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은희경과 나 ㅡ 에디터 3인이 읽은 은희경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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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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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하면 나는 자꾸 중학생 무렵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생애 처음으로 살던 동네를 벗어나 조금 큰 시내의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으로 인정받으며 소소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간섭이 줄어들자 시내의 큰 서점이나 몰을 기웃거리며 그간의 답답함을 해소하곤 했는데 그 무렵 새롭게 발견한 곳은 (바람직하게도) 바로 도서관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도서관은커녕 ‘책’이 정말 귀한 작은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이 주는 충격은 꽤나 상당했다.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도서관도 아니었다.) 그 후 몇 년간 도서관은 나의 놀이터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풍경과 책 냄새에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땐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읽는 걸 좋아했다. 국내외 걸출한 작가들의 책을 하나둘 읽어가던 그 시절, 우연히 발견한 책이 바로 은희경의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였다. 중학생의 눈에 그 책의 제목은 뭐랄까, 무척 근사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단편은 세 번째 수록작 「연미와 유미」였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소설은 자매의 이야기로, 동생인 유미의 시선으로 쓰여 있다. 영국 뉴캐슬에서 유학 중인 유미는 평생 온 가족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해서 살아온, 여덟 살 많은 언니 연미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낀다. 유미는 선을 열한 번이나 봤지만 결혼하지 않고 유학을 떠났고, 언니는 일찌감치 의사와 결혼해 방이 여섯 개인 근사한 집에 살고 있다. 언니와의 왕래는 많지 않지만 1년에 세 번 보내오는 용돈은 최대한 허투루 사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형부에게 걸려온 전화. 언니가 나를 만나러 영국에 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니는 나를 만나러 영국에 온 것이 아니다. 언니는 누구를 만나러 왔을까? 소설은 언니가 준 용돈으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사이 내가 사는 기숙사에 도착한 소포 속 언니의 편지글로 상당 부분 채워진다. 나는 그 절절한 러브레터를 읽으며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 같다.


이번 원고를 쓰며 추억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그 단편을 다시 읽어보았다. 세상에…… 이제 나는 화자인 유미의 나이는 한참 지나, 아마 연미의 나이쯤이 되어버린 것 같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던 중학생 시절에는 소설 속 언니가 참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언니의 말과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건, 몇몇 구절을 읽는 순간 과거의 내가 느꼈던 감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는 점이다. 그때의 내 어떤 부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여전히 은희경의 소설은 내게 이토록 특별하구나, 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도서관을 드나들던 내가 출판사에 입사하고, 그중에서도 어쩌면 은희경의 소설을 가장 가까이서 읽어볼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게 정말 꿈같을 때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설이 아닌지……) 더욱 신기한 것은 ‘문학동네’라는 출판사 이름을 내가 『타인에게 말 걸기』를 읽으며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책의 표지와 판권명,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던 이름들이 아직도 또렷이 떠오른다.
문학동네에서 은희경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누구보다 빠르게 페이지를 펼치고, 또 멀리서나마 작가님을 볼 수 있음에 기쁘다. 2025년은 그의 등단 30주년이라 한다.
선생님, 이 지면을 통해 선생님의 소설이 제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고백할 수 있어 기쁩니다. 등단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소설을 써주세요.


Editor. 지지




타국에서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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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작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살아가길 택한 소설 속 주인공 수진의 다짐은 나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었다.


타국에서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은 조금 다르게 시작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 역시 상대를 모르는, 새로운 공간이 주는 낯섦은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그런지 별것 아닌 일로도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지만, 한편으로는 언어의 한계와 문화의 간극 때문에 쉽게 오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에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찾아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아이러니함이 존재한다.


뉴욕이라는 공간은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지만, 이 소설은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특히 관계에서 반복되는 감정이나 쓸쓸함-이 장소를 옮긴다고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장미의 이름은 장미』가 냉소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관계가 어긋나는 이유를 단정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담담하게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수진은 이곳으로 떠나오며 그녀를 규정하는 나이와 삶의 이력에서 잠시나마 이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 도시에서 수진은 그런 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자신을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

p.90

 

Editor. 햄사리




비극을 대비하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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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p.8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소설의 초반부 문장을 읽으며 ‘진희’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진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새의 선물』 속에서 어른스럽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10대 소녀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른이 된 사람들 속에서 30대가 된 진희를 보며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진희는 비극을 대비하는 어른이 되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캔맥주를 두 개쯤 마신 다음 내 침대에서 혼자 잠들고 싶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p.267

 

애인은 세 명쯤 있어야 하고, 나쁜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더 이상 대응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헤어짐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진희를 보며 
오히려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면 모순일까?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한 택시에서 창밖을 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진희를 꼭 안아주고 싶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p.317


Editor. 다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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