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비관론자 또는 성실한 염세주의자
Q1. 이번 책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 해외에 나가 계셨잖아요. 네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시골로 들어갈 계획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특별히 한적한 곳을 골라 떠났던 것이겠지요. 그곳에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예를 들면 ‘책이 문제없이 나와야 할 텐데…’ 같은? (웃음) 이번 여행에서 인상적으로 본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 여행은 익숙한 곳으로 가요. 사람이 많지 않고 기온이 서울보다 조금 낮은 곳이에요. 익숙한 곳이니만큼 관광을 위해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고 좋아하는 카페 몇 곳을 번갈아 들르며 책을 읽거나 창밖을 보고 몽상에 빠지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예요. 이번에는 며칠간 여러 곳의 카페를 다니며 마지막 교정지를 살펴봤어요.
출간을 위해 저자교를 보면 대략 열 번 넘게 원고를 다시 읽게 되는 듯해요. 그러니까 마지막 저자교를 본다는 것은 이미 알 만큼 다 아는 얘기를, 조금도 흥미로울 것 없이 익숙해진 문장과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된다는 뜻이에요. 처음 교정을 볼 때는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가 어설퍼 보여서 이런 소설을 어쩌자고 책으로 내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웃음)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래도 이만큼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는 미세한 수정이 대부분일지라도 담당 편집자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장을 매만져요. 그렇게 소설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기 위해서 굳이 책을 출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지에서는 주로 ‘집’ 사진을 찍어요. 빈집이나 버려진 듯 보이는 집이요. 언젠가 자세히 묘사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벽이나 문 사진도 많이 찍어요. 벽에 붙어 있는 화분이나 ‘개’ 안내문 같은 것이요. 이번 여행에서는 작은 유원지에서 어린이 관람차를 봤는데, 그게 예뻐서 사진으로 찍어뒀어요.
Q2. 선생님은 저자교를 보실 때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서 전체적으로 매만지는 스타일이신데 이번 수록작 중에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소설은 무엇이었어요?
모든 소설에 제각기 곤경과 해결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어서 쓰고 나면 어떤 작품이든 수월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그 정도의 어려움이 기본값이 되느니만큼 유별나게 어렵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언젠가 다른 책의 작가의 말에도 쓴 적 있는 것처럼 소설을 쓰는 일은 숙련도 없는 노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아무리 연차가 오래된 작가라 하더라도 새로운 소설을 쓸 때는 그 이야기와 초면이기 마련이니, 낯선 인물과 이야기 속에서 길을 헤매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지요.
그렇기는 해도 수록작 중에 「자매들」은 무려 십이 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어서, 쓰던 당시의 마음을 떠올려 소설을 퇴고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어요. 다른 의미로 계속 의심했던 작품은 「아파트먼트」라는 단편이에요. 이 소설은 1990년대를 다룬 앤솔러지에 수록하고자 쓰기 시작한 작품이에요. 소설집에 포함시키려니 그 맥락이 사라져서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왜 난데없이 지난 시절 이야기가 실렸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언젠가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의 장편을 쓰리라 늘 마음먹고 있어서(언제 쓰게 될지는 몰라요) 이야기를 어디까지 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Q3. 책 띠지에 ‘따뜻한 비관론자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따뜻한 비관론자’ 말고 또다른 후보가 있었어요. 바로 ‘성실한 염세주의자’예요. 선생님은 『홀』이나 『아오이가든』 같은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예상(‘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쓰다니 작가는 분명 가차 없는 사람일 거야…’)을 배반할 만큼 사람들에게 다정한 것으로 유명하고 마감일도 정말 잘 지키시는데, 희한하게도 어떤 비관과 염세 또한 느껴졌어요. ‘이렇게 한다고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같은. 선생님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그게 글쓰기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도 여쭙고 싶어요.
이번 책의 수록작인 「남은 사람」이라는 소설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지만, 저는 결국 인생이 길기만 하고 별로 남는 게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고민이나 갈등, 욕망이나 좌절, 회의나 불안은 별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근시안적이고 지엽적인 사람이라서 인생을 짧게 볼 때가 많아요. (웃음) 오늘 해야 할 일이나 그 무렵의 관심사, 제철의 기쁨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순간적인 낙관이 기질적 비관을 이길 때가 많아요. 성실함 역시 기질적인 면이 있어요. 태생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뜻으로요. 그래서 청탁받은 원고도 가급적 미리 써두고, 애당초 소화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청탁을 받고, 되도록 시간 약속을 잘 지키려는 사람이 된 거죠.
소설을 쓸 때는 조금 달라요. 소설은 언제나 거시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쓰기 때문에 (웃음)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관적이기도 하고 염세적이기도 하며 냉소적인 면모를 숨길 수 없는 것이지요.
#편혜영의 사회성
Q4. 예전에 김애란 선생님이 선생님에 대해 쓴 산문을 읽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작가 초상’ 성격의 글이었어요.
