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치즈 이야기』 조예은 작가와의 만남


지난 주말, 수직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야외 베란다에 널어둔 옷가지에 혹시 불이라도 붙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들더라고요. 꼼짝달싹하기조차 싫은 여름 더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저는 이런 삼복더위 덕분(?)에 길고 길었던 책태기에서 드디어 벗어났습니다! 도저히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무더운 날, 시원한 거실에 앉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거든요. 특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들에 빠져들면 시간도 빨리 흘러가고, 몰입해서 그런지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역시 여름에는 장르 소설을 빼놓을 수 없겠죠.


오늘 계절공방에서는 3년 만에 신작 소설 『치즈 이야기』로 돌아온 조예은 작가를 만나봅니다. 책이 출간되기 전 원고 단계부터 계절공방팀의 마음을 들썩이게 한 바로 그 작품! 오늘 소개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주변 공기가 조금은 시원해지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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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LCC)




Q. 계절공방은 우리가 ‘지금’ 함께 즐기면 좋을 책과 생활 이야기를 전하는 곳이에요. 구독자분들께 짧은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계절공방 구독자 여러분. 소설 쓰는 조예은입니다. 주로 호러나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를 짓고 있습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평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이 계절이 가기 전에 한번 맛봐주세요. (웃음)

 

Q. 이 인터뷰가 나갈 때쯤엔 『치즈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된 후일 텐데요. 3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에요. ‘조예은’이라는 세계를 첫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부터 쭉 사랑해오신 분들께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이 책만이 가진 키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번 소설집은 2022년에서 2024년까지, 3년 동안 작업한 소설들을 모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충동과 발산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이 소설을 읽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대리 체험’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욕망과, 현실에서는 힘껏 참아내야 하는 충동들을 이번 소설집 안에서만은 장르적 설정 아래 마음껏 펼쳐보고자 했습니다. 신기한 건,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쓴 작품들이 아님에도 모아서 보니 그렇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Q. 저는 읽다보니, ‘작가님께서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할까?’ 절로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이 시큼새큼한 세계들을 창조해내는 사람에 관해 알고 싶어질 만큼요. 평소에 어떤 생각을 주로 하시나요? 그 생각들을 이야기로 옮기는 과정도 궁금해요.


쓸데없는 망상을 많이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무작위로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들을 붙잡아 메모해놓고, 그에 어울리는 플롯을 고민합니다. 흥미로운 플롯 먼저 연구할 때도 있어요. 작가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구조를 만났을 때 쾌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요. 그러다보면 알맞은 소재가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소재와 플롯을 일단 정하면 그뒤론 그저 수정을 반복하며 완성까지 붙잡고 있는 게 전부입니다.

 

Q. 이번 소설집에는 어두운 현실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는 작품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가령 부모로부터 방치 학대를 경험한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치즈 이야기」가 그랬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벌어지는 이야기인 「보증금 돌려받기」는 2030이 경험하는 현실 공포 그 자체였는데요. 이번 작품들을 쓰시면서 특별히 눈여겨봤던 관심사나, 자주 참고했던 자료가 있을까요?


먼저 찾지 않아도 워낙 보기 힘든 뉴스들이 많이 쏟아져나와서요. 「보증금 돌려받기」는 특히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시절 제 경험과 감정을 많이 녹여낸 소설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햇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때 배웠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빌라왕’부터 시작해 전세 사기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고요. 뉴스 기사 속 실제 사례들을 주로 살펴보았어요. 오늘날 도시에서 산다는 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 건지, 또 그럼에도 도시에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Q. 저는 특히 「보증금 돌려받기」를 읽으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뒤섞일 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꼈어요. 이런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별히 공들이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호러는 분위기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콘텐츠와는 다르게 소설은 깜짝 놀라게 하는 게 큰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죠. 하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불길한 분위기를 쌓아올리면 호러다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보증금 돌려받기」에서는, 일상에서 한 발짝씩 벗어난 이질적인 장면들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공포적인 상황을 적절히 배치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환상보다는 진상 집주인이죠. 어느 정도는 제가 학생 때 실제로 겼었던 일을 반영한 것이니, 공포에 가까운 그 막막함과 불안이 잘 표현되었기를 바랍니다.

 

Q. 문득, 쓰는 사람도 공포를 느끼는지가 궁금해져요. 소설을 쓰면서 공포를 느낀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예상과는 다른 답변일 수 있겠지만, 저는 제 소설이 무섭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소설만이 아니라 다른 호러 콘텐츠를 볼 때도 그 순간에만 깜짝 놀랄 뿐이지, 공포라는 감정이 금방 휘발되는 편이라 그런 장르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무섭거나 징그러운 장면을 쓸 때는 독자분들의 반응이 어떨지를 상상하는데요, 그럴 땐 꽤나 즐겁습니다. 조금 악취미 같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따라와주시는 분들에겐 '한 조각의 아름다움도 쥐여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쓰고 있습니다. (웃음) 언젠가는 쓰면서도 무서운 소설을 꼭 써보고 싶어요.

