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계절책장은 독서 여행자, 곽아람 작가가 특별 큐레이터로 함께합니다. 『나와 그녀들의 도시』에 미처 담지 못한, 여행하며 떠올린 문학 작품과 앞으로 떠나고 싶은 도시와 문학 조합을 소개합니다. 문학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곽아람 작가가 소개하는 도시와 문학 조합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거예요.
Editor. 송쏘
2025년 9월 14일 일요일 오전, 코펜하겐 중심가의 백화점 마가쟁 뒤 노르(Magasin du Nord)를 방문했다. 인테리어 용품이 진열된 3층으로 올라가 네스프레소 매장 뒤 비상구로 나갔다. 복도와 회의실을 지나치자 자그마한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구는 침대와 선반, 거울, 난로 등으로 단출했다. 격자무늬 창가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펜과 종이, 잉크병이 있었다.

14세 때 고향 오덴세를 떠나 수도 코펜하겐으로 온 안데르센은, 22세 때 이곳에 기거하며 『그림 없는 그림책』을 구상했다. 방은 원래 호텔의 일부였는데, 나중에 백화점이 확장해 호텔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 없는 그림책』에서 밤마다 가난한 화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달님은 아마도 안데르센이 이 다락방 창을 통해 보았을 그 달이리라. 그 시절의 안데르센처럼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자 그 방에 살며 움직이고 생각했을 안데르센의 영혼과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흘 후 나는 코펜하겐에서 약 45킬로미터 떨어진 헬싱괴르의 크론보르성(城)에 있었다. 일정이 빠듯한데 굳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배경인 이곳에 ‘가느냐 마느냐(To go or not to go)’ 하는 것은,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와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제법 큰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해자를 끼고 늠름하게 서 있는 성과 마주했을 때, 성의 3층 연회실에서 넋 나간 모습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오필리아를 만났을 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서 배우들이 ‘햄릿’을 연기하고 있었다. 작품의 배경에서 인물들을 만난 덕에 작품 속 세계를 입체감 있게 감지할 수 있었다.
또 어떤 책 속 세계를 여행하고 싶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영국 요크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의 배경이다. 부모 잃은 외로운 소녀 메리와 병약한 소년 콜린, 명랑한 소년 디컨이 뛰놀던 그 화원이 실재하는지 궁금하다. ‘무어(moor)’라 불리는 작품 속 황야에 어떤 꽃이 흐드러지는지도 보고 싶다. 요크셔의 이 황야는 또한 에밀리 브론테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기도 하다. ‘Wuthering Heights(폭풍의 언덕)’에 부는 거친 바람을 감각하고 나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광포한 사랑도 한 발짝 더 내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10월의 마지막 날밤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네스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조이스가 ‘마비 상태’라 표현한 그 도시는 실제로 음울한지, 핼러윈을 배경으로 한 단편 「진흙(Clay)」의 주인공 마리아가 일했던 세탁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학 시절의 영미 단편소설 강독 시간에 이 작품을 배웠을 때, 선생님이 엔야의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나는 꾸었네)〉를 틀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작품에서 마리아가 부르는 바로 그 노래. 감미로우면서 애절한 엔야의 목소리와 맥주의 씁쓸한 맛, 숨 막힐 듯한 잿빛으로 기억된 그 소설집을 더블린의 공기 아래서 다시 펼쳐보고 싶다.
곽아람 (『나와 그녀들의 도시』 저자·조선일보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 『그림 없는 그림책』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의 어른을 위한 동화. 달님이 들려주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로, 안데르센 특유의 서정과 사색이 어우러진 철학적 동화집.
덴마크 헬싱괴르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불멸의 걸작이자 4대 비극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문장이 발췌된 작품.
영국 요크셔 -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출간 이후 11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로 각색된 작품.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버려진 정원을 가꾸며 내면의 회복을 경험하는 이야기.
영국 요크셔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서른 해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에밀리 브론테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이라는 저택을 배경으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힌다.
아일랜드 더블린 -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20세기 문학에 변혁을 일으킨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첫 작품. 더블린에 살았던 중산층의 삶을 통해 더블린 전역에 퍼져 있는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바탕으로 인류 보편의 문제를 재조명한 걸작.