"나는 그녀를 어느 문예지 모임에서 처음 봤다. 늦겨울이었고, 그녀도 나도 단편을 몇 편 발표하지 않은 신인 때였다. 그녀는 좀 늦게 나타났다. 그날도 아마 직장에 출근했다 오는 길이었지 싶다. 그녀가 지하 술집에 들어서자 누군가 작게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게 들렸다. 그녀가 자리에 앉는 동안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좇은 기억이 난다. 그녀에게선 이제 막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의 바람 냄새가 났다." (김애란, 「그녀에게 휘파람」, 『잊기 좋은 이름』)
이 산문을 읽고 처음으로 작품 바깥에 있는, ‘개인’으로서의 소설가를 떠올려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때 직장생활을 하기 전이어서인지 여기서 묘사되는 선생님의 모습이 좀 근사해 보이기도 했어요. 바깥의 냄새를 묻히고 단정하게 모임 장소에 들어오는 모습에서 어쩐지 프로의 분위기가 느껴졌달까요. 하지만 이즈음에 발표된 선생님의 소설을 보면 인물들은 파산 통보를 받거나 일하는 스스로를 견디고 있다고 말해요. (웃음) 실제로는 어떠셨어요? 짧지 않은 시간 직장생활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 변하지 않은 것을 꼽아주신다면요?
아마 소설 속 인물들처럼 실제로도 심리적인 파산 통보를 받은 기분이거나 언제 사직서를 낼지 가늠하며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다닌 곳은 외국계 회사였는데, 업무적으로는 책을 만드는 일이어서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잘 맞았어요. 출근 시간이 아홉시 십오분이라고 하길래 유머가 있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보스의 성격에 따라서 사내 분위기가 경직될 때가 많았어요. 그 와중에 연차가 쌓여 승진이라는 것을 하다보니 본사로의 출장도 늘고 거의 매일 회의에 들어가야 했고요. 작년에 출간한 『어른의 미래』라는 짧은 소설집에 수록된 「신발이 마를 동안」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엄마’처럼 그 시절에는 싫어하던 것도 많고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아요. 회의 시간에 주제와 관련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싫고 그렇다고 주제에 집중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유머가 없어서 싫었어요. 어쩌자는 건지. (웃음)
다만 오랜 직장생활로 생활인의 감각과 업무 관계에서의 예의 같은 것은 확실히 익혔어요. 마감과 납기에 대한 감각도 그때 분명해졌고요. 어떤 일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야근을 한다거나 휴일 근무를 하는 식으로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죠. 작가가 된 후로 되도록 마감을 잘 지키려고 하거나 주어진 약속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기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아마도 그때 배운 동업, 협업 감각 덕분일 거예요.

Q5. 불쑥 직장생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 책의 제목이 ‘새들의 사회성’이어서예요. 새들의 사회성이라니, 과연 무슨 뜻일까 싶은데 표제작의 주인공 ‘나’가 서로 몰려다니며 하늘을 나는 새떼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약하니까 저렇게 몰려다니겠지. 그러지 않으면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이번 책에는 인물이 여럿 나오는 소설이 꽤 있어요. 주요(!) 등장인물 수만 세어보자면 「초록 스웨터」는 3명, 「포도밭 묘지」는 4명이고, 「우리가 가는 곳」은 처음에 2명으로 출발했다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점점 사람이 따라붙어서 7명으로까지 늘기도 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웃음) 이중 예상치 못하게 새로 등장한 인물이 있을지도 궁금해요.
이번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가제는 ‘우리가 가는 곳’이었어요. (그럴 경우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의 제목을 다른 것으로 바꿀 예정이었어요.) 「포도밭 묘지」의 네 인물도 그렇고 「우리가 가는 곳」도, 「아파트먼트」의 모녀나 「초록 스웨터」 「새들의 사회성」에 나오는 인물들도 다들 길가에서 주춤거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더라고요.
처음 착상한 이야기와 도착한 이야기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초록 스웨터」의 경우도 그랬어요. 이 소설은 처음에는 영주, 나주, 성주 세 인물이 각각 자기 이름과 같은 지역을 놀러가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시작한 소설이에요. 조금 쓰고 나니 이렇게는 영 어려워서, 뜨다 만 스웨터를 들고 성주의 과거 인연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로 고쳐써봤고요. 그후에도 시점을 바꾼다거나 공간을 바꾸며 이렇게 저렇게 고치다보니 결국 성주는 죽고 그의 딸인 경주가 등장하게 되었어요. 착상 단계에서의 이야기와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초고, 이후 여러 번 퇴고를 거쳐 만들어진 최종본이 각기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경험상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뒤늦게 등장하는 인물이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생겨나면 즐거워져요. 그런 인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인물로 인해 이야기가 비로소 조금씩 풀려간다는 뜻이니까요.
Q6. 한편으로는 새가 무리 지어 나는 걸 보고 평화롭고 한적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선생님 소설의 인물은 새들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은 ‘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요.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새들이 그렇게 뭉쳐 다닐 수밖에 없게 하는 주변의 상황인 것 같아요. ‘개인의 사회성’을 만드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듯해요.
