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혹시 이 책에 뭔가 있나? ㅡ 『새의 선물』 출간 30주년 기념 소설가 은희경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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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작가님께서는 ‘일생일대의 안간힘’으로 이 글을 쓰셨다고 해요.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제가 자라는 동안 늘 서가의 한자리를 지키며 한국문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게 이 인터뷰는 저보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세계와의 만남처럼 떨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30주년을 맞아 작가님께 여쭈었습니다. 열두 살 진희를 세상에 내놓던 그 시절의 마음과, 3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난 지금의 마음에 대해서요.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지켜야 할 것들을 다시금 확인해봅니다.

Editor. 디또



1부 30주년

Q1. 올해로 『새의 선물』이 출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12살 진희와 38살 진희, 그리고 그 이후의 독자들이 함께 쌓아온 시간이기도 한데요. 작가님께서는 이 작품의 30년을 어떤 마음으로 지나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는 30년 뒤에 읽힌다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이 책은 저의 첫번째 책인데요. ‘내 친구들은 이 책을 궁금해하고 읽어줄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왜 내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겠어?’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30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읽어주는 독자들 덕분에 저도 ‘혹시 이 책에 뭔가 있나?’ 하고 스스로 저의 독자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웃음) 작가로서의 첫 마음을 떠올려보게 만드는 소중한 격려라고 할까요. 그 격려가 없었다면 30년이나 소설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Q2. 집필 당시 절에서 한 달 동안 짧은 시간 안에 『새의 선물』을 완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긴 분량의 장편소설을 완성하실 수 있으셨나요? 그 당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궁금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일단 절박해서였던 듯해요. 개정판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저는 그 당시의 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뭔가 바꾸기를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무력해서, 글을 쓰는 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 쓰지 못하면 다시 틀 안으로 되돌아가서 예전의 모습으로 숙제하듯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절박함만으로 글이 잘 써질 리는 없고요. 쓸 이야기를 분명히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절에 들어갈 때 줄거리와 목차는 써둔 상태였어요.

어머니의 불교대학 연줄로 가게 된 그 절은 해발 일천 미터 가까운 산꼭대기에 있었는데요.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찬물 세수를 하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마신 뒤 오전 내내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요사채에 가서 보살님들과 점심을 먹은 뒤에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자정 무렵까지 또 썼고요. 요사채에서 꽤 떨어진 외딴 선방에 혼자 신세를 졌는데, 밤새 짐승 소리도 들리고 불빛 때문에 나방이 몰려들고 청설모 같은 작은 짐승들이 툇마루를 왔다갔다했어요. 제가 겁이 많은데도 그땐 젊어서인지 절실해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을 떨칠 수 있었어요. 그 에너지가 소설에 깃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3. 혹시 이후, 그 공간을 다시 찾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감회가 어떠셨을지도 궁금해요.


TV 문학기행 프로그램을 찍으러 방송팀과 같이 갔었어요. 제가 틀어박혀 글을 썼던 선방이 제 기억보다 훨씬 작더라고요. 고맙고 정답고, 그야말로 감회가 새로웠죠. 뭔가 첫 마음 같은 순정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다음해쯤이던가, 주지스님께 부탁해서 글을 쓰러 다시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며칠 만에 도시로 돌아와버렸어요. 익숙한 장소가 돼버린 탓인지, 잡념만 많고 글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장소는 그대로인데 제가 달라져버린 거죠. 

 


Q4. 『새의 선물』은 1995년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 이후, 3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책이죠. 3년 전인 2022년에 100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문학동네소설상의 시작에 『새의 선물』이 있는데요, 지금도 문학동네 본사로 많은 소설상 응모작들이 오고 있고, 이 모습을 보며 ‘이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작가님께서는 『연애 대위법』(『새의 선물』의 전 소설 제목)을 처음 응모하실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 당시 저는 15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주부였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도, 문단에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현실을 잘 모르니 신춘문예만 당선되면 인생이 바뀔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 여름이 될 때까지 청탁이 전혀 없었어요. 이대로 가다가 다음해 당선자가 나오면 글을 발표할 기회가 영영 없겠구나 싶어서 장편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죠. 

저 역시, 응모작에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제 인생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일생일대의 안간힘이라고 하면 좀 거창할까요. 어쨌든 소설가로 인정을 받겠다는 포부보다 ‘지금 제가 하는 이 질문이 말이 되나요?’ 하고 묻는 마음이었어요. 당선이 되면 ‘그렇다’는 응답일 것 같았고요. 요즘은 독자들이 제 글을 읽어주는 일이야말로 바로 그런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Q5. 작가님께서는 이 작품을 “나의 질문을 찾는 과정” 속에서 쓰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죠. 30년이 지난 지금, 그 ‘질문’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을 찾는 과정이 곧 삶의 여정이라는 생각을 해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있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아직 모르고 또 알고 싶어한다는 뜻 아닐까요. 또 거기에는 나날이 변화하는 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나의 진지함과 호기심과 활기, 애정이 담겨 있고요. 스스로 발견하는 질문들이 바로 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 같아요. 



Q6. 초판과 100쇄 돌파 기념 개정판의 ‘작가의 말’을 나란히 보면, 같은 작품이지만 다른 온도가 느껴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 작품을 다시 마주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또 같은 지점이 있었을지도 궁금합니다.


개정판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어요.

