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묵혀둔 기억을 불러내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특정한 맛을 떠오르게 하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한입은 마음속에 스며 있던 책 속 한 구절을 곱씹게 만들어요.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책 속 한 구절과 어울리는 한입. 초콜릿이 생각나는 날이니만큼, 이 조합이 탄생한 달콤쌉싸름한 사연까지 곁들여서요. 이번 글을 통해 공방원분들도 저마다의 취향이 담긴 문장과 맛을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 가지 페어링을 소개할게요.
※ 주의. 입이 심심해질 수 있으니 간식과 함께 읽어주세요.
Editor. 송쏘

♥ + 젤리 + 문보영의 시

저는 정말이지 군것질 사냥꾼이에요. 하루에 한 번 이상 군것질 시간을 갖고, 레몬사탕을 종류별로 먹는 그런 사람이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젤리예요.
제 기억 속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젤리는 어린 시절 에버랜드에서 엄마가 사줬던 딸기 젤리예요. 하지만 이제는 단종돼서 더이상 구할 수 없죠. (최근까지 에버랜드 판다월드 기프트숍에서 판매했던 레서판다 모양 젤리도 귀여웠는데, 래서판다가 오렌지빛이라 젤리도 오렌지맛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 개업을 한다거나 축하할 만한이벤트가 생기면, 이 딸기 젤리를 대량으로 주문 제작해서 답례품으로 나누고,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는 게 어린 시절부터 작은 (또는 큰) 꿈이었어요.
몇 년 전, 웹서핑하다가 같은 젤리 브랜드에서 나온 산타 젤리를 발견했어요. 크리스마스에 맞춰 출시한 젤리였고, 산타답게 딸기맛이었죠. 큰 용기를 내서 장바구니에 스물네 개를 담았는데, ‘최대 수량 열여섯 개’라는 팝업창이 떴을 땐, 아쉬움 반, 싹쓸이했다는 뿌듯함 반이었어요. 이날은 꽤 행복한 날이었어요. 저는 이 젤리를 ‘인생 부스터’라고 명명했어요. 무언가를 해내거나 또는 힘들 때 보상처럼 하나씩 먹기로요. (마치 초등학생 때 읽었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요.)
요즘은 루피 젤리를 박스째 구매해 인생 부스터로 삼고 있어요. 산타든 루피든 그 형태에는 이렇다 할 호불호가 없지만, 그들이 빨간색을 띤띈다는 것, 그래서 딸기맛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좋아합니다. (산타 만세 루피 만세)
이런 인생 부스터를 떠올리면, 문보영 시인의 한 구절이 생각나요.
샤워를 한 김에 세상을 구하지. 그렇다고 바뀐 건 없어. 다만 이야기를 짓는 내 마음이 변했어.
_문보영, 「세상을 느리게 구하다」에서
이 시의 주인공은 샤워를 싫어하지만 샤워를 하며 각성합니다. 제게 딸기맛 젤리는 ‘진짜 힘든 일이 있었다’는 플래그이자 ‘그럼에도 해냈다’라는 상징이고요. 그래서인지 이 시의 샤워가 딸기 젤리로 치환되어 읽히더라고요. 인생 부스터가 필요할 때, 이 시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슈퍼 히어로의 하찮음과 귀여움으로부터 하찮고 귀여운 힘을 얻습니다.
Editor. 디또
♥ + 레드와인 + 박서영의 시
저는 책과의 운명을 믿는 편이에요. 특히 시詩와는 더 그렇습니다.
몇 가지 기억 중 하나는 동료와 전주 여행을 떠났을 때였어요. 그때 저는 여러모로 마음의 내상이 깊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친구들이 그런 저를 조용히 밖으로 이끌어 준 것이었지요. 출판사에서 만난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물결서사’. 서점 주인 분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아담한 내부를 둘러보았어요. 친구는 이쪽. 저는 저쪽.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시집이 있었습니다. 매대에 진열되어 있지도 않았고, 서가에 무심히 꽂혀 있었는데 어쩌다 펼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어떤 시를 만났고, 첫 문장부터 세상이 아주 고요해지는 듯한 경험을 했어요.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마음에 절절히 와닿았달까요.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이대로 울어버리면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더는 읽지 못하고 그대로 그 시집을 사서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늘 말로만 들어왔던 시의 위로랄까 시와의 운명이랄까 하는 걸 그때부터 어렴풋이 믿게 된 것 같아요.
왜인지 이번 <계절공방> 원고를 쓰면서는 자꾸 그런 순간들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물론 레드와인 한 잔도 함께요. 그 시기 제게 운명처럼 찾아온 시들은 레드와인처럼 달고, 쓰고, 종국엔 영 모르겠는, 그런 맛이 났던 것 같아서요.