인물을 구상할 때 성별과 연령대를 떠올리는 것처럼 인물이 놓인 사회적 맥락도 의상처럼 갖춰 입혀요. 드러나지 않을 때가 더 많기는 해도, 인물의 계급이나 경제 상황을 캐릭터의 일부로 여기고 있어요. 「포도밭 묘지」나 「새들의 사회성」을 쓸 때도 그랬어요. 「새들의 사회성」은 정규직이 될 가망이 없는 인턴 ‘3’의 약삭빠른 생존 전략이나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면서까지 나쁜 짓을 벌여야 하는 신도에게 모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신도가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 소설에 자세히 쓰지는 않았지만, 아마 신도는 기질적으로 성실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인물이어서 그렇게 한 거겠죠. ‘성실’은 기질적 조건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조건이니까요. 신도의 부모 역시도 사회적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한 계급일 가능성이 많으니 어떻게든 신도는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을 테고, 그러다 대범한 짓까지 벌였을 거예요.
#물김치, 만두, 아이스 화이트 초콜릿 모카
Q7.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웃긴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일 거예요. 「우리가 가는 곳」에는 더는 지금 삶을 견딜 수 없어서 그야말로 살기 위해 ‘자발적 실종’, 즉 ‘증발’을 감행하려는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 인물이 뜻밖에 여러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는 물김치를 먹으라며 건네는 할머니도 있어요. 이 슬프고 안쓰럽고 애틋한 이야기를 지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출처를 밝히는 부분에 이르면 이런 문장과 만나게 돼요.
“양배추 물김치 조리법은 『요리는 감이여』((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주미자, 이유자, 창비교육, 2019)에서 가져와 변용했다.”
저는 교정보다가 여기에서 웃음이 터졌는데요, 책의 제목도 웃기고 이 제목이 소설의 할머니가 할 법한 말이어서 더 웃음이 나왔어요. 마치 각주까지가 소설에 포함되는 느낌이랄까요. 줄거리로 요약하면 심각하게 다가올 이 소설에는 의외로 곳곳에 숨쉴 구석, 마음을 놓게 되는 부분, 미소 짓게 되는 대목이 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특히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해요.
「우리가 가는 곳」은 구경꾼들이 점차 모여서 (오영지가 이미 음식도 준비했으니) 잔치라도 벌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를 바랐는데, 내향형이자 과묵한 인간인 저로서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떠드는 장면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오히려 일곱 명 정도로 그칠 수 있었어요. (웃음) 이 소설은 냉담한 육십대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그동안 숨기고 있던 자기 이름을 털어놓는 이야기예요. 쓰다보니 육십대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상황을 부각시키는 게 재미있어서 굳이 한의원 원장이나 하버드 학원장을 등장시키게 됐어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과 사회적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 나오지만 아주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것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도 아직 먹어본 적 없는 마약김밥까지 굳이 사게 했어요. (웃음)
궁지에 처한 사람들이 그동안의 자신과 단절되기를 선택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홀렸어요.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를 읽은 후로 지금의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증발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더더욱 사로잡혔고요. 물론 『몰타의 매』에 그 에피소드는 아주 미약하게 나오지만요. 이유가 무엇이든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면 숙고할 것도 없이 답은 금세 나와요. 살기 위해서지요. 「목욕」에 나오는 아버지가 말하듯 사람은 언제나 삶을 위한 선택을 하고 그런 점에서 ‘대단한 존재’니까요.
Q8. 그러고 보니 다른 소설에도 군침 나오는 장면이 나와요. 언니가 형부를 정말 죽인 게 맞는지 동생의 시점으로 따라가는 「자매들」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쪄진 만두가 등장하고, 오랜만에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의 꼼수에 걸려들어 월급을 고스란히 주게 생긴 「새들의 사회성」 속 심각한 장면에서는 크림이 잔뜩 올려진 아이스 화이트 초콜릿 모카가 나와요.
「우리가 가는 곳」의 화자는 이렇게 말하잖아요. “아무리 증발을 감행하는 중이라고 해도 삶은 여전히 유지되니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선생님의 음식관(?)이 반영된 말일까요? (웃음)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세 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이왕이면 언제든 맛있는 걸 먹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여행도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가는 게 좋아요. 낯선 곳에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이야기인데, 여행의 동행으로는 맛집을 찾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매 끼니 맛있는 걸 먹을 필요는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좋아요.)
뭔가를 간추려야 하는 일은 항상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세 가지를 요령껏 꼽아보자면, 좋아하는 사람들(복수형을 써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바람이나 햇볕 같은 제철 계절(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음악, 미술, 소설처럼 아름다운 것들(이것 역시 복수형으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이것들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삶을 기쁘게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의 어린 초심자들
Q9. 이번 책에는 흔히 사회 초년생이라고 할 만한 어린 인물들이 여럿 나와요. 그 인물들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낙담과 좌절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어떻게든 서로 함께 있으려는 모습이에요. 특히 「포도밭 묘지」에 등장하는 4명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도 서로를 챙겨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각자 비슷한 인생 곡선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네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포도밭 묘지」 다음에 이어지는 「초록 스웨터」에도 중간에 오래 보지 않고 지낸 시간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이 그려져요. 요새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감수하면서까지 관계를 이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우정과 관계는 어떤 모양인지 들려주신다면요.
