디를 남겨주세요. 

― 과거의 저는 ‘월급사실주의자’라고 하면, ‘월급사실주의’라는 명칭으로 퉁쳐지는 거대한 동질성이랄까요. 그러니까 ‘월급 받는 사람들은 다 똑같지’라는 유의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를 쭉 읽어내려가며 돈을 버는 행위의 주체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정말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새삼 깨우쳤어요. 이번 책을 통해 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가 말하는 ‘노동’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나저나 책 역시 편집자님의 노동으로 완성되는 것!) 그러니 독자 여러분, 부디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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