나는 너와 함께 최대한 멀리 가보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_박서영, 「숲속의 집」에서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는 시인의 고백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집.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의 운명의 시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Editor. 지지
♥ + 에끌레어 + 토베얀손의 소설
새로운 존재가 주는 황홀함이 너무 커서 이내 미워진 경험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이건 ‘에끌레어’라는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야흐로 이십대 초반,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했지만,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답게 ‘고급’ 디저트를 먹어본 경험은 많지 않았어요. 덕분에 편의점에서 사 먹는 ‘허쉬 초콜릿’만으로도 행복했고, 종종 친구와 투썸플레이스‘아이스박스’를 사 먹을 때면 자본주의가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바로 세우곤 했었죠.
그렇게 평화롭던 저에게,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어요. 당시 직장인이던 친구를 따라 한남동 어딘가에서 우연히 에끌레어를 먹어보게 되었어요. 우아함이 느껴지는 길고 곧게 뻗은 페이스트리, 폭신해 보이는 정체 모를 크림과 그 포근함이 제 몫인 듯 정갈하게 자리잡은 블루베리까지. 세련된 외모에 이름까지 어쩜 에끌레어인지. 저는 에끌레어를 보는 순간 반했고, 한 입 먹어보고 나서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에끌레어가 생각났어요. 정말이지 툭하면 생각나서 자주 보고 싶었으나, 매일 에끌레어를 먹고 살 수는 없었죠(제 주머니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내 에끌레어가 미워지는 거 아니겠어요. 에끌레어를 먹어보기 전에는 투썸의 아이스박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왜 세상에 에끌레어 같은 애가 존재해서 나의 평화를 흔들어놓는 건지. 나는 에끌레어 없이도 충분히 달콤하게 살고 있었는데.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이 고양이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얘 생각만 나.”
_토베 얀손, 『여름의 책』에서
사실 이건 에끌레어에 대한 이야기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줄수록 돌려받을 수 없고, 덩달아 깊어지는 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참 이상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엔 더욱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
『여름의 책』은 무민 시리즈로 유명한 토베 얀손의 소설로, 어린 손녀딸 소피아와 그녀의 할머니가 작은 섬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예요. 사랑하는데 자꾸만 미워져서, 미워지는데 자꾸만 사랑해서, 마음이 괴로워질 때면 저는 이 소설을 꺼내 읽고 싶어져요. 대놓고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오히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천진난만한 소피아가 제멋대로인 길고양이를 만나며 사랑을 배우는 장면은 그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도 명쾌한 깨달음을 주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을 때 한 가지 디저트를 곁들인다면, 역시 에끌레어가 좋겠습니다. 에끌레어를 떠올려도 마음이 평온한 걸 보니, 이제는 에끌레어를 다시 찾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Editor. 송쏘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묵혀둔 기억을 불러내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특정한 맛을 떠오르게 하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한입은 마음속에 스며 있던 책 속 한 구절을 곱씹게 만들어요.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책 속 한 구절과 어울리는 한입. 초콜릿이 생각나는 날이니만큼, 이 조합이 탄생한 달콤쌉싸름한 사연까지 곁들여서요. 이번 글을 통해 공방원분들도 저마다의 취향이 담긴 문장과 맛을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 가지 페어링을 소개할게요.
※ 주의. 입이 심심해질 수 있으니 간식과 함께 읽어주세요.
Editor. 송쏘
♥ + 젤리 + 문보영의 시
저는 정말이지 군것질 사냥꾼이에요. 하루에 한 번 이상 군것질 시간을 갖고, 레몬사탕을 종류별로 먹는 그런 사람이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젤리예요.
제 기억 속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젤리는 어린 시절 에버랜드에서 엄마가 사줬던 딸기 젤리예요. 하지만 이제는 단종돼서 더이상 구할 수 없죠. (최근까지 에버랜드 판다월드 기프트숍에서 판매했던 레서판다 모양 젤리도 귀여웠는데, 래서판다가 오렌지빛이라 젤리도 오렌지맛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 개업을 한다거나 축하할 만한이벤트가 생기면, 이 딸기 젤리를 대량으로 주문 제작해서 답례품으로 나누고,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는 게 어린 시절부터 작은 (또는 큰) 꿈이었어요.
몇 년 전, 웹서핑하다가 같은 젤리 브랜드에서 나온 산타 젤리를 발견했어요. 크리스마스에 맞춰 출시한 젤리였고, 산타답게 딸기맛이었죠. 큰 용기를 내서 장바구니에 스물네 개를 담았는데, ‘최대 수량 열여섯 개’라는 팝업창이 떴을 땐, 아쉬움 반, 싹쓸이했다는 뿌듯함 반이었어요. 이날은 꽤 행복한 날이었어요. 저는 이 젤리를 ‘인생 부스터’라고 명명했어요. 무언가를 해내거나 또는 힘들 때 보상처럼 하나씩 먹기로요. (마치 초등학생 때 읽었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요.)
요즘은 루피 젤리를 박스째 구매해 인생 부스터로 삼고 있어요. 산타든 루피든 그 형태에는 이렇다 할 호불호가 없지만, 그들이 빨간색을 띤띈다는 것, 그래서 딸기맛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좋아합니다. (산타 만세 루피 만세)
이런 인생 부스터를 떠올리면, 문보영 시인의 한 구절이 생각나요.