나이가 이쯤 되고 보니 여러 우정의 방식을 겪게 됐어요. 어떤 우정은 사랑처럼 한눈에 반해 시작되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 마음 아프게 깨지기도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럴 때는 마음 아프게 그 우정을 돌아보며 여러 날 자책했고요. 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별의 말이 없다는 점과 우정이 깨진 후에도 더러 관계가 근근이 이어진다는 정도일까요. 물론 그 때문에 더 마음 아픈 일을 겪기도 하고요. 아마 현명한 누군가가 우정의 결별로 인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동원한 것 같아요.
언젠가 친구와 여행을 하다가 무지개를 본 적 있어요. 여러 여행지에서 무지개를 봤어요. 그 친구와 여행을 워낙 많이 다녔고 그러면서 근사한 걸 많이 봤거든요. 아름다운 걸 보니 그날 힘들게 길을 헤맸던 시간이나 폭염이 다 잊혀졌어요. 좋은 우정에는 그렇게 관계의 힘듦을 잊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나지기도 하지만 애써서 발견해야 해요. 친구의 귀여움과 고마움, 사랑스러움을 잊지 않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친구의 무관심과 서운함,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나 습관 같은 걸 까먹을 수 있어요. 무지개를 보면 비가 왔다는 걸 잊는 것처럼요. 물론 그게 길지는 않아요. (웃음) 모든 마음에는 생로병사가 있기 마련이라, 우정도 병이 들라치면 잘 먹이고 유해물질과 거리도 두고 잠도 재우며 노력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어요. 늘 제대로 못해서 자책할 때가 더 많아요.
Q10. 한편으로 저는 이번 소설집 속 인물들의 상황이 동경하는 무언가가 있지만 가닿지 못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대표적으로는 「아파트먼트」의 엄마가 그럴 것 같아요. 엄마는 ‘먹어본 적 없는 과일 냄새’가 나던 한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데, 그 꿈을 이루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아요. 「남은 사람」의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삶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강렬한 통증의 기억이고요.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다면 어떤 유행어처럼 ‘내가 많은 걸 바랐냐…’ 묻게 되더라구요. 인터뷰가 점점 ‘편혜영 상담소’처럼 되어가는데, (웃음)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선생님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아파트먼트」는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 있던 드넓은 안개꽃밭을 떠올리면서 썼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 그게 안개꽃이 아니라 메밀꽃이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어요. 「목욕」에 나오는 아버지가 전쟁통에 썼던 커피밀(이 역시 제가 유럽의 어느 뮤지엄에서 본 전시물이에요)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 감탄한 것처럼, 저로서도 유년의 아름다움을 일부 잃었지만 삶의 실용성을 확인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어느 해인가 「남은 사람」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얼마간 거동을 못 하는 통증을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심술궂어진 나머지 계속 이런 식으로 자기 고통만 주장하다보면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구나 싶어졌어요. 그러다 나중에 치매에 걸려 모든 걸 다 잊었는데도 자기 몸의 통증만 여전히 생생한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너무 슬프겠다 싶었어요. 완전히 아문 자신의 상처는 바로 지금 겪는 통증인 듯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자식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딸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삶은, 아무 고통 없는 삶만큼이나 비참할 것 같았어요.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을 빌려 삶이나 인생이 무엇인지 이러쿵저러쿵 대범하게 떠들어대지만, 역시 지엽적이며 근시안적인 사람인지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삶이 덩달아 기쁘고 넓어지겠구나 생각해서 언제부터인가 거리낌없이 뭐든 좋아하자고 여기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이번에도 굳이 아는 척을 하자면) 삶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빌려와 넓어지고,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깊어지는 것 같아요.
Q11. 내내 어려운 질문만 드렸는데, 가볍게 몇 가지 묻고 싶어요. 선생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 손에 꼽게 스펙트럼이 넓은 콘텐츠 향유자인데, 요즘은 어떤 걸 보고 계세요? 소설 작업에 자극을 준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소설을 써야 하는 시기에는 다른 콘텐츠를 잘 안 봐요. 요즘이 그런 시기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재앙>이라는 일본 드라마는 인상적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살해 동기나 범인이 명백히 밝혀지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인생의 많은 재앙은 납득할 만한 동기나 단서 없이 벌어지는데, 이 드라마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아요. 난데없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원인을 찾으려 하고, 그럴 때 기묘한 얼굴의 주인공이 죽음과의 인과가 명백하지 않음에도 쉽게 연쇄살인범으로 해석되는 게 흥미로웠어요. 보통 콘텐츠를 고를 때 제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들면 어쩐지 아는 얘기 같아서 시시해져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잘 아는 얘기 같은데도 워낙 상황이 인상적이어서 즐겁게 봤어요.