오늘 계절책장은 독서 여행자, 곽아람 작가가 특별 큐레이터로 함께합니다. 『나와 그녀들의 도시』에 미처 담지 못한, 여행하며 떠올린 문학 작품과 앞으로 떠나고 싶은 도시와 문학 조합을 소개합니다. 문학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곽아람 작가가 소개하는 도시와 문학 조합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거예요.
Editor. 송쏘
2025년 9월 14일 일요일 오전, 코펜하겐 중심가의 백화점 마가쟁 뒤 노르(Magasin du Nord)를 방문했다. 인테리어 용품이 진열된 3층으로 올라가 네스프레소 매장 뒤 비상구로 나갔다. 복도와 회의실을 지나치자 자그마한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구는 침대와 선반, 거울, 난로 등으로 단출했다. 격자무늬 창가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펜과 종이, 잉크병이 있었다.
14세 때 고향 오덴세를 떠나 수도 코펜하겐으로 온 안데르센은, 22세 때 이곳에 기거하며 『그림 없는 그림책』을 구상했다. 방은 원래 호텔의 일부였는데, 나중에 백화점이 확장해 호텔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 없는 그림책』에서 밤마다 가난한 화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달님은 아마도 안데르센이 이 다락방 창을 통해 보았을 그 달이리라. 그 시절의 안데르센처럼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자 그 방에 살며 움직이고 생각했을 안데르센의 영혼과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흘 후 나는 코펜하겐에서 약 45킬로미터 떨어진 헬싱괴르의 크론보르성(城)에 있었다. 일정이 빠듯한데 굳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배경인 이곳에 ‘가느냐 마느냐(To go or not to go)’ 하는 것은,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와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제법 큰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해자를 끼고 늠름하게 서 있는 성과 마주했을 때, 성의 3층 연회실에서 넋 나간 모습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오필리아를 만났을 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서 배우들이 ‘햄릿’을 연기하고 있었다. 작품의 배경에서 인물들을 만난 덕에 작품 속 세계를 입체감 있게 감지할 수 있었다.
또 어떤 책 속 세계를 여행하고 싶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영국 요크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의 배경이다. 부모 잃은 외로운 소녀 메리와 병약한 소년 콜린, 명랑한 소년 디컨이 뛰놀던 그 화원이 실재하는지 궁금하다. ‘무어(moor)’라 불리는 작품 속 황야에 어떤 꽃이 흐드러지는지도 보고 싶다. 요크셔의 이 황야는 또한 에밀리 브론테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기도 하다. ‘Wuthering Heights(폭풍의 언덕)’에 부는 거친 바람을 감각하고 나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광포한 사랑도 한 발짝 더 내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10월의 마지막 날밤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네스 맥주를 마셔보고 싶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조이스가 ‘마비 상태’라 표현한 그 도시는 실제로 음울한지, 핼러윈을 배경으로 한 단편 「진흙(Clay)」의 주인공 마리아가 일했던 세탁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학 시절의 영미 단편소설 강독 시간에 이 작품을 배웠을 때, 선생님이 엔야의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나는 꾸었네)〉를 틀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작품에서 마리아가 부르는 바로 그 노래. 감미로우면서 애절한 엔야의 목소리와 맥주의 씁쓸한 맛, 숨 막힐 듯한 잿빛으로 기억된 그 소설집을 더블린의 공기 아래서 다시 펼쳐보고 싶다.
곽아람 (『나와 그녀들의 도시』 저자·조선일보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 『그림 없는 그림책』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의 어른을 위한 동화. 달님이 들려주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로, 안데르센 특유의 서정과 사색이 어우러진 철학적 동화집.
덴마크 헬싱괴르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불멸의 걸작이자 4대 비극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문장이 발췌된 작품.
영국 요크셔 - 『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출간 이후 11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로 각색된 작품.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버려진 정원을 가꾸며 내면의 회복을 경험하는 이야기.
영국 요크셔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서른 해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에밀리 브론테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이라는 저택을 배경으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힌다.
아일랜드 더블린 -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20세기 문학에 변혁을 일으킨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첫 작품. 더블린에 살았던 중산층의 삶을 통해 더블린 전역에 퍼져 있는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바탕으로 인류 보편의 문제를 재조명한 걸작.