샤워를 한 김에 세상을 구하지. 그렇다고 바뀐 건 없어. 다만 이야기를 짓는 내 마음이 변했어.
_문보영, 「세상을 느리게 구하다」에서
이 시의 주인공은 샤워를 싫어하지만 샤워를 하며 각성합니다. 제게 딸기맛 젤리는 ‘진짜 힘든 일이 있었다’는 플래그이자 ‘그럼에도 해냈다’라는 상징이고요. 그래서인지 이 시의 샤워가 딸기 젤리로 치환되어 읽히더라고요. 인생 부스터가 필요할 때, 이 시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슈퍼 히어로의 하찮음과 귀여움으로부터 하찮고 귀여운 힘을 얻습니다.
Editor. 디또
♥ + 레드와인 + 박서영의 시
저는 책과의 운명을 믿는 편이에요. 특히 시詩와는 더 그렇습니다.
몇 가지 기억 중 하나는 동료와 전주 여행을 떠났을 때였어요. 그때 저는 여러모로 마음의 내상이 깊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친구들이 그런 저를 조용히 밖으로 이끌어 준 것이었지요. 출판사에서 만난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물결서사’. 서점 주인 분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아담한 내부를 둘러보았어요. 친구는 이쪽. 저는 저쪽.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시집이 있었습니다. 매대에 진열되어 있지도 않았고, 서가에 무심히 꽂혀 있었는데 어쩌다 펼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어떤 시를 만났고, 첫 문장부터 세상이 아주 고요해지는 듯한 경험을 했어요.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마음에 절절히 와닿았달까요.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이대로 울어버리면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더는 읽지 못하고 그대로 그 시집을 사서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늘 말로만 들어왔던 시의 위로랄까 시와의 운명이랄까 하는 걸 그때부터 어렴풋이 믿게 된 것 같아요.
왜인지 이번 <계절공방> 원고를 쓰면서는 자꾸 그런 순간들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물론 레드와인 한 잔도 함께요. 그 시기 제게 운명처럼 찾아온 시들은 레드와인처럼 달고, 쓰고, 종국엔 영 모르겠는, 그런 맛이 났던 것 같아서요.
나는 너와 함께 최대한 멀리 가보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_박서영, 「숲속의 집」에서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는 시인의 고백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집.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의 운명의 시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Editor. 지지
♥ + 에끌레어 + 토베얀손의 소설
새로운 존재가 주는 황홀함이 너무 커서 이내 미워진 경험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이건 ‘에끌레어’라는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야흐로 이십대 초반,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했지만,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답게 ‘고급’ 디저트를 먹어본 경험은 많지 않았어요. 덕분에 편의점에서 사 먹는 ‘허쉬 초콜릿’만으로도 행복했고, 종종 친구와 투썸플레이스‘아이스박스’를 사 먹을 때면 자본주의가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바로 세우곤 했었죠.
그렇게 평화롭던 저에게,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어요. 당시 직장인이던 친구를 따라 한남동 어딘가에서 우연히 에끌레어를 먹어보게 되었어요. 우아함이 느껴지는 길고 곧게 뻗은 페이스트리, 폭신해 보이는 정체 모를 크림과 그 포근함이 제 몫인 듯 정갈하게 자리잡은 블루베리까지. 세련된 외모에 이름까지 어쩜 에끌레어인지. 저는 에끌레어를 보는 순간 반했고, 한 입 먹어보고 나서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에끌레어가 생각났어요. 정말이지 툭하면 생각나서 자주 보고 싶었으나, 매일 에끌레어를 먹고 살 수는 없었죠(제 주머니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내 에끌레어가 미워지는 거 아니겠어요. 에끌레어를 먹어보기 전에는 투썸의 아이스박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왜 세상에 에끌레어 같은 애가 존재해서 나의 평화를 흔들어놓는 건지. 나는 에끌레어 없이도 충분히 달콤하게 살고 있었는데.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이 고양이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얘 생각만 나.”
_토베 얀손, 『여름의 책』에서
사실 이건 에끌레어에 대한 이야기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줄수록 돌려받을 수 없고, 덩달아 깊어지는 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참 이상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엔 더욱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
『여름의 책』은 무민 시리즈로 유명한 토베 얀손의 소설로, 어린 손녀딸 소피아와 그녀의 할머니가 작은 섬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예요. 사랑하는데 자꾸만 미워져서, 미워지는데 자꾸만 사랑해서, 마음이 괴로워질 때면 저는 이 소설을 꺼내 읽고 싶어져요. 대놓고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오히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천진난만한 소피아가 제멋대로인 길고양이를 만나며 사랑을 배우는 장면은 그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도 명쾌한 깨달음을 주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을 때 한 가지 디저트를 곁들인다면, 역시 에끌레어가 좋겠습니다. 에끌레어를 떠올려도 마음이 평온한 걸 보니, 이제는 에끌레어를 다시 찾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Editor. 송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