Q12. 마지막으로 이번 책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어떤 소설은 해부된 세계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쓰이고 어떤 소설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이번 책에 실린 소설들은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작고 약하지만 서로 닿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행: 김내리 편집자
#따뜻한 비관론자 또는 성실한 염세주의자
Q1. 이번 책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 해외에 나가 계셨잖아요. 네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시골로 들어갈 계획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특별히 한적한 곳을 골라 떠났던 것이겠지요. 그곳에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예를 들면 ‘책이 문제없이 나와야 할 텐데…’ 같은? (웃음) 이번 여행에서 인상적으로 본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느 해부터인가 여름 여행은 익숙한 곳으로 가요. 사람이 많지 않고 기온이 서울보다 조금 낮은 곳이에요. 익숙한 곳이니만큼 관광을 위해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고 좋아하는 카페 몇 곳을 번갈아 들르며 책을 읽거나 창밖을 보고 몽상에 빠지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예요. 이번에는 며칠간 여러 곳의 카페를 다니며 마지막 교정지를 살펴봤어요.
출간을 위해 저자교를 보면 대략 열 번 넘게 원고를 다시 읽게 되는 듯해요. 그러니까 마지막 저자교를 본다는 것은 이미 알 만큼 다 아는 얘기를, 조금도 흥미로울 것 없이 익숙해진 문장과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된다는 뜻이에요. 처음 교정을 볼 때는 문장이나 이야기 구조가 어설퍼 보여서 이런 소설을 어쩌자고 책으로 내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웃음)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래도 이만큼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는 미세한 수정이 대부분일지라도 담당 편집자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장을 매만져요. 그렇게 소설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기 위해서 굳이 책을 출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지에서는 주로 ‘집’ 사진을 찍어요. 빈집이나 버려진 듯 보이는 집이요. 언젠가 자세히 묘사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벽이나 문 사진도 많이 찍어요. 벽에 붙어 있는 화분이나 ‘개’ 안내문 같은 것이요. 이번 여행에서는 작은 유원지에서 어린이 관람차를 봤는데, 그게 예뻐서 사진으로 찍어뒀어요.
Q2. 선생님은 저자교를 보실 때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서 전체적으로 매만지는 스타일이신데 이번 수록작 중에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소설은 무엇이었어요?
모든 소설에 제각기 곤경과 해결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어서 쓰고 나면 어떤 작품이든 수월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그 정도의 어려움이 기본값이 되느니만큼 유별나게 어렵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언젠가 다른 책의 작가의 말에도 쓴 적 있는 것처럼 소설을 쓰는 일은 숙련도 없는 노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아무리 연차가 오래된 작가라 하더라도 새로운 소설을 쓸 때는 그 이야기와 초면이기 마련이니, 낯선 인물과 이야기 속에서 길을 헤매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지요.
그렇기는 해도 수록작 중에 「자매들」은 무려 십이 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어서, 쓰던 당시의 마음을 떠올려 소설을 퇴고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어요. 다른 의미로 계속 의심했던 작품은 「아파트먼트」라는 단편이에요. 이 소설은 1990년대를 다룬 앤솔러지에 수록하고자 쓰기 시작한 작품이에요. 소설집에 포함시키려니 그 맥락이 사라져서 독자분들이 보시기에는 왜 난데없이 지난 시절 이야기가 실렸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언젠가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의 장편을 쓰리라 늘 마음먹고 있어서(언제 쓰게 될지는 몰라요) 이야기를 어디까지 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Q3. 책 띠지에 ‘따뜻한 비관론자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따뜻한 비관론자’ 말고 또다른 후보가 있었어요. 바로 ‘성실한 염세주의자’예요. 선생님은 『홀』이나 『아오이가든』 같은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예상(‘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쓰다니 작가는 분명 가차 없는 사람일 거야…’)을 배반할 만큼 사람들에게 다정한 것으로 유명하고 마감일도 정말 잘 지키시는데, 희한하게도 어떤 비관과 염세 또한 느껴졌어요. ‘이렇게 한다고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같은. 선생님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그게 글쓰기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도 여쭙고 싶어요.
이번 책의 수록작인 「남은 사람」이라는 소설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지만, 저는 결국 인생이 길기만 하고 별로 남는 게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고민이나 갈등, 욕망이나 좌절, 회의나 불안은 별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근시안적이고 지엽적인 사람이라서 인생을 짧게 볼 때가 많아요. (웃음) 오늘 해야 할 일이나 그 무렵의 관심사, 제철의 기쁨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순간적인 낙관이 기질적 비관을 이길 때가 많아요. 성실함 역시 기질적인 면이 있어요. 태생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뜻으로요. 그래서 청탁받은 원고도 가급적 미리 써두고, 애당초 소화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청탁을 받고, 되도록 시간 약속을 잘 지키려는 사람이 된 거죠.
소설을 쓸 때는 조금 달라요. 소설은 언제나 거시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쓰기 때문에 (웃음)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관적이기도 하고 염세적이기도 하며 냉소적인 면모를 숨길 수 없는 것이지요.
#편혜영의 사회성
Q4. 예전에 김애란 선생님이 선생님에 대해 쓴 산문을 읽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에 대한 일종의 ‘작가 초상’ 성격의 글이었어요.
