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곧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일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곧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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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무언가에 푹 빠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 마라톤을 시작하거나, 어느 날 문득 산에 오른다거나,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에 마음이 흔들려 처음으로 ‘덕질’이라는 걸 하게 되기도 하고요. 예전엔 그저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작은 취미처럼 느껴졌지만, 요즘은 그런 관심이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하루의 한 조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놓는 식으로요.

 

얼마 전, 점심 산책을 하다가 망원경을 목에 건 채 새를 관찰하고 있는 ‘디또’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사내 탐조동아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점심시간을 쪼개 새를 찾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무언가에 그렇게 마음을 쏟아본 적이 없어서,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참 근사하게 보였어요. 조용히 혼자만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 같았달까요.

 

비슷한 친구가 또 있는데요, 그 친구는 요즘 태국 배우에게 푹 빠졌는데, 그를 조금 더 알고 싶어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대요. 매일 태국 라디오를 듣고, 그 언어로 일기를 쓰고, 배우의 굿즈를 들고 인증샷을 찍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그 애정을 따라가는 방식이 참 다정하고 성실하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떤’ 세계로 발을 들이고 있어요. 그렇게 빠져드는 시간들이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고, 하루를 좀 더 따뜻하게 채워주기도 하고요.

 

혹시 여러분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있지 않나요?

 

이번 계절책방에서는 그런 책들을 모아봤어요. 버번 위스키에 빠진 시사프로그램 기자가 위스키에 관한 책을 쓰고, 아이돌에 빠진 소설 속 화자는 ‘최애’에 대한 사랑으로 놀라운 일을 벌이기도 해요. 또 남들이 보면 ‘하찮은’ 물건을 모아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써내려간 사람도 있고요.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어든 이들의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 소개해봅니다!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최애의 아이」 (이희주, 문학동네, 2025년)

: ‘최애’를 향한 놀라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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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봤던 『환상통』,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광기와 집착이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를 파헤친 『성소년』을 통해 이희주 작가는 ‘사랑의 특수성에 대한 섬세한 기록’을 보여준 바 있죠. 그럼에도 이번 작품집에 실린 「최애의 아이」의 결말을 읽고는,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삼켰습니다.

‘덕질’을 해본 적 없는 저로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리고, 나오는 굿즈마다 사 모으며, 신곡이 발표되면 여러 장의 앨범을 사서 선물하는 이들의 마음이 늘 낯설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읽고 나니, 이희주 작가가 보여준 ‘우미’의 감정에는 공감이 되면서도 마지막에 우미가 보여준 행동에는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지요. 사실 그녀가 ‘유리’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로 설명해주진 않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희주 작가의 말에 설득(!)당하는, 그래서 우미의 행동들이 당연한 것처럼 공감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 때문에 조금이나마 그들의 사랑이 이해되기도 했어요. 그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덕질’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결코 먼저 변하지 않을, 위대한 사랑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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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취향』 (김기열, 미메시스, 2020년)

: 사소하지만 소중한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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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거나, 깊이 빠져본 적 없는 저에게도 오랜 시간 이어져온 일이 하나 있어요. 바로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리는 일이에요.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이 필요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열게 된 거죠. 그렇게 기록을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게 되고, 읽다 보니 글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북 큐레이션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뭐든 꾸준하게 하는 일은, 참 소중한 일이더라고요(알면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하찮은 취향』은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인 저자가 오랜 시간 모은 사적인 수집품들을 사진과 에세이로 엮은 책입니다. 값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여도, 저자에게는 분명한 이야기가 담긴 종이쪼가리, 장난감, 뮤지엄 입장권, 비스킷 캔, 소책자, 병뚜껑 같은 작은 사물들을 통해 ‘취향’이라는 감각의 결을 섬세하게 보여주는데요. 그 물건들에 깃든 기억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사소해 보이던 취향이 사실은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임을 느끼게 되죠.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책이 아닌, 다른 소중한 것들도 블로그에 기록하겠다고 설레발(?)을 친 적이 있었는데요, 무언가에 빠진다는 건, 흉내 낸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죠. 누군가를 따라 시작할 수는 있어도, 결국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진심이 필요하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책이나 읽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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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조승원, 싱긋, 2020년) with 『술 취한 식물학자』(에이미 스튜어트, 문학동네, 2016년)

