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29.9세』 고선경 시인이 20대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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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온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연말입니다. 제야의 종을 울리고 나서도 13월이 찾아오고 2025년이 계속될 것만 같지 않은가요? 어떤 시절의 끝을 마주하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마다 시집을 펼치게 되더라고요. 시를 읽고 있으면 마음 놓고 길을 잃어버릴 수 있고, 정처 없이 떠돌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니 오늘은 2025 시의적절의 마지막 권, 『29.9세』로 돌아온 고선경 시인을 만나봅니다. 산문집을 출간한 지 반년 만의 신간!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인데요. 하루 한 편씩의 글을 그러모아 꼬박 한 달을 엮어낸 ‘시의적절’ 시리즈로 만나 볼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매일 한 꼭지씩 읽다 보면 12월을 무사히 보내고 반가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Editor. 송쏘




Q1. 올해 초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산문집 『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를 출간하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 새 책 『29.9세』로 독자들을 찾아오셨어요. 무척 바쁜 한 해를 보내셨을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올해는 정말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음 계절이 밀려오는 느낌이었어요. 시집과 산문집을 거의 연달아 출간했고, 그 사이사이에 강연과 북토크 등 여러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요즘은 한동안 미뤄두었던 사적인 기록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수습하고 있어요. 어쩌면 『29.9세』를 내보낸 뒤부터가 진짜 올해의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여전히 분주한 나날이지만 최근에는 짬을 내서 프랑스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는 제게 오래전부터 로망과 같은 여행지였어요.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떠난 여정이었죠. 파리, 콜마르, 니스 등의 도시에 머물렀습니다.



Q2. 연말 여행이라니, 상상만 해도 설레는걸요. 프랑스 여행은 어떠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공유해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니스에서 파리로 향하던 기차 안의 풍경이에요. 창밖으로 지중해가 펼쳐져 있었죠. 풍경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을 꺼냈지만 남기고 싶었던 장면은 이미 지나가버렸더라고요. 그 놓쳐버린 순간에 대해 오래 생각했어요. 잡히지 않는 것들, 지나가버린 것들, 그럼에도 분명히 있었던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들. 20대를 떠나보내는 안타깝고도 후련한 마음과도 닮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기차 안에서



Q3. 20대의 막바지, 한 해의 마지막 달 이야기를 맡게 되신 것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의적절 12월을 맡게 되셨을 때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누군가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줄 알았어요. 저는 연말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12월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든 눈 녹듯이 사라지는 달이죠. 저는 그렇게 흥청망청 소진한 뒤에도 남은 흔적들을 더듬어보고는 합니다. 처음부터 20대를 마무리하는 콘셉트를 떠올렸던 것은 아니지만, 12월을 마주하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감정들과 자연스레 연결되더라고요. 20대를 다 써버리고도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Q4. 『29.9세』만이 가진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아무리 특정한 시기라도 누구에게나 특별한 문장 하나로 설명되지는 않잖아요. 여러 감정의 미세한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은 그 작은 파동들을 최대한 모으고, 따라가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철저히 지금 저의 언어로 쓰였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거의 실시간으로 제 아홉수를 기록하기도 했고요. 지금의 저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저답게 글들을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빙판 같은 백지 위로 미끄러지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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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시의적절’은 하루 한 편의 글이 쌓여 한 달 한 권의 책을 꾸리는 시리즈잖아요. 집필하실 때의 루틴이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평소 선생님의 쓰기와 다른 점이 있었을까요?

 

12월의 질감, 12월의 감각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12월에 쓴 글이 많습니다. 물론 작년 12월이지요. 연락을 받자마자 거의 바로 작업에 착수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12월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한 해의 끝은 묘하게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잖아요. 지나간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내년의 나를 그려보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약간의 회한과 약간의 희망을 동시에 품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압축된 시간성이 저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지요. 한 달 동안 저는 제 내면을 성실히 관찰하며 글을 썼어요. 매일의 날씨, 저녁의 냄새, 창문에 어둠이 비치는 속도 같은 것들이 그날의 언어로 치환되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제 인생의 어느 한 달에 대해 썼을 뿐인데, 인생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Q6. 이번 책에서 가장 즐겁게 썼던 글과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신가요?

 

12월 17일의 「언회피 버스데이」 꼭지를 가장 즐겁게 썼습니다. 즐거움과 수치심이 공존했던 기억에 약간의 자기비하적인 톤을 더해 쓰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드는데, 그 부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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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이번 책에는 산문과 구별되는 ‘일기’가 두 편 실렸어요. 지난 산문집에도 「속초 일기」, 「지구 일기」 등 일기라고 이름 붙인 글들이 있었는데, 선생님께 일기란 어떤 글인가요?