 

Q. 쓰면서 가장 즐거웠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작품도 궁금해요. 이야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거나, 막힐 때 어떻게 돌파하시는지도요.


수록작 중 중간에 위치한 「반쪽 머리의 천사」를 무척 즐겁게 썼어요. 원래는 『캐스팅』이라는, 영화관 주제 앤솔러지의 표제작으로 수록되었던 소설입니다. 길 잃은 청춘이 사고를 치고 해결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죠. 제가 딱 좋아하는, 섬찟한 듯 밍밍하고 달달하기도 한 소설입니다.


막힐 때는 일단 자고, 자고 일어났는데도 답이 없다면 설정과 구조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어디가 어떻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막힌 건지 정확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면, 기분과 운명에 모든 걸 맡긴 채로 일단 계속 씁니다, 어찌저찌 결말을 내고 나면 원흉이 되는 흐름이 보다 분명히 보이거든요.

 

Q. 수록작 중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른 결말로 끝난 작품도 있을까요?


단편소설을 쓸 때 엄청 세세하게 중간 과정까지 설계하지는 않지만, 대개 시작과 결말은 정해두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번 수록작 중에 쓰면서 바뀐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어렴풋이 어떤 분위기로 끝을 맺어야겠다, 정도였는데 쓰면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은 장면이 떠오른 경우는 있습니다. 「두번째 해연」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두 명이 불시착했지만 떠나는 건 한 명이 되어야겠다는 정도만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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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LCC)


Q. 올해 yes24 젊은작가 1위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을 보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가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분들께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처음 소설을 쓸 때만 해도 제가 이렇게 계속 쓸 줄은 몰랐어요. 기쁘면서도 떨떠름한 기분입니다. 대단한 요령이나 전하고픈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쓰는 순간에 즐겁다면 그 즐거움을 계속 따라가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는 다는 건, 무의식중에 스스로 가능성을 포착했다는 뜻이거든요. 성과가 빠르게 보이지 않아도 지치지 않도록 체력을 기르고 취미 같은, 쓰는 동력을 잃지 않게 해줄 다른 연료도 다양하게 구비해놓고요.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일상과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의 소설에서 환상성과 발랄함, 잔혹한 호러, 이렇게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칫 공존하기 힘든 두 키워드가 작가님의 작품에서만큼은 잘 어우러져 있지요. 마찬가지로 ‘조예은’이란 사람에게 상반되는 두 가지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스로를 직접 표현하는 건 언제나 민망하네요. 전 비관과 낙관을 극단적으로 자주 오가는 사람입니다. 특히 글을 쓸 때 도드라지는 것 같아요. 비관적일 때 시작하는 글과 낙관적일 때 시작하는 글이 분명히 나뉘는데, 신기한 건 소설을 쓰는 행위가 그런 극단을 중화시켜주어서 결말에 이르러서는 늘 비슷한 지점, 감정 상태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창작이 가진 힘 아닐까요?

 

Q. ‘제철 코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해요. 작가님께서 지금, 이 뜨거운 여름에 즐기고 계신 ‘제철 코어’는 무엇인가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와 평양냉면, 야식 누룽지입니다! 저에게 여름의 시작은 7월 초에 개막하는 부천 영화제입니다. 내내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꼭 며칠은 하루에 두세 편씩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요. (가급적 소개 글만으로는 내용이 예상 가지 않는, 이상한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6월 말쯤 공개되는 상영 예정작을 살피며 스케줄을 짜는 게 계절 루틴입니다. 다른 크고 작은 영화제도 많지만, 저는 판타스틱 영화제가 가장 좋더라구요. 이야기와 형식의 한계가 없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영화제가 지나가고 나면, 평양냉면을 먹으며 여름을 버팁니다. 누룽지에는 올해 들어 빠졌는데, 출출해지는 밤마다 오독오독 씹어 먹는 게 좋더라구요.

 

Q. 이번 작품에 이어 다음엔 어떤 책을 출간하실지 기대됩니다. 살짝 힌트를 주신다면요?


두 편의 장편 작품을 준비중에 있는데요, 한 편은 폐쇄적인 기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악한 오컬트물, 그리고 다른 한 편은 기묘한 붉은 광물을 둘러싼 근미래 배경의 코스믹 호러 SF입니다. 전자는 초고는 써두었는데, 오래 고쳐야 할 것 같고 후자는 아직 작업중에 있습니다. 둘 중 무엇을 먼저 보여드리게 될지······. 모쪼록, 기대해주세요.

 

Q. 마지막으로, ‘스릴러의 계절’ 한가운데서 계절공방 구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가장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름 휴양지로 향하는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뙤약볕 아래 걷다 들어간 카페에서, 낯선 여행지의 숙소에서, 여러분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공간에서, 차가운 음료와 함께 활자의 세계에 빠져보시기를요. 무더운 여름밤을 몰입으로 이겨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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