: 위스키를 탐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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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에이미 스튜어트의 『술 취한 식물학자』 출간 이벤트로 ‘조니워커 하우스’에서 열린 칵테일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이 책은 “모든 술은 식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우리가 즐기는 술 한 잔 뒤에 숨어 있는 식물의 세계를 유쾌하게 탐험하는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위스키, 와인, 진, 맥주, 칵테일 등에 들어가는 수십 가지 식물을 소개하며, 이 식물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술 문화에 얽히게 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줍니다. 하지만 저는 식물을 탐험하기보다는 위스키와 칵테일을 즐기기 위해 그 자리에 갔던 터라, 조니워커 하우스에서 맛본 ‘조니워커 골드’의 맛만 기억에 남았...죠(사실은 조니워커 ‘무엇’을 주었든 구별조차 못 했으리라는 건 안 비밀이지만요...!). 그날, 스카치 위스키니 버번 위스키니 하는 종류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위스키 맛도 잘 모르는 제가 뭘 기억하겠어요(>.<). 몇 년 후 조승원 기자의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위스키, 그중에서도 ‘버번 위스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답니다.

 

MBC 보도국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조승원 기자의 위스키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어요,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건 술과 음악에 빠져 관련 정보와 책들을 찾아 헤매다가 “세상에 없다면 내가 쓰고, 내가 첫 번째 독자가 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셈인데, 그 말처럼 아무도 책을 내주지 않자 정말로(!) 직접 집필에 나서 끝내 완성했다고 해요. 무언가를 향한 한 사람의 깊은 애정이 만들어낸 이 ‘은혜로운 결과물’은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큰 즐거움을 주었겠지요.

이 책은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된 ‘버번 위스키’ 도서로, ‘전문가’보다는 ‘애호가’의 시선으로 쓰여 쉽게 이해가 되면서도 그 깊이와 폭이 방대해서 ‘버번 위스키의 도서관’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고 합니다. 버번 위스키에 막 입문한 분들에게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이미 위스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더 깊은 애정을 선사하는, 입문서이자 안내서 같은 책이에요.

 

『비번 위스키의 모든 것』  더 알아보기

『술 취한 식물학자』  더 알아보기




『인생 보드게임』 (박윤미, 정인건, 나무의마음, 2023년)

: 보드게임을 탐구하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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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보드게임을 몇 가지나 알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보드게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어요. 제가 어릴 땐 그런 게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종이판이나 나무판으로 된 ‘보드’를 가운데 두고 여럿이 둘러앉아 즐기는 놀이가 모두 보드게임에 포함되더라고요.

동생들과 주사위를 던지며 오르락내리락하던 뱀사다리 게임, 장기, 다이아몬드 게임 같은 것도 모두 보드게임이었던 거예요. 카드로 하는 다양한 놀이나 조카와 몇 번이나 반복해서 했던 부루마블도 떠오르네요.

 

『인생 보드게임』은 작가인 엄마와 반도체 연구원인 아빠가 결혼 전부터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다가 두 아이의 부모가 된 후로 그 즐거움을 더욱 깊이 있게 나누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런 경험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은 보드게임 중에서 아이들과 학생들이 특히 좋아했던 게임을 골라서 소개하고 있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보드게임의 장점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놀다 보면,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걸 도와주게 된다는 점이에요. 새로운 보드게임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치 보드게임 미술관에 온 듯 눈이 즐거워지는 350여개의 멋진 작품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와 더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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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책사람집, 2024년)

:13년 6개월의 세월을 함께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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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난 뒤, 영화 속에 등장한 책들이 궁금해 찾아본 기억이 있어요. 그중 한 권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블로그에 후기를 적으면서 ‘출간되지 않은 책 같다’고 적었는데, 어떤 분이 댓글로 “이미 번역되어 출간된 책이다”고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땐 품절되어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개정판으로 출간되어 바로 구매를 했지요. 그리고 영화 속 헌책방 주인이 『나무』의 책값을 계산하던 주인공 히라야마에게 “같은 단어라도 이 작가가 사용하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라고 건넨 말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습니다.

1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일본 곳곳을 여행하며 만난 나무들을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참 인상적인데요, 홋카이도 후라노 숲에서 벌어지는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 이야기를 시작으로 등나무에 얽힌 아버지와 딸, 그리고 손녀로 이어지는 긴 에피소드 그리고 벚꽃과 버드나무, 삼나무, 포플러 같은 평범한 나무들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여러 편의 글은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기억을 품은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죠.

작가는 나무 곁에 오래 머물면서 계절이 바뀌고,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사라지는 흐름을 지켜보는데, 그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 참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줘서 읽다 보면 자연과 우리 삶, 그리고 그 안의 존재들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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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개를 하고 보니 본업이 있음에도 또다른 세계로 빠지는 일은 쉬운 듯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우선 부지런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소소한 일을 통해 삶이 즐거워진다면, 한 번쯤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탐험(!)의 세계로 꼭 떠나보는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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