"나는 그녀를 어느 문예지 모임에서 처음 봤다. 늦겨울이었고, 그녀도 나도 단편을 몇 편 발표하지 않은 신인 때였다. 그녀는 좀 늦게 나타났다. 그날도 아마 직장에 출근했다 오는 길이었지 싶다. 그녀가 지하 술집에 들어서자 누군가 작게 그녀의 이름을 말하는 게 들렸다. 그녀가 자리에 앉는 동안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좇은 기억이 난다. 그녀에게선 이제 막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의 바람 냄새가 났다." (김애란, 「그녀에게 휘파람」, 『잊기 좋은 이름』)
이 산문을 읽고 처음으로 작품 바깥에 있는, ‘개인’으로서의 소설가를 떠올려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때 직장생활을 하기 전이어서인지 여기서 묘사되는 선생님의 모습이 좀 근사해 보이기도 했어요. 바깥의 냄새를 묻히고 단정하게 모임 장소에 들어오는 모습에서 어쩐지 프로의 분위기가 느껴졌달까요. 하지만 이즈음에 발표된 선생님의 소설을 보면 인물들은 파산 통보를 받거나 일하는 스스로를 견디고 있다고 말해요. (웃음) 실제로는 어떠셨어요? 짧지 않은 시간 직장생활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 변하지 않은 것을 꼽아주신다면요?
아마 소설 속 인물들처럼 실제로도 심리적인 파산 통보를 받은 기분이거나 언제 사직서를 낼지 가늠하며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다닌 곳은 외국계 회사였는데, 업무적으로는 책을 만드는 일이어서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잘 맞았어요. 출근 시간이 아홉시 십오분이라고 하길래 유머가 있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보스의 성격에 따라서 사내 분위기가 경직될 때가 많았어요. 그 와중에 연차가 쌓여 승진이라는 것을 하다보니 본사로의 출장도 늘고 거의 매일 회의에 들어가야 했고요. 작년에 출간한 『어른의 미래』라는 짧은 소설집에 수록된 「신발이 마를 동안」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엄마’처럼 그 시절에는 싫어하던 것도 많고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아요. 회의 시간에 주제와 관련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싫고 그렇다고 주제에 집중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유머가 없어서 싫었어요. 어쩌자는 건지. (웃음)
다만 오랜 직장생활로 생활인의 감각과 업무 관계에서의 예의 같은 것은 확실히 익혔어요. 마감과 납기에 대한 감각도 그때 분명해졌고요. 어떤 일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야근을 한다거나 휴일 근무를 하는 식으로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죠. 작가가 된 후로 되도록 마감을 잘 지키려고 하거나 주어진 약속 시간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기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아마도 그때 배운 동업, 협업 감각 덕분일 거예요.
Q5. 불쑥 직장생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 책의 제목이 ‘새들의 사회성’이어서예요. 새들의 사회성이라니, 과연 무슨 뜻일까 싶은데 표제작의 주인공 ‘나’가 서로 몰려다니며 하늘을 나는 새떼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약하니까 저렇게 몰려다니겠지. 그러지 않으면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이번 책에는 인물이 여럿 나오는 소설이 꽤 있어요. 주요(!) 등장인물 수만 세어보자면 「초록 스웨터」는 3명, 「포도밭 묘지」는 4명이고, 「우리가 가는 곳」은 처음에 2명으로 출발했다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점점 사람이 따라붙어서 7명으로까지 늘기도 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웃음) 이중 예상치 못하게 새로 등장한 인물이 있을지도 궁금해요.
이번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가제는 ‘우리가 가는 곳’이었어요. (그럴 경우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의 제목을 다른 것으로 바꿀 예정이었어요.) 「포도밭 묘지」의 네 인물도 그렇고 「우리가 가는 곳」도, 「아파트먼트」의 모녀나 「초록 스웨터」 「새들의 사회성」에 나오는 인물들도 다들 길가에서 주춤거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더라고요.
처음 착상한 이야기와 도착한 이야기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초록 스웨터」의 경우도 그랬어요. 이 소설은 처음에는 영주, 나주, 성주 세 인물이 각각 자기 이름과 같은 지역을 놀러가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시작한 소설이에요. 조금 쓰고 나니 이렇게는 영 어려워서, 뜨다 만 스웨터를 들고 성주의 과거 인연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로 고쳐써봤고요. 그후에도 시점을 바꾼다거나 공간을 바꾸며 이렇게 저렇게 고치다보니 결국 성주는 죽고 그의 딸인 경주가 등장하게 되었어요. 착상 단계에서의 이야기와 어느 정도 틀이 잡힌 초고, 이후 여러 번 퇴고를 거쳐 만들어진 최종본이 각기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경험상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뒤늦게 등장하는 인물이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생겨나면 즐거워져요. 그런 인물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인물로 인해 이야기가 비로소 조금씩 풀려간다는 뜻이니까요.
Q6. 한편으로는 새가 무리 지어 나는 걸 보고 평화롭고 한적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선생님 소설의 인물은 새들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은 ‘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요.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새들이 그렇게 뭉쳐 다닐 수밖에 없게 하는 주변의 상황인 것 같아요. ‘개인의 사회성’을 만드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듯해요.