 

대부분의 글은 독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조정하면서 쓰게 되지만, 일기는 그 간격을 거의 두지 않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아직 방향을 갖기 전의 감정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머무는 공간이 바로 일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일기는 해명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왜 이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되지요. 때로는 그러한 형식이 저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8. 책을 읽다 보면 오모리 세이코, 신세이 카맛테짱 등 선생님께서 애정하는 가수나 밴드의 이름이 등장하곤 해요. 아홉수를 위한 추천곡 한 곡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요즘 이 노래를 많이 들어요. 제목부터가 절묘하지 않나요?



 

Q9. 시 「누덕누덕」은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면 뭘 하고 싶어?”라는 시구로 시작하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닥친다면 무슨 일을 하며 오늘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술을 진탕 마시고 전부 까먹어버릴 거예요. 내일의 숙취 따위 걱정하지 않으면서요.

 


Q10. ‘별똥별이 쏟아질 날을 달력에 적는 일’ 외에도 미래를 연장하는 선생님만의 방법이 궁금해요.

 

프랑스에서 먹은 것 중에 코카콜라가 제일 맛있었어요. 여행 내내 훌륭하게 짜고, 훌륭하게 느끼한 음식들을 많이 만났는데, 코카콜라 한 모금이 가진 청량감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농담처럼 시작한 생각인데,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든 회사라면…… 미래를 조금 맡겨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코카콜라 주식을 사서 제 미래를 연장하고 싶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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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병맥주


Q11. 생일 파티 에피소드인 「언회피 버스데이」를 읽고서 바로 지난 산문집의 “친구가 많다는 건 외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내가 외로운 걸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혹시 최근 새로 사귄 친구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만나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는 홍차라고 불러야겠습니다. 홍차는 중국 차와 커피를 좋아하고,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아요. 하지만 처음 만난 날 병맥주 뚜껑을 라이터 하나로 시원스레 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별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입니다. 『29.9세』에 실은 제 연애사가 궁금하다기에 글을 보여주었는데, 본인도 예상치 못한 질투심에 읽기를 중단하기도 했어요. 서로가 당혹감을 느낀 순간이었지요. 홍차는 평소에 무척 다정한데, 생각보다 반응이 솔직해서 예측 불가한 재미가 있는 사람이에요. 이 타이밍에 책 홍보를 은근슬쩍 끼워 넣어서 홍차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홍차가 질투심을 느낄 만큼 애정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록해둔 제 글이 궁금하진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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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추천으로 마셔 본 프랑스 핸드드립 커피 



Q12. 친구 이야기를 하니, 인터뷰에서 본 선생님의 반려 노트북이 떠오르네요. 귀엽고 블링블링한 스티커들 사이에서도 딸기 스티커가 눈에 띄었어요. 이번 책 표지에도 고양이를 닮은 듯 하트를 닮은 듯 귀여운 모양의 딸기 사진이 들어갔지요. 표지에 대한 선생님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보통 책 표지의 과일 사진이라고 하면 매끈하고 광택 있는, 거의 박제된 완벽함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이번 표지의 딸기는 반대였어요. 누군가가 방금 손으로 잡고 베어먹은 것처럼 생생하고, 약간은 성미가 급한 아이 같고, 동시에 아주 솔직한 감각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요. 물론 베어먹기 전에도 예쁘다기보다는 울퉁불퉁한 모양이었을 텐데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말괄량이 같기도 하고, 관능적인 느낌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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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중 발견한 29.9세 디저트


Q13. 20대의 마지막 달, 12월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연말을 기념하는 특별한 루틴이나 방법도 궁금해요.

 

12월에는 여러 북토크 행사가 예정돼 있어요. 방방곡곡의 동네 서점에서 독자분들과 가까이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척 기대되고 설레요. 그와 별개로 매년 연례행사처럼 만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 1박 2일 동안 연말 파티를 하면서 소소한 시상식도 진행합니다. 작년 12월 저는 ‘올해의 폼미상’을 받기도 했지요. 폼이 미쳤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몇 년째 겨울마다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를 정주행하고 있어요!



Q14. 혹시 연말에 읽기 좋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사이토 마리코의 『단 하나의 눈송이』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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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 마지막으로, 각자의 아홉수를 보내고 있을 계절공방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아홉수를 맞아 무당을 찾아가 살풀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10월의 일로 아홉수가 절반 이상 지나간 뒤였어요. 타이밍을 잘 잡았더라면 훨씬 더 드라마틱한 경험을 했으려나요? 10월의 아홉수 살풀이는 사후 처방과 다름없을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올해가 특별히 더 나빴냐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단지 마음의 축이 자주 기울었던 거죠. 그건 어쩌면 좀 더 예민해지고 솔직해질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일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마음의 축이 기우는 방향으로 기대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축나지 않도록 돌보기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의 아홉수를 돌보고 있나요? 아홉수가 끝나고도 남은 무궁무진한 미래를 모쪼록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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