“처음 쓸 때의 결기와 감각이 이 책의 정체성일 터이므로 지금 나의 시각으로 여과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편견이 담긴 단어나 표현을 바꿔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말과 생각이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고 느꼈으므로 내가 틀렸었다는 사실이 약간 기분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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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책 속으로

Q7. 진희는 장군에게 행하는 ‘실험’, 이별을 극복하는 ‘극기 훈련’과 같은 언어로 자신의 행동을 표현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독특한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12살 소녀에게 이러한 시각과 언어를 부여하게 되었나요?


30대의 저는 프레임에 갇혀서 제가 원치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실히 살았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살고 있나를 많이 생각했는데요. ‘바라보는 나’가 ‘보여지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거죠. 그게 어린 시절로 거슬러올라가더라고요. 어른들의 마음에 드는 아이로 소심하게 행동했던 저의 감추어진 이면이라고나 할까요. 그 인물을 끄집어낸 게 진희가 되었어요. 제가 속마음대로 자랐다면 어떤 아이였을까 하는 상상으로 말이죠. 소설 쓰는 재미 중에 하나인데요, 쓰는 동안 내 안의 거침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서 못 가본 길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Q8. 읽으며 탄성이 나온 문장이 있었습니다. ‘내 머릿속 적자에 의해 일단 권좌에서 배척당한 서자가 조개젓에 젓가락을 대며 묻는다’(p. 138) 이런 라임 있는 문장을 쓸 때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즐거움이나 쾌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있습니다. 황석영 선생님의 『장길산』에 보면 마음에 둔 여성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자 ‘뜻밖에도 뜻 안의 말을 듣고’ 좋아했다는 표현이 있어요. 그런 언어유희를 좋아하는데, 잘못하면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요. 이 소설을 쓰면서 판소리처럼 유장하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약간 편하게 썼지만, 단편집 『타인에게 말 걸기』 이후에 제가 차갑고 도회적인 작가의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웃음) 



Q9. 이어서 『새의 선물』 속에서 작가님께서 특히 마음에 남는 문장이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노린(?) 부분과 독자들이 밑줄 친 부분이 언제나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저도 변하거든요. 소설 속의 문장은 대부분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인데, 30년 전에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도 있어요. 가령 『새의 선물』에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인 게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그건 정면돌파밖에 모르는 그 당시 저의 고지식함과 소심함을 비판하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산문집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지만, 만약 정면에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팬데믹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삶을 우회하려고 하는 게 비겁한 개인주의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저 문장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함께”로 이어집니다. 그다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네요. (웃음)



Q10.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30대의 진희 덕분에 작품이 시간의 깊이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액자 구성은 처음부터 의도하신 것인지, 집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30대 진희의 시선을 배치함으로써 작품이 얻게 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진희의 통찰과 언어 구사가 어린애의 틀에 갇혀 있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열두 살다운 한계를 가졌으면 했어요.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약자성을 갖고 상처받는 주인공이니까요. 독자에게 그런 인물을 설득하기 위해, 30대 진희가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또하나의 시선을 액자 구성으로 만들어야 했고요. 

반대 의견도 좀 있었어요. 더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던 소녀 진희가 겨우 자유분방한 30대 여성으로 성장하다니 실망스럽다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라는 충고도 여러 번 받았고요. 결과적으로 잘한 건지 아닌지는, 다른 길을 가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고, 어쨌든 제 생각대로 했다는 점이 중요하죠. 


Q11. 프롤로그의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에서 에필로그의 제목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는 제목을 함께 보면, 이 이야기가 독자에게 스며드는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님께서 이야기와 시작과 끝을 이렇게 배치하신 이유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프롤로그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문제 제기이고, 에필로그는 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의지와 애정을 표현한 것 아닐까요. 




3부 지금의 작가님께

Q12. 창작 외의 시간의 작가님은 어떤 모습인가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상을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아침 시간에 글을 써요. 오후에는 직업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요. 시간이 나면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십니다. 집안일도 하고 여행도 가요. 별거 없네요. (웃음) 30년 동안 소설책 15권과 산문집 2권을 냈으니, 할일이 없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래도 틈틈이 동료와 후배들을 만나 사사로운 웃음을 나눌 수 있어서 운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13.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12살 이후의 진희를 삼심대 후반의 시점에서 다시 호출한 작품이라면, 독자로서 그 이후의 시간을 상상하게 됩니다. 진희의 더 나아간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을까요? 혹은 진희라는 인물을 다시 만날 계획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특별히 진희라는 인물을 떠올리고 거기 대해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그 인물이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 중의 하나이다보니, 여러 소설에 조금씩 들어가는 듯해요. 현실의 저를 따라서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요. 최근에 계간 『문학동네』에 ‘저녁의 감촉’이라는 장편소설을 연재했는데요. 안나라는 60대의 주인공이 진희의 현재 나이예요. 안나의 어린 시절을 쓰다가 한순간 이 인물이 진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새의 선물』 이후 30년을 더 살면서 배워왔고 또 계속 써왔으니 저는 그때의 작가는 아니겠죠. 그때의 인물을 다시 그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쓰는 소설에는 현재의 삶을 말해줄 수 있는 감각과 통찰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Q14. 마지막으로 『새의 선물』과 함께 30년을 건너온, 그리고 지금 새롭게 읽는 독자들에게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그리고 맞서지 못하고 방어하고 회피하려는 주인공에게 때때로 불가능한 꿈을 꿀 용기를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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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을 좋아하는 독자분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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