인물을 구상할 때 성별과 연령대를 떠올리는 것처럼 인물이 놓인 사회적 맥락도 의상처럼 갖춰 입혀요. 드러나지 않을 때가 더 많기는 해도, 인물의 계급이나 경제 상황을 캐릭터의 일부로 여기고 있어요. 「포도밭 묘지」나 「새들의 사회성」을 쓸 때도 그랬어요. 「새들의 사회성」은 정규직이 될 가망이 없는 인턴 ‘3’의 약삭빠른 생존 전략이나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면서까지 나쁜 짓을 벌여야 하는 신도에게 모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신도가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 소설에 자세히 쓰지는 않았지만, 아마 신도는 기질적으로 성실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인물이어서 그렇게 한 거겠죠. ‘성실’은 기질적 조건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조건이니까요. 신도의 부모 역시도 사회적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한 계급일 가능성이 많으니 어떻게든 신도는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을 테고, 그러다 대범한 짓까지 벌였을 거예요.
#물김치, 만두, 아이스 화이트 초콜릿 모카
Q7.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웃긴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일 거예요. 「우리가 가는 곳」에는 더는 지금 삶을 견딜 수 없어서 그야말로 살기 위해 ‘자발적 실종’, 즉 ‘증발’을 감행하려는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 인물이 뜻밖에 여러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는 물김치를 먹으라며 건네는 할머니도 있어요. 이 슬프고 안쓰럽고 애틋한 이야기를 지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출처를 밝히는 부분에 이르면 이런 문장과 만나게 돼요.
“양배추 물김치 조리법은 『요리는 감이여』((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주미자, 이유자, 창비교육, 2019)에서 가져와 변용했다.”
저는 교정보다가 여기에서 웃음이 터졌는데요, 책의 제목도 웃기고 이 제목이 소설의 할머니가 할 법한 말이어서 더 웃음이 나왔어요. 마치 각주까지가 소설에 포함되는 느낌이랄까요. 줄거리로 요약하면 심각하게 다가올 이 소설에는 의외로 곳곳에 숨쉴 구석, 마음을 놓게 되는 부분, 미소 짓게 되는 대목이 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특히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해요.
「우리가 가는 곳」은 구경꾼들이 점차 모여서 (오영지가 이미 음식도 준비했으니) 잔치라도 벌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를 바랐는데, 내향형이자 과묵한 인간인 저로서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떠드는 장면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오히려 일곱 명 정도로 그칠 수 있었어요. (웃음) 이 소설은 냉담한 육십대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그동안 숨기고 있던 자기 이름을 털어놓는 이야기예요. 쓰다보니 육십대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상황을 부각시키는 게 재미있어서 굳이 한의원 원장이나 하버드 학원장을 등장시키게 됐어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과 사회적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 나오지만 아주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것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도 아직 먹어본 적 없는 마약김밥까지 굳이 사게 했어요. (웃음)
궁지에 처한 사람들이 그동안의 자신과 단절되기를 선택하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홀렸어요.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를 읽은 후로 지금의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증발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더더욱 사로잡혔고요. 물론 『몰타의 매』에 그 에피소드는 아주 미약하게 나오지만요. 이유가 무엇이든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면 숙고할 것도 없이 답은 금세 나와요. 살기 위해서지요. 「목욕」에 나오는 아버지가 말하듯 사람은 언제나 삶을 위한 선택을 하고 그런 점에서 ‘대단한 존재’니까요.
Q8. 그러고 보니 다른 소설에도 군침 나오는 장면이 나와요. 언니가 형부를 정말 죽인 게 맞는지 동생의 시점으로 따라가는 「자매들」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쪄진 만두가 등장하고, 오랜만에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의 꼼수에 걸려들어 월급을 고스란히 주게 생긴 「새들의 사회성」 속 심각한 장면에서는 크림이 잔뜩 올려진 아이스 화이트 초콜릿 모카가 나와요.
「우리가 가는 곳」의 화자는 이렇게 말하잖아요. “아무리 증발을 감행하는 중이라고 해도 삶은 여전히 유지되니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선생님의 음식관(?)이 반영된 말일까요? (웃음)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 세 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이왕이면 언제든 맛있는 걸 먹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여행도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가는 게 좋아요. 낯선 곳에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이야기인데, 여행의 동행으로는 맛집을 찾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매 끼니 맛있는 걸 먹을 필요는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좋아요.)
뭔가를 간추려야 하는 일은 항상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세 가지를 요령껏 꼽아보자면, 좋아하는 사람들(복수형을 써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바람이나 햇볕 같은 제철 계절(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음악, 미술, 소설처럼 아름다운 것들(이것 역시 복수형으로 개수의 함정을 피했습니다). 이것들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삶을 기쁘게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삶의 어린 초심자들
Q9. 이번 책에는 흔히 사회 초년생이라고 할 만한 어린 인물들이 여럿 나와요. 그 인물들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낙담과 좌절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어떻게든 서로 함께 있으려는 모습이에요. 특히 「포도밭 묘지」에 등장하는 4명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도 서로를 챙겨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각자 비슷한 인생 곡선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네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포도밭 묘지」 다음에 이어지는 「초록 스웨터」에도 중간에 오래 보지 않고 지낸 시간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이 그려져요. 요새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감수하면서까지 관계를 이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우정과 관계는 어떤 모양인지 들려주신다면요.
나이가 이쯤 되고 보니 여러 우정의 방식을 겪게 됐어요. 어떤 우정은 사랑처럼 한눈에 반해 시작되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 마음 아프게 깨지기도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럴 때는 마음 아프게 그 우정을 돌아보며 여러 날 자책했고요. 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별의 말이 없다는 점과 우정이 깨진 후에도 더러 관계가 근근이 이어진다는 정도일까요. 물론 그 때문에 더 마음 아픈 일을 겪기도 하고요. 아마 현명한 누군가가 우정의 결별로 인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동원한 것 같아요.
언젠가 친구와 여행을 하다가 무지개를 본 적 있어요. 여러 여행지에서 무지개를 봤어요. 그 친구와 여행을 워낙 많이 다녔고 그러면서 근사한 걸 많이 봤거든요. 아름다운 걸 보니 그날 힘들게 길을 헤맸던 시간이나 폭염이 다 잊혀졌어요. 좋은 우정에는 그렇게 관계의 힘듦을 잊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나지기도 하지만 애써서 발견해야 해요. 친구의 귀여움과 고마움, 사랑스러움을 잊지 않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친구의 무관심과 서운함,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나 습관 같은 걸 까먹을 수 있어요. 무지개를 보면 비가 왔다는 걸 잊는 것처럼요. 물론 그게 길지는 않아요. (웃음) 모든 마음에는 생로병사가 있기 마련이라, 우정도 병이 들라치면 잘 먹이고 유해물질과 거리도 두고 잠도 재우며 노력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어요. 늘 제대로 못해서 자책할 때가 더 많아요.
Q10. 한편으로 저는 이번 소설집 속 인물들의 상황이 동경하는 무언가가 있지만 가닿지 못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대표적으로는 「아파트먼트」의 엄마가 그럴 것 같아요. 엄마는 ‘먹어본 적 없는 과일 냄새’가 나던 한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데, 그 꿈을 이루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아요. 「남은 사람」의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삶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강렬한 통증의 기억이고요.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다면 어떤 유행어처럼 ‘내가 많은 걸 바랐냐…’ 묻게 되더라구요. 인터뷰가 점점 ‘편혜영 상담소’처럼 되어가는데, (웃음)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선생님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아파트먼트」는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 있던 드넓은 안개꽃밭을 떠올리면서 썼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 그게 안개꽃이 아니라 메밀꽃이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어요. 「목욕」에 나오는 아버지가 전쟁통에 썼던 커피밀(이 역시 제가 유럽의 어느 뮤지엄에서 본 전시물이에요)을 보면서 사람에 대해 감탄한 것처럼, 저로서도 유년의 아름다움을 일부 잃었지만 삶의 실용성을 확인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어느 해인가 「남은 사람」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얼마간 거동을 못 하는 통증을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심술궂어진 나머지 계속 이런 식으로 자기 고통만 주장하다보면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구나 싶어졌어요. 그러다 나중에 치매에 걸려 모든 걸 다 잊었는데도 자기 몸의 통증만 여전히 생생한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너무 슬프겠다 싶었어요. 완전히 아문 자신의 상처는 바로 지금 겪는 통증인 듯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자식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딸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삶은, 아무 고통 없는 삶만큼이나 비참할 것 같았어요.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을 빌려 삶이나 인생이 무엇인지 이러쿵저러쿵 대범하게 떠들어대지만, 역시 지엽적이며 근시안적인 사람인지라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삶이 덩달아 기쁘고 넓어지겠구나 생각해서 언제부터인가 거리낌없이 뭐든 좋아하자고 여기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이번에도 굳이 아는 척을 하자면) 삶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빌려와 넓어지고,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깊어지는 것 같아요.
Q11. 내내 어려운 질문만 드렸는데, 가볍게 몇 가지 묻고 싶어요. 선생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 손에 꼽게 스펙트럼이 넓은 콘텐츠 향유자인데, 요즘은 어떤 걸 보고 계세요? 소설 작업에 자극을 준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소설을 써야 하는 시기에는 다른 콘텐츠를 잘 안 봐요. 요즘이 그런 시기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재앙>이라는 일본 드라마는 인상적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살해 동기나 범인이 명백히 밝혀지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인생의 많은 재앙은 납득할 만한 동기나 단서 없이 벌어지는데, 이 드라마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아요. 난데없는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원인을 찾으려 하고, 그럴 때 기묘한 얼굴의 주인공이 죽음과의 인과가 명백하지 않음에도 쉽게 연쇄살인범으로 해석되는 게 흥미로웠어요. 보통 콘텐츠를 고를 때 제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들면 어쩐지 아는 얘기 같아서 시시해져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잘 아는 얘기 같은데도 워낙 상황이 인상적이어서 즐겁게 봤어요.
Q12. 마지막으로 이번 책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어떤 소설은 해부된 세계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쓰이고 어떤 소설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이번 책에 실린 소설들은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작고 약하지만 서로 닿